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다운=>마우스우측클릭 다른이름으로 대상 저장하세요

동영상설교 다운=>마우스우측클릭 다른이름으로 대상 저장하세요

요한계시록 20:11-15 최후의 심판 2010. 3. 21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말씀을 우리는 평소에 무시하면서 살아갑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나는 아직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도 마귀가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와 사망아래 갇혔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미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는 살아있다고 우기면서 그 죽은 삶을 확장하고 발전시키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시신을 들썩 거리면 악취가 나듯이 그런 삶이 인간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하신 것은 무덤을 보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멀쩡하게 살아서 자기들은 거룩하게 산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정치, 교육, 법조계를 보시기 바랍니다. 악취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동일하게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 죄악이 관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거하실 수가 없어서 떠나신 것입니다. 그러자 인간이 육체가 되었습니다.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사람들 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내가 주인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악취 나는 세상을 이제는 물로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로서 심판을 하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 심판을 내가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정말로 인정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기의 행위가 왜 책망을 받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이 임하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기 때문입니다(요16:8).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 알기에 자신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함을 아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책망을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결국 자기 행위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의에 대하여서도 사람들은 자기 의를 챙기려고 합니다. 로마서 10: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란 율법 외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인데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들은 결국 자기 행위를 의지한 것이 됩니다.

 

로마서 9:30-33절입니다.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사”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까? 자기 행위를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자기 행한 대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선악과를 따 먹을 때의 유혹이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모든 것을 결정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범죄 이후로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사상이 된 것입니다.

 

이런 선악과 따 먹은 것이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됨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인간들이 모르도록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3-6절을 보시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가려지는 자는 망하는 자들에게 가려진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자가 나왔다는 것은 어두운데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신 그 창조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서론을 길게 말씀드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특징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한번 생명 주어놓고서는 이제 그런 생명으로 잘 살라고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기 몸으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은혜의 사건인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에 첫째 부활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 행위가 왜 죄가 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일입니까? 아주 작은 일에도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는 자들이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더구나 남의 공로까지 가로채면서 까지 자기를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무명으로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자기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름 내는 너희보다 의롭다고 하는 자기 행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인자가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에 양과 염소를 분리하듯이 분리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편의 양들에게 너희는 내 아버지께로부터 복을 받을 자들이여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 벗었을 때에 옷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하였습니까? 자기들은 주님께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왼편에 선 자들에게는 이와 정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왼 편에 선자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최후에 심판을 이기려면 가난한 사람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행위를 의지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정말 은혜로 행한 것은 자기 행위가 아니기에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고서도 무익한 종이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지만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은 자기 행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왼편에 선자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자기들은 할 만큼 했다는 것입니다. 이레에 두 번이나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텃밭의 채소까지 십일조를 하고, 전도도 하고, 구제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결국 자기 행위를 의지하였기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제부터 그런 행위 하지 않기로 나오는 것입니다. 수요일 귀찮은데 뭐하려 나가! 그것도 다 자기 행위야! 이러고 앉아있으면서 자기는 행위를 의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도 행위입니다. 다 심판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이제 본문을 11절을 봅니다. 크고 흰 보좌를 봅니다. 흔히 백 보좌 심판이라고 하지요! 이런 백 보좌 심판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행위를 경쟁시키는 이단들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특정 사람, 특정 단체에 충성하기를 다짐합니다. 임직식이라는 곳에도 가보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제 어느 권사취임식 한 교회도 한 사람이 2백 만 원씩 헌금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해야 심판도 받지 않고 하늘에 상급도 쌓인다고 하니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한 푼도 내지 않고 교회 경상비로 다 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의가 됩니까? 또 다른 자기 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의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흰 보좌 앞에서 땅과 하늘이 피하여 간 데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업적을 남기는 것은 땅위 하늘아래입니다. 아무리 보암직한 것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들이 피하여 간 데가 없는 것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이 다 사라진 마당에 누가 무엇을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남겼느냐 하는 것은 다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만 남는 것입니까? 인간들만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도 없다고 여기며 살았고 자기 행위만 의지하며 살았던 모든 인간들을 다 다시 살려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은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죄와 사망아래 있었기에 살았다는 이름은 있었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한다는 것은 초림과 재림사이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았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섭니다. 세상에서 왕이라고 하여도 심판대 앞에 사는 것입니다. 종으로 살았던 작은 자라도 그 앞에 섭니다. 그 보좌 앞에 책들이 펴져 있습니다. 또 다른 책이 펴져 있는데 곧 생명책입니다. 그러니 책은 두 종류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생명책이라는 단수의 책입니다. 그리고 책들이라는 복수의 책인데 이것을 행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최후의 심판 때에 누가 서게 되는 것입니까?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서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부터 사탄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을 다루고 있기에 그들과 함께 땅에 속하여 죽은 자로 살았던 사람들이 다 이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21장부터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 자들만 이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의지 한자들에 대하여서 처음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방인들은 당연히 자기 행위만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는가를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심을 통하여 인간이 자기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율법을 통하여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고서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선과 악을 결정하면서 산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을 이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바다도 죽은 자들을 내어 놓습니다. 바다는 성경에서 혼돈의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망과 음부와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늘과 땅이 간 곳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혼동과 사망의 세력들이 발붙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과 바다가 전부인양 온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불철주야 달리는 이 인생들은 결국 이 하늘과 땅과 바다가 다 사라지고 나면 그들의 허무감이 어떨까요? 생명 없음이 최후의 심판 때에야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나서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14-15절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 째 사망 곳 불 못입니다. 그런데 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입니까?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못한 자들입니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무엇을 의지한다고 하였습니까? 자기 행위만 믿고 사는 것입니다. 사탄이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고백하겠습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 행한 것이 죄 뿐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니 오직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책에 기록이 된 사람은 모든 면류관을 벗어서 예수님께 돌려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비록 보잘것없고 고난의 삶에 처하여 있다고 하여도 생명이신 예수님을 얻었다면 다 얻은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