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1:1~13 여섯째 나팔(4) 2021. 3. 14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2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1)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지난주에 사도 요한이 두루마리 책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러자 입에는 달지만 배에서는 쓰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 책을 받아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인 십자가로 다 이루신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입에는 달콤하지만, 인간의 욕망인 배라는 신을 공격하는 일이기에 배에서 씁니다. 복음을 받은 자 본인도 욕망이 있기에 그 욕망을 무너뜨리는 복음이기에 배에서 씁니다. 동시에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입에는 달지만, 배에서는 쓰게 됩니다. 지난 한 주간 얼마나 쓴맛을 보았습니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쓴맛을 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상당한 분량이지만 한 번에 다 봐야 할 내용이라서 죽 읽어나가는 방식으로 할 겁니다. 필요한 성경의 내용은 원고에 기록하여 두었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전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립니다. 사도 요한이 두루마리 책을 받아먹은 이유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10:11).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약속하신 내용과 같은 말씀입니다(28:19~20, 1:8). 말씀으로 예수님을 증거 하면 고난이 옵니다(1:9, 6:9). 구약이나 신약이나 말씀을 받은 자는 쓴맛을 봅니다. 11장은 구약의 증인들이 먼저 받은 고난을 말함으로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알려줍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봉독 성전을 측량하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에스겔 40~44장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환상 중에 성전을 측량하라는 말씀을 듣고 측량하여 세세하게 기록합니다. 성전을 측량하는 이유는 성전에 들어올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별합니다(44:9~10). 그런데 들어오지 못하고 쫓겨난 자들을 다시 돌이키신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성전을 측량한 후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는 것도 보여주시면서 결국은 이 성전이 건물이 아니라 생명의 물이 흘러나옴을 에스겔 47장에서 말씀합니다. 그 물이 흘러가는 곳을 또 측량합니다. 그리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살아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은 심판의 자리입니다. 이러한 측량은 구원과 심판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본문 1~3절을 다시 봅니다. 성전을 측량하는데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기에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합니다. 성전 바깥마당은 이방인들도 와서 경배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성전 바깥마당이 마흔두 달 동안 이방인들에 짓밟힌다는 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방 나라를 하나님의 몽둥이로 사용하시는데 그 나라들이 이집트, 앗수르, 아람,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제국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힙니다. 모세 오경에 없는 절기가 신약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0:22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수전절이란 헬라제국의 안티오쿠스 4세의 군대가 주전 167년에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성과 성전을 짓밟습니다. 주전 165년에 유다 마카베오가 헬라군을 물리치고 성전을 정결하게 하여 봉헌한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이 수전절입니다. 이 정도로 구약 시기에 이방인들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짓밟았습니다. 그 기간이 마흔두 달입니다. 이 마흔두 달 동안 증인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데 마흔두 달을 날짜로 계산하면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여 마흔두 달이니 천이백육십일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한때 두 때 반 때입니다(12:7). 이 모든 기간은 구약 전체로 봐야 합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엿새 동안 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십니다. 창조의 완성을 칠이라는 숫자로 계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7, 안식년은 7, 안식년을 곱하면 49년이 안식년이지만 그다음 해 50년을 희년이라 하여 놀라운 해방을 약속합니다. 이러한 날짜들은 하나님의 창조가 7로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구약이 마흔두 달, 한때 두 때 반 때, 천이백육십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약도 마흔두 달, 한때 두 때 반 때, 천이백육십일입니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을 완성하심이 칠로 완성됩니다. 구약 족보도 42대로 정리합니다.

 

마태복음 1:17절입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 다윗부터 바벨론까지 14, 바벨론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입니다. 합하면 42대입니다. 42라는 숫자를 맞춥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겁니까? 아담부터 족보를 따지지 않고 왜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까지 42를 맞추는 겁니까? 마태복음의 일차 독자는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마흔두 달을 아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 위의 조상들도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 함유시킵니다.

 

다시 본문 1~3절을 봅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합니다. 크기를 측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의 수를 계수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기에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자신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할 것이라고 합니다. 두 증인의 증언 기간도 천이백육십일, 곧 마흔두 달이라는 것은 구약 전체의 증인들을 말합니다.

