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9~20 하나님 우편에(2) 2020. 5. 24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오늘이 마가복음 마지막 설교가 됩니다. 지난주에 본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부활하신 후에 40일간 지상에 계시면서 열두 번 정도 자신의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다는 말씀은 다윗이 시편 110:1절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내용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할 때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리라는 말씀을 듣고 옷을 찢으면서 신성모독이라고 하여 사형언도를 내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이 임한 제자들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을 증거 합니다. 그러자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갈면서 돌을 치는 자들도 나왔습니다. 그러면 왜 믿는 자도 나오고 돌을 치는 자도 나옵니까? 이 복음을 믿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자기의 피로 구속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보좌의 우편자리는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권능의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스데반을 죽도록 두시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이 이렇게 증거 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5~11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1)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3)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하나님과 동등 되심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은 자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잘 돌보아 주셔야 주님의 주님 되심이 더 드러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하게 살아가면 보이지 않는 주님이 살아 계시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땅에 속한 생각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은 십자가의 방식으로 전해집니다.

 

골로새서 3:1~5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위의 것을 찾습니다. 위의 것이란 황금보석 꾸민 집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림을 받아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이어지는 5~11절입니다.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1)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지난주에 에베소서 1장과 2장에서 본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라면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위의 것을 찾습니다. 그러나 아직 죄의 몸으로 이 땅에 살아가기에 우리 안에도 탐심이 나옵니다. 그런데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런 탐심이 우상숭배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새 사람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직 옛 사람과 그 행위가 있기에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위에 속한 나라에 합당하지 않기에 이 역사 속에서 반드시 해체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에까지 새롭게 됨을 입은 자라고 합니다. 이 안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가 만유가 되시고 만유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유란 전부라는 말입니다. 전부가 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충만이 되십니다.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세상에서 성공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셔서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 부어주십니다. 지금도 이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죄가 정결하게 되는 일은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0~13절입니다. “10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처음 만든 땅과 하늘은 멸망할 것이며 옷과 같이 낡아지지만 주님만이 영존하십니다. 그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심을 시편 110:1절로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2:8~9절입니다. “8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2)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8절은 시편 86절을 인용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면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발아래 복종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기에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성경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듣습니까? 기록된 말씀을 듣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왜 본다고 하지 않고 듣는다고 합니까? 옛날에는 성경이 너무 귀하여 성전이나 회당에서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읽는 자는 단수이고 듣는 자는 복수입니다.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의 역사로 믿게 되면, 보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지금 만물을 다스리고 계심을 눈에 보듯이 믿게 됩니다. 이것을 듣고 믿는 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어지는 10~13절입니다.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구원의 창시자가 고난을 통하여 많은 아들들을 그 영광에 이끌어 가시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십자가로 구원하십니다.

 

히브리서 8:1~2절입니다.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하늘의 참 성소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자장도 그림자 역할입니다. 실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8:34).

 

히브리서 10:9~14절입니다.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1)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옛 언약을 첫째 것이라고 합니다. 옛 언약인 율법을 예수님은 십자가로 완성하셔서 폐하셨습니다.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둘째 것 곧 새 언약을 자신의 살과 피, 곧 십자가로 세우십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써 단번에 영원히 의롭게 하시는 언약입니다. 이미 구약에 예언된 새 언약을 예수님은 십자가로 이루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을 발등상 되게 하실 때 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복음을 듣고 내가 예수 죽인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2:1~3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구약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산 자들이 허다한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고 합니다. 그 믿음의 경주란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 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을 바라보았듯이 오늘날도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성도도 묵시적으로 함께 앉았지만 역사적으로 이 땅에 살고 있기에 징계를 받습니다. 징계는 아들들에게 주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베드로전서 3:18~22절입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2)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3)표니 곧 4)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십자가로 단번에 죄를 속하셨습니다. 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약의 모든 믿는 자들을 단번에 속죄하시고 하늘에 앉히십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승천 하셔서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계십니다.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나 아직 눈으로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은 이 기록된 말씀을 눈에 보듯이 믿고 살아갑니다. 이미 온 세상이 예수님의 발 앞에 복종된 것을 믿음의 눈으로 봅니다.

 

요한계시록 1:4~6절입니다.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1)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님께서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셔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 삼으심을 찬양합니다. 교회란 이 복음의 소식으로 은혜와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5:11~14절입니다.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보좌를 중심으로 네 생물들과 이십사 장로들과 천사들이 둘러서서 큰 음성으로 찬송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을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합니다. 이 찬송 후에 모든 피조물이 화답의 찬송을 하기를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네 생물이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그 아들의 희생으로 구속한 자들을 하나님의 처소 삼으시고 찬양받음이 결론입니다.

 

그동안 마가복음을 통하여 복음의 시작과 과정과 그 결론까지 다 보았습니다. 수요일에 박준씨의 시를 말했습니다만 그 사람의 산문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이 글을 보면서 마가복음의 결론을 생각하였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전한다고 아무리 말하여도 그 말이 사람의 귀에서 죽어버리면 끝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전하는 자의 능력도 듣는 자의 능력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의 역사로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