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요한계시록 21:6-8 값없이 2010. 4. 4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오늘 교회로 왜 모였습니까? 예배드린다고 합니다. 예배란 말 그대로하면 예를 갖추어 절한다는 뜻입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 예를 갖추기는 합니까? 여러분이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에 커피 마셔 가면서 제사지냅니까? 절하는 시간에 휴대폰 켜 놓고서 휴대폰 울리면 절하는 것 멈추고 전화 받습니까? 우리는 조상부터 예수를 믿어서 제사를 안 지내기에 모른다고 하시겠습니까? 저는 어려서 저의 집에서 제사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 가난한 중에도 정성으로 제물을 준비하고 목욕하고 새 옷을 입고 예를 갖춥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제사처럼 정성을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제사가 결코 아닙니다. 예배란 예수님께서 이미 자신의 몸으로 속죄제와 화목제를 다 완성하신 것에 참여하여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의 중심은 말씀의 선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과연 말씀에 관심이 있는가 하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한다는 것에 감사가 나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지옥을 경험하지 못하면 이런 말씀에 대하여 감사가 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지옥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바르트의 묵상 집에서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매일 거짓되고 비뚤어진 세상을 건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거짓과 불법이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형제들을 심하게 등쳐먹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가인아, 네 형제는 어디에 있느냐? 이것은 바로 우리의 삶에 드리워져 있는 그늘입니다. 교회는 이 그늘 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리고는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들려지기를 소원합니다.

 

6절을 봅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이것이 우리에게 없기에 또는 믿어지지가 않아서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부족하다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저만하면 만족할만하다고 보이는데도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나는 아직도 목마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는 지금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너무나 과분한 은혜입니다. 이런 분이 계십니까? 이런 만족과 감사가 없는 것은 다 이루심을 믿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다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셨다는 것은 미완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헬라어 철자의 처음과 끝입니다. 이 말씀은 시작도 결론도 하나님이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차 이룰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루었다는 완료형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아멘이 되시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다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셔야 하시는 것입니까? 처음 하늘과 땅의 창조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일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눈을 뜨고 보니 모든 천지가 완성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값없이 천지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안식을 하시며 인간에게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모든 창조의 선물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기에 안식함으로 값없이 주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루신 이 일에 사람이 한 것은 무엇입니까? 한 짓이라고는 죄 지은 것 밖에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합동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이 지옥이 아니라면 어디가 지옥이겠습니까? 이런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자들마저 죽여 버리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요한계시록 11:8절입니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이 세상 전체가 소돔이며 애굽이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이루심의 기준이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십자가 안에 들어오면 완성이고 십자가 밖은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갈라디아서 6:14절에서 이렇게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새 번역으로 보면 뒷부분이 이렇습니다.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인데 이것도 일한 것이 없이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 죽어 가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 다 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펄펄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세상 사람이 보면 저 사람이 다 되간다는 정도가 아니라 다 되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야망이 없습니다. 더 이상 이루어 내어야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냥 쉬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멍에를 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가 무엇이겠습니까? 십자가 이지요! 그러니 십자가를 졌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무엇이 주어집니까?

 

6절입니다.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심의 결과로 목마른 자들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목마른 사람입니까? 다들 목마르다고 하는데 그 목마름은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 목말라한 그런 목마름이 아닙니까? 우물가에 여인처럼 난 구했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이런 복음성가가 있지요! 그런데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물동이도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런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우리가 목마른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니라 지옥에 갈 사람들이 원하는 목마름으로 목말라하는 것은 아닙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들을 목말라하고 있다면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 이루심의 결과로 생명수 샘물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목마름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로 만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3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목마른 자들에게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합니다. 이것은 포도주와 젖이 아니라 생명수 샘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주지도 못하는 헛된 양식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영혼이 살 것인데 그 양식이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로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없이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37-38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도 나고 이해도 되고 믿어도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더 이상 세상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생명수 샘물이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을 믿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이기는 사람이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며,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이며, 감추었던 만나를 주는 것이며, 만국을 다르시는 권세를 주시며, 흰 옷을 입을 것이며,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며,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십니다. 이렇게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까? 무엇을 이기라고 하면 경쟁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남을 누르고 앞서는 것을 말합니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되기에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이기라고 합니다. 공부도 경쟁해서 이기라고 합니다. 회사에 가도 경쟁해서 이기라고 합니다. 교회도 가보니 이웃 교회와 경쟁하여 이기라고 합니다. 구역별로 성경퀴즈해서 이겨야 상금이라도 받습니다. 그러니 이기라고 하면 당장 우리가 열심을 다하여 남을 이기는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기라고 하는 것은 값없이 주시는 것을 끝까지 붙들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이기는 자가 다 값없이 주시는 것을 끝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왜 값없이 주셔야 합니까? 시편 49편 6-8절입니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돈입니다. 속담에 돈은 귀신도 부린다고 합니다. 이런 속담은 돈의 위력을 실감나게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생명을 위한 속전을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것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자기는 죄인이라서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니면 나는 둘째 사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끝까지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하여도 육체로 마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갈라디아서 3:1-14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님의 저주가 대신 저주입니다. 이 복을 이방인인 우리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복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찬식을 행합니다. 떡을 떼는 것은 예수님의 살 찢으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잔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다시 오실 때 까지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살과 피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값을 주고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의나 행위나 공로로는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라고 한 것입니다. 로마서 4:1-8절을 봅니다. “봉독” 이런 것을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는 값없이 받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죽을 때 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그것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이기는 자들인데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아들이 된 것입니다. 아들이 된 것은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받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값없이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지 않는 자는 두려워하는 자며 믿지 않는 자며 흉악하며 살인과 음행과 점술과 우상 숭배자며 거짓말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값없이 받은 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자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1:3-7절을 봅니다. “봉독” 이러한 복을 주신 것은 6절에서 그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