 

본문 4~6절입니다. “봉독 여기에 나오는 증인들은 다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한 선지자들입니다. 4절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합니다. 스가랴서 4장에서 스가랴 선지자가 환상을 보는 내용입니다. 그 당시의 두 감람나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입니다. 5~6절에서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를 삼켜버리게 한 것과 예언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선지자는 엘리야입니다(왕상18, 왕하1). 물을 피로 변하게 하며 여러 재앙을 내린 자는 모세입니다.

 

구약을 말할 때 율법과 선지자라고 합니다(16:16).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이라고 합니다(24:44). 그러므로 모세와 엘리야가 율법과 선지자라는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화하시는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17:3). 누가복음 9:30~31절입니다.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엑소도스, 출애굽, 십자가, 출 세상)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시 공간을 초월한 놀라운 일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목격합니다.

 

본문 7~8절입니다.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가 언제입니까? 모세와 엘리야만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스룹바벨만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모든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래서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증거 한 자들이 목 베임 당한 자들인데 이들이 증인들입니다. 이들이 신원함으로 심판이 일어나는 일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 증인들이 먼저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증언을 마칠 때란 모든 구약성경이 마지막 구약의 선지자 세례요한의 손가락에 모여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일이 증언을 마칠 때입니다. 그 증언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십니다.

 

다시 본문 7~8절을 봅니다. 구약의 증인들이 증언을 마칠 때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자들의 증거가 끝난다는 말은 드디어 구약의 모든 증인이 증거 한 그 그리스도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죽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큰 성이라고 합니다. 큰 성이란 성경에서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일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13:33). 그러므로 그 큰 성, 시체가 길에 있다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한 겁니다.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며 애굽인데 바로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예루살렘입니다. 그 예루살렘의 십자가에서 구약의 증인들이 함께 죽는 겁니다.

 

구약의 모든 증인을 두 증인이라고 하지만 증인은 두 사람 이상이어야 하기에 두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구원받는 모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영적이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영적으로 소돔이며 애굽인 이유는 예루살렘이라는 거룩한 성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이들의 교훈을 따른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겁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에서 일어난 영적인 놀라운 일은 구약의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나게 하시는 겁니다.

 

본문 9~11절입니다. “봉독 구약의 증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영적으로 일어난 일을 지금 요한이 보고 있습니다.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두 선지자의 죽음을 보고 죽인 자들이 서로 선물을 보내며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 두 증인의 죽음이 영적인 내용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증인이 예수님과 함께 죽임당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유대인들의 장례 예식대로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급하게 장사지내느라고 대충 장사를 지낸 겁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에 그 시체에 기름을 붓기 위하여 무덤을 찾아가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구약의 증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영적으로 사도 요한이 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만이 아니라 다른 말씀을 드리면서도 종종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자리라고 말입니다. 구약의 모든 성도를 십자가로 끌어들여서 구원하십니다. 신약의 모든 성도도 십자가로 끌어들여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역사라는 시공간에서 약 2천 년 전에 구약의 성도들은 단번에 영원히 그 피로 온전케 하신 겁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이 십자가 이후로 재림 때까지 증거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후로 재림 때까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복음을 믿는 순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고 함께 하늘에 앉혀진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2:6). 그러나 이 역사 속에서는 구약의 증인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봉독삼일 반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니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즐거워하던 사탄과 그 무리가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삼 일 만에 부활하시는데 왜 이들은 삼일 반 후에 부활하는 겁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이들이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때의 부활은 몸의 부활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늘에 앉혀진다는 에베소서 2:6절의 말씀도 몸의 부활은 아닙니다. 우리 몸의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일어날 일입니다. 그러므로 삼일 반 후라고 합니다.

 

본문 12~14절입니다. “봉독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올라오라 함을 듣고 삼일 반 후에 살아난 자들이 하늘로 올라가니 원수들도 구경합니다. 무저갱에서 나온 자들이 구약의 증인들도 죽이고 예수님마저 죽였다고 좋아하였지만 그들의 잔치는 삼일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 그들은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원수들이 구약의 증인들이 구원받음을 보고 놀라는 겁니다. 그때 큰 지진이 일어나 성 십 분의 일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구약 불신자의 심판입니다. 그런데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기서 남은 자들은 십자가 이후의 성도들입니다.

 

마태복음 27:50~53절입니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성도 중에 많은 사람이 실제로 일어나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고 합니다. 십자가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증거 하는 증인들입니다. 나중에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하심이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증거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복음을 듣고 믿는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골로새서 3: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