[음성 설교]

 

출애굽기 25:10-22 증거궤와 속죄소 2011. 1. 9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 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1여전도회에서 올 한 해 동안 성경 1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다잡아먹고 성경을 한번이라도 통째로 읽어보려고 하다가 대부분 멈추는 지점이 우리가 보는 이 부분입니다. 증거궤, 속죄소, 그 크기, 만드는 방법, 여러 가지 기구들 이름이 나오면 그만 성경을 덮어버립니다. 이런 것들이 왜 필요한지 지금은 쓰이지도 않는 것인데 왜 이렇게 상세하게 많이 기록되어 있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성막과 성막안의 기구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은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한 언약입니다. 살고 죽는 언약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언약이 계속하여 이행이 되려면 언약 당사자들이 수시로 만나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죄인인 인간이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나는 즉시 죽게 됩니다. 그래서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려면 이런 장치가 없이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 말씀이 성막과 그 기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제일먼저 언급되는 데 언약궤와 속죄소입니다. 언약궤란 언약의 돌 판을 담았다고 하여 언약궤라고 합니다. 궤란 상자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상자입니다. 조각 목에 금을 완전히 금으로 둘러싼 상자입니다. 조각 목은 광야의 아카시아 나무로 볼품이 없는 나무라고 합니다. 그런 나무를 서로 연결하여 짜 맞추어야 하고 거기에 안과 밖으로 완전히 금을 싸서 만든 상자이며 그 상자의 네 모퉁이에 고리를 만들어 같은 형식으로 만든 장대를 걸어서 제사장이 메고 다니게 합니다.

 

이 언약궤 안에 무엇이 담겨집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언약의 돌 판이 담겨집니다. 그래서 법궤라고 하고 증거 궤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피로 체결하고 언약의 잔치를 하고나서 모세가 언약의 돌 판을 받아 오는 40일 만에 하나님을 배반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 중에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피로 언약을 체결하고 언약의 잔치를 하고 언약의 돌 판을 받아 오는 그 기간에 언약을 파기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모세가 들고 내려온 돌 판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깨뜨립니다. 언약의 돌 판이 깨어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언약의 돌 판의 법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20:1-8절을 봅니다. “봉독”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너를 위하여 어떤 형상물로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라는 이 네 가지를 다 어기고 있는 현장이 금송아지 숭배현장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들고 온 하나님의 돌 판에 새겨진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비추어 버리면 그들은 다 진멸당하여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돌 판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돌 판이 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어지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피로 맺은 언약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처음 돌 판이 깨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하나라도 어김이 없이 다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로 하여금 다시금 돌 판을 만들어 오게 하셔서 다시 말씀을 새겨주십니다. 그 돌 판을 담아 두는 상자가 언약궤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담겨있기에 법궤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가 들어있기에 증거 궤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언약을 어겼다는 증거가 들어있는 두 번째 돌 판이 들어있기에 이스라엘의 죄악도 증거 하는 궤가 됩니다.

 

이것을 결론부터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9:1-5절을 봅니다. “봉독” 낱낱이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모형이며 실체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성막과 그 기구들을 보면서 그 자체의 크기와 규격과 모양보다 그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실체가 완성된 상황에서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성막과 기구들을 주셨는지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면 이런 성막과 기구들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어떻게 속죄가 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4절을 봅니다. 언약궤 안에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들어있다고 합니다. 언약궤 안에 처음에 들어간 것이 언약의 돌 판인데 이것은 이미 한번 깨어진 이후에 다시 만들어진 돌 판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기억할 때 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금송아지를 섬겼던 죄악을 증거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언약궤가 위치하는 자리는 성막의 가장 거룩한 지성소입니다. 그리고 이 성막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진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성막위에 구름이 머무르면 머물러야 하고 구름이 떠오르면 이동하여야 하기에 언제나 주목하여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언약궤 안에 나중에 더 담기는 것이 만나 항아리와 아론은 싹난 지팡이입니다. 먼저 만나 항아리가 왜 담기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19:33절입니다.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하늘로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9장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만 거두라고 하시는데도 이들은 더 많이 거두어 남겨두었다가 다음날 썩는 것을 봅니다. 안식일에 거두러 가지 말라고 하는데 거두러 갑니다. 이런 불순종의 모습이 담긴 만나 항아리입니다.

