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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0:7-10 천년이 차매 2010. 3. 14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설교원고를 컴퓨터로 작성하면 문법적으로 틀린 글에는 밑에 빨간 줄이 나옵니다. 그런 단어 중에 하나가 “차매”라는 단어입니다. 비표준어라고 되어있습니다. 다른 번역을 보니 “끝나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상의 카운트다운은 아닌 것입니다. 천년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사이 전체를 말하는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천년 왕국 안에 있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곳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의 확증을 보이시는 것이 천년이 차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4-5절을 봅니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초림 하실 때에도 때가 차매 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셔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종이 아니라 아들이기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때가 차매 이 땅에서 오셔서 행하신 일을 이제 마무리하실 때가 찬 것입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미리 증거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종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2천 년 전부터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사망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간단히 말하면 믿는 자는 생명을 얻었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첫째 부활에 참여된 자며 이들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첫째부활에 참여된 자는 복이 있는데 그 복이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사망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살다가 괴로우면 탁 죽어버리면 된다고 여기는 것은 둘째 사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한번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 이후에 심판이 있는데 이 심판은 모든 죽은 자들이 다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다음 주에 다시 나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9:27절 전후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26절을 보시면 때가 차서 처음 오신 그 때가 세상 끝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처음 오신 때가 바로 세상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림과 재림사이가 다 종말이며 때가 찬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역사의 발전이라든가! 진보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미혹을 받아 사람들은 세상의 성공이라는 바벨탑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에 무엇이 중요한 것입니까? 노아시대에,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무엇이 정말 필요한 것입니까? 예수님이 오실 때도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7절에서 ‘천년이 차매’ 라는 것은 하나님의 때가 다 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시고 재림하실 시간이 다 찼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이 결박당하였다가 이제 영원한 지옥형벌에 들어가야 할 때가 다 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이 차매 사탄이 잠시 놓였다는 것은 마지막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탄의 패배는 이미 앞에서 보았던 아마겟돈의 전쟁이나 백마 탄 분의 전쟁에 의하여 패배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사탄이 패배하는 최종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8절입니다. 천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입니다. 옥에서 놓였다는 것은 마지막 최후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결박당한 사탄이기에 영원한 패배를 당하기 위해 놓이는 것입니다. 이 사탄이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서 싸움을 붙이는데 그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습니다.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다고 합니다. 바다의 모래와 같다고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을 약속하실 하신 말씀 안에도 들어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2:17절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아브라함이 받은 후손의 번성을 말하기 위하여 수가 많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라고 하는데 더 중요한 의미는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적을 이기신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약속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이 있고 이삭이 있습니다. 에서가 있고 야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분을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로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에 속한 자들은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다는 것은 땅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땅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편에 속한 자는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늘과 땅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어디에 소속되었느냐는 것입니다.

 

9절을 봅니다.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즉 사탄에 속한 자들이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진이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성이란 구약으로 말하면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자기 백성들을 말합니다. 이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둘러 싸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는 요한계시록의 1차수신자들은 이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거 함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고 사자의 밥이 되고 만물의 찌끼 같은 여김을 받을 때에 이런 말씀은 그런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하여 환난이이 핍박이나 고난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말씀은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심판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을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워버린다고 하니 소멸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멸되어버린다는 한번 죽으면 끝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불로 태운다는 것은 심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을 보시면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여되는 자는 이들을 따른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은 자들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13절과 14절에 나옵는데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

 

계시록의 끝으로 올수록 무엇이 분명하여집니까? 하늘과 땅이 분명하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용, 옛 뱀, 마귀, 사탄, 짐승, 거짓 선지자, 이들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무엇을 위하여 살았습니까? 무너질 바벨론을 향하여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바벨론의 무너짐을 완료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땅에 속한 자들이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람쥐 쳇바퀴와 같아서 무너져도 또다시 건설하는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고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김예슬이라는 학생이 자기 학교 벽에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일부만 소개합니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 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거 거세게 나를 채찍질 해 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중략- 이제야 알았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이제는 이런 싸움이 아닌 다른 싸움을 싸우겠다고 합니다. 탈주하고 저항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누가 더 강한지 두보 볼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정말 끝없는 트랙에서 빠져나왔습니까? 새로운 싸움이 또 밀려있는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이 졸업하면 또 회사에서 경쟁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 모두가 다 이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모습을 죽은 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나는 것입니까?

 

에스겔 37장을 봅니다. 여호와의 권능에 이끌려 에스겔 선지자가 무엇을 봅니까? 마른 뼈가 가득한데 심히 마른 뼈들입니다. 이것들이 살겠느냐고 합니다. 주께서 아십니다. 이 마른 뼈들을 향하여 대언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니 뼈들이 자기 자리를 잡고 살이 채워지고 힘줄이 생기며 가죽이 덥혀 지지만 생기가 없습니다. 다시 생기에게 대언하니 그들에게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가 됩니다. 생기란 공동번역에서 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숨이 그들을 살려내는 것입니다(1-10).

 

에스겔 38장을 보시면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에게 예언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곡과 마곡으로 나오는 내용이 에스겔서에서 예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19장에서 백마 타신 분의 승리로 인하여 패배한 적들이 모든 새들에 의하여 뜯어 먹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내용도 에스겔 39장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스겔서에서는 적들을 여호와하나님께서 불러오셔서 자기의 성을 대적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고는 심판을 하시는데 에스겔 38:22-29절을 봅니다. “봉독” 불과 유황을 비 내리듯이 하셔서 여러 나라에 여호와의 위대함과 거룩함을 나타내셔서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과 이러한 예언이 역사 속에서 부분적으로 그림자로 보여주었습니다. 범죄 함으로 바벨론에 포로고 잡혀가고 70년 만이 돌아왔습니다. 곡과 마곡의 위치가 북쪽인데 북쪽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도 부분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전체적이고 실체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끝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복음이 시작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유대인들이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니엘 12:1-3절의 말씀도 봅니다.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때가 찼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마른 뼈다귀와 같고 무덤에 있던 자와 같은 자들이 지금 주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마른 뼈다귀에 말씀을 대언하고 생기를 대언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니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고개를 들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지금 내가 달려가고 있는 트랙이 무슨 길로 달려갑니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하루라도 멈추어 서서 어디로 달려가는지 그 끝을 한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한곳만 보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1-12절입니다. “봉독” 주님 다시 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