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요한계시록 22:10-13 인봉하지 말라 2010. 5. 9

 

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작은 연못’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노래제목인데 노근리 사건을 영화로 만든 영화제목이 된 것입니다. 한국전쟁 초기 1950년 7월에 북한군에 밀리던 미군이 대전과 부산으로 가는 길목인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 저지선을 확보하기 위하여 노근리와 주변마을을 소개(疏開)하였습니다. 미군이 보호하여 줄 것을 믿고 500여명이 피난길에 나섰는데 오히려 미군의 비행기 포격이 쏟아진 것입니다. 그 포격에서 살아남은 사람 300여명이 쌍굴다리 밑에 피하였다가 미군 1기병사단 7기병연대 2대대 병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피난민 행렬 안에 적군이 숨어있다는 미확인 정보를 듣고서 쌍굴다리 안을 향하여 총을 쏘았는데 300여명 가운에 살아남은 자가 겨우 25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체를 방패막이로 삼고 핏물을 마셔가면서 살아남아 한국정부와 미국에 이 사실을 확인하여 달라고 수 십 년을 진정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9년 AP통신 기자가 이 사실을 추적하여 결국 밝혀낸 것입니다. 이 취재로 2000년 기자들의 최고의 상이라는 퓰리처상을 받기도 하였고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성경과 별 상관도 없는 것 같은 서론이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는가 하면 그 기록물들이 봉인(封印)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는 비밀문서에 속하여 있었습니다. 비밀문서라도 50년이 지나면 해지(解止)가 됩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영구히 비밀로 봉하여 두기도 합니다만 그 해제된 문서를 기자들이 추적하여 미군의 경로와 그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밝혀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봅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봉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때가 가깝다고 합니다.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은 1차적으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계시록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의 말씀이 다 해당이 됩니다. 봉인하지 말라는 것은 그동안 봉인이 되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봉인이 되어 있다는 것은 비밀금고에 넣어서 열쇠로 잠가 두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늘 공개되어 있지만 성경의 내용을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깨닫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1-13절입니다. “봉독”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뵙게 됩니다. 그때 고백이 화로나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입술이 부정한 자 중에 거하면서 거룩한 하나님을 뵈었기에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천사가 제단의 숯불을 그 입에 대면서 정하여 졌다고 합니다. 그때 주께서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 것인가 하는 목소리에 이사야가 자신이 가겠다고 합니다. 가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백성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도 듣고 깨달아 돌아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어야 우리의 상식에 맞는 내용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아예 고침을 받아 돌아오지 못하게 차단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달아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하실 일일 텐데 왜 이렇게 돌아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는 것입니까?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결과 죽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이 스스로 생명나무를 따 먹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 에덴동산에 두루 도는 화염검을 든 천사들이 지키는 것입니다. 한번 실수하여도 용서하시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도록 하시면 되실 텐데 왜 그러냐고 질문하는 것이 바로 선악의 지식이 들어온 영향입니다.

 

창세기 3:22-24절입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런 말씀이 인봉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봉이 되어 있으니 온갖 억측들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것도 인간의 행위로 생명에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이 먼저이고 모세언약이 나중에 있는 것은 왜 인간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의에 이를 수가 없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하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언제까지 눈이 감겨져야 하고 귀가 막혀져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대답이 이 땅이 심판하여 황폐하게 되고 십분의 일이 남아도 그것마저 다 잘려지고 나서 거룩한 그루터기가 남을 때까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거룩한 그루터기를 거룩한 씨라고 합니다.

 

이 거룩한 씨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비유로 전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가 하면 이사야 선시자의 예언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따로 비유를 설명하여 주어도 그때뿐인 것입니다. 왜 제자들도 알아듣지 못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심판인 십자기를 지셔야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장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다 황폐하여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판하여 황폐하여 졌는데 그 중의 십분의 일도 다 잘려 나가고 나서 그 그루터기 거룩한 씨로 다시 시작하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2:37-41절입니다.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사53:1)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사6:10)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사야 선지자가 심판을 받고 난 후 거룩한 씨로 말미암을 것이라는 말씀이 바로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주어지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일로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인간은 눈이 감겨져야 하고 귀가 막혀져야 하고 스스로는 생명으로 돌아올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주를 배척하고 죽이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인봉하여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성경을 스스로 연구하여 생명에 이르고자 열심히 읽고 외우며 실천한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1-16절입니다. “봉독”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증거라는 말의 증거가 다른 사본에는 비밀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증거,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나 철학이나 수사학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것들로 하나님의 비밀을 증거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만 전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바울의 전도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않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말을 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고 꺼려하는 예수님의 십자가만 전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를 전하는데도 믿는 자들이 나온다는 것은 그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6-7절을 봅니다. 6절의 온전한 자란 장성한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지혜를 말하는데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지혜입니까?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은밀하다는 것은 봉인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은밀한 지혜, 하나님의 비밀한 지혜는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것인데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전에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가 만세전에 감추어져 있었으니 선악과를 따 먹은 인생이 생명나무로 스스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감추어진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일방적이고 거저주시는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이런 은혜를 예수님 당시에 한 사람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에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64:4절과 65:17절을 인용하여 9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눈으로 보지도 귀로 듣지도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박영선 목사의 표현대로는 지렁이가 매니큐어를 생각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인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시중드는 천사들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1:3-12절입니다. “봉독” 이러한 복이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기에 천사들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제 복음으로 열렸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10-12절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성령이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그 사람의 영외에는 모릅니다. 사람이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도 오해가 더 많은 것입니다. 20년을 넘게 함께 살아도 그 마음하나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마음을 성령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과 승천으로 아버지의 영을 받아 아들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이 임하게 되면 무엇을 알게 되는 것입니까?

 

12절을 봅니다.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들에게 모든 것을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햇빛과 비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에게 생명과 호흡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뿐 아니라 그 아들까지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위에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인한 것이 열렸다는 것은 은혜의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그동안 인간을 속이고 있었던 선악의 체제가 십자가로 무너지고 은혜의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1-14절입니다. 인봉하여 있던 두루마리를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이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을 통하여 그 인봉된 것이 다 열렸다고 합니다. 인봉이 열린 것은 약 2천 년 전에 열렸습니다. 사도행전 17:30-31절입니다. “봉독” 알지 못하던 시대는 하나님께서 간과 하셨지만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들에게 다 명하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정하신 사람으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으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온 세상을 심판할 근거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 인봉이 열려진 시대입니다. 그 심판을 작정한 날이 임하기 전에 지금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