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0: 17 탐내지 말라 2010. 8. 29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지난주에 거짓 증인을 내세워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신 분을 어떻게 배척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배척받으신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이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약속을 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증인을 만드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을 하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어떤 증인들이 되었습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려내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증거의 핵심입니다. 이 증거 앞에 구원받을 자는 회개하고 심판을 받을 자는 돌을 던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 거짓말 하는 자요 거짓 증인들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거짓 증인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기에 예수님이 처음과 끝임을 증거 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시작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시작하는데 결론은 인간의 결단과 결심과 꿈과 비전을 이야기하면서 더 나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예수님의 증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탐심을 이루고자 하는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은혜의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흘리신 하나님의 아들만 증거 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을 증거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런 증거를 싫어하는 것입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 이야기하면 나의 가치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이제 새사람이 되었으니 더 나은 자신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항의합니다. 이런 반발이 나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탐심 때문입니다.

 

오늘 본 말씀이 십계명의 마지막인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이 계명은 1계명에서 9계명까지 다 연결이 됩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 속에는 다른 신을 두려고 하는 탐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을 두려고 하는 탐심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인간이 아담의 의 후손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신이 되어있는 채로 태어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의 유혹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계명들이 주어져도 인간들이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인간 속에 있는 탐심 때문입니다. 문자적으로 지킨다고 하여도 자기의 신 됨을 위한 탐심인 것입니다.

 

단지 이웃의 집과 아내와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이웃의 어떤 소유도 탐내지 말라는 것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범죄가 탐심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선악과를 먹고 난 인간은 이제부터 자신이 신이 되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진짜 신은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선악과 따 먹은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이런 인간들에게 율법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율법을 가지고 인간들은 무엇을 생산하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율법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말을 합니다. 그 중에 십계명이 있습니다. 나는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울사도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자가 와서 자기를 믿으면 율법과 상관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이런 이단사설을 전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일을 열심을 다해 수행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였고 또 잡아 죽이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모든 율법적인 의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율법의 의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린다고 달려간 삶이 오히려 하나님의 죽이는 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의 기능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율법이란 인간이 죄 아래 갇혔다는 것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율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악해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가 율법을 기회로 삼아 죄를 짓게 합니다.

 

로마서 7:5-11절입니다. “봉독” 바울사도의 율법에 대한 해석입니다. 특히 탐심에 대한 부분이 있기에 이 부분을 보시면 탐내지 말라는 말씀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5절을 봅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입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입니다. 이때는 율법으로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율법을 지켜서 자신이 의로운 인간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사망의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율법을 부지런히 지키면서 자신은 십계명을 다 지키는 사람이라서 탐심도 제어하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사망을 위한 열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율법에서 벗어났기에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이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장 나오는 질문이 율법이 죄냐고 묻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율법은 거룩합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기능이 무엇이냐 하면 죄를 깨닫게 합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탐심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탐내지 말라는 율법을 몰랐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십계명만이 아니라 다른 율법들도 달달 외우며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탐심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금지하면 더 하고 싶은 욕망이 나오는 것으로 봅니다. 물론 율법의 기능이 이러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본다면 탐내지 말라는 율법을 바울이 지켰다고 생각하였는데 성령이 임하고 나니 자신이 탐내지 말라는 율법을 지켰다고 한 그것이 바로 탐심임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율법을 어기는데 자기는 율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것이 탐심입니다. 이런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초적인 탐심의 죄입니다.

 

7-8절을 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탐내지 말라는 율법을 자신이 지켰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오히려 탐심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율법 지키라고 해서 율법을 지켰는데 왜 내가 탐심이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고 여기는 그 상태는 아직 율법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가 율법의 조문을 지키는 자신이 살아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율법을 제대로 깨닫게 되고나면,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이 임하여 율법의 기능을 알고 나면 어떻게 됩니다. 전에 자신이 살아서 율법을 지킨다고 여긴 자신의 죄만 살아나고 자신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나를 죽이는 것인 것을 알게 됩니다. 10-11절입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십계명을 살펴본 결과 그 십계명을 지킨다는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들도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다른 의가 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탐심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에서조차 탐심이 나옵니다. 어떤 방법으로 나올까요? 누가 믿음이 좋은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탐심이 또 나옵니다. 저 사람의 믿음이 왜 저모양이냐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은 그 사람보다 믿음이 좋은 것으로 여깁니다. 이런 믿음은 은혜의 선물로 온 믿음이 아니라 여전히 율법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면 바울사도는 이런 다른 탐심이 없을까요? 고린도후서 12:1-10절입니다. “봉독” 바울이 무익하지만 왜 부득불 자랑합니까? 하도 잘난 체 하는 인간들이 많아서 그렇게 합니다. 바울이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합니다. 셋째 하늘까지 이끌려갔습니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가시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런 육체의 가시가 없으면 바울이 교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방차원에서 가시를 주셨는데 이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세 번이나 없애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람인데,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였는데도 고쳐주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만 하십니다. 바울이 당하는 그 엄청난 가시가 없으면 바울은 교만하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의 입을 막기 위하여 내가 자랑을 하지만 그러나 자랑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연약함만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사람들이 자기를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자기를 지나치게 생각할만한 일이 나타나면 육체의 가시가 작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나 당하였으면 이제는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높게 보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크게 쓰임을 받겠다는 것도 탐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도구를 사용하실 때에 그 개인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그 하나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길은 모든 무릎이 예수님이 이름 앞에 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지금부터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반드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사람들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기의 영광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탐심에 대하여 두 곳의 말씀만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3: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행하는 일치고 탐심 아닌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땅의 것이 아닌 위엣 것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야고보서 1:14-18절입니다.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탐심으로 선악과를 따 먹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욕심입니다. 세상적인 욕심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욕심도 탐심입니다. 그런 탐심들이 다 신이 되려고 합니다. 최초의 유혹에서 벗어날 인간이 없습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을 누가 벗어납니까? 오직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 십자가를 지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너를 구원하여 보라는 그 신 됨의 자리를 포기하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는 자리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하늘의 은사와 선물이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