 

그 다음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모세와 아론만 잘난 척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고 싶어서 인도자가 된 것이 결코 아닌데도 모세와 아론에 대한 원망이 많았습니다. 다 같은 레위지파인데 누구는 지시만 하고 누구는 성막 말뚝이나 메고 다니고 이런 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7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열두 지파의 족장들의 지팡이를 가지고 오게 하셔서 각 족장의 이름을 쓰게 하고 하나님의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둡니다. 언약궤 앞에 두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날 가보니 아론의 지팡이에서 살구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있는 것을 보게 합니다. 이 지팡이도 담기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담겨있지만 이 세가 지는 다 무엇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증거물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여 금송아지를 섬겼다는 증거물이 두 번째 돌 판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는 것에 대하여 불순종의 증거가 담긴 만나 항아리입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싫다고 거역한 것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그러니 이런 불순종의 증거물이 담겨있는 것이 언약의 상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의 상자는 그 뚜껑이 덮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 상자가 열려지면 이스라엘의 거역과 불순종의 증거가 가득하기에 이스라엘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0-16절까지는 언약궤를 만들라는 말씀이고 17-22절까지는 이 언약궤의 뚜껑을 만들어 덮으라고 합니다. 언약궤 뚜껑은 순금으로 쳐서 만듭니다. 그 뚜껑에 연결하여 그룹 둘을 그룹이란 천사를 말합니다. 천사의 형상으로 날개를 만들어 구 뚜껑위에 붙여 만듭니다. 그러니 언약궤 뚜껑의 이름이 속제소입니다. 죄가 속죄되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죄의 증거물들이 담겨있고 그 곳에 뚜껑을 덮고서는 그 뚜껑 이름을 속죄소라고 합니다. 죄가 속하여지기에 시은소라고도 합니다. 은혜가 수여되는 장소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의 뚜껑이 열리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무엘상 6:19절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사사시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집니다. 그래서 홉니와 비느하스로 하여금 언약궤를 메고 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언약궤 앞에서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고 언약궤는 블레셋에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언약의 뜻을 모르고 언약궤를 마치 부적처럼 이용하려다가 죽임을 당하고 언약궤를 빼앗긴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전쟁에서 이긴 전리품이라고 자기들의 신전에 언약궤를 갖다 두었습니다. 그런데 언약궤 앞에서 그들의 신상이 넘어져 있어서 다시 세워놓고 다음날 보니 그들의 신상의 목과 손목이 부러져 문지방에 걸쳐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전염병이 돌아서 언약궤를 다른 성읍으로 옮기니 그곳에서도 전염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멍에매어보지도 않고 젖을 먹이는 두 암소의 수레에 실어 보내는데 소가 울면서 이스라엘지역으로 곧 바로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착한 언약궤를 열어보다가 죽임 당한 것입니다. 언약궤 홀로 적을 물리치고 돌아왔지만 그 언약궤를 열어보다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궤의 뚜껑은 열리면 그들의 죄악의 증거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언약궤의 뚜껑의 이름을 속죄소라고 하며 하나님은 이곳에서 이스라엘을 만나주시고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6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일에 어떻게 속죄하는지를 상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속죄소에 피를 일곱 번을 뿌려야 하고 향연을 피워서 그 속죄소를 가리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제사장마저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거룩하게 구별하는 곳이 속죄소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속죄소 덕분입니다. 그들의 죄를 덮어주시는데 그냥 덮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양의 피를 뿌림으로 그들의 죄를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6-10절입니다. 첫 장막은 제사장들이 상시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둘째 장막 즉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홀로 한번 들어가서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피로 속죄합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미리 무엇을 보여주셨는가 하면 첫 장막 즉 성막이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영원한 성소의 비유이며 육체의 예법입니다. 참된 것이 올 때까지 맡겨 둔 것입니다. 이 땅의 모형은 짐승의 피로 정결하게 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것은 짐승의 피나 인간의 제사장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11-22절입니다. 하늘에 속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르므로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량하시려고 자신이 죽으심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23-2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것이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언약궤와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히브리서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이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그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심판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와 상관없이 다시 오시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림자를 붙들어서는 안 됩니다. 골로새서 2:13-17절을 봅니다. “봉독” 그림자를 붙들지 마시고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그림자이며 허상입니다. 영원한 실체가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