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2:1~7 처음 사랑 2020. 7. 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교회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나 대부분 교회라고 하면 예배당 건물 있고, 목사 있고, 교인들이 있으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구약의 교회와 신약의 교회가 있습니다. 구약 교회를 스데반 집사가 광야교회라고 말합니다(7:38). 광야교회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1:29). 그러므로 교회란 예수님의 피, 곧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백성입니다(20:28). 이런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고 이 몸의 머리가 그리스도입니다(1:18).

 

사도행전 20:28~32절입니다.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3)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교회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합니다. 세상천지에 하나님이 피 흘려 죽으신 소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에만 있습니다. 그 피를 흘리신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 성령을 보내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교회가 됩니다. 이런 교회에 감독을 세웁니다. 감독이라고 하니 감리교가 생각이 날 겁니다. 장로라고 하면 장로교가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감독이나 장로나 목사의 직분이라는 것을 교회에 왜 두셨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세운 교회를 보살피게 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이 말을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부른 겁니다. 바울은 다시 못 만날 것을 알기에 마지막 부탁을 합니다. 자신이 떠나고 나면 사나운 이리가 교회 안에 들어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의 복음을 같이 들은 자들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할 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외부에서 오거나 내부에서 나오거나 이단들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기를 따르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의하라고 하면서 주님과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고 합니다. 그 말씀이 능히 든든히 자기 교회를 세워서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들에게 기업이 있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봉독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본 것처럼 에베소 교회는 바울사도가 삼년을 밤낮 눈물로 복음을 전한 교회입니다. 바울만이 아니라 다른 동역 자들도 함께 사역한 곳입니다. 이런 교회에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지난주에 본 대로 사도요한이 예수님의 영광의 본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의 모습이 일곱 교회의 편지에 다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 교회마다 위로하고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말씀을 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에 그의 몸 된 교회를 다 아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라면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이 말씀을 믿으신다면 신앙생활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너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 된 것을 드러낸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고 합니다. 여기서 게으르지 않았다는 말은 낙심한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낙심할 만한 상황이지만 낙심하지 않았다는 칭찬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 된 것을 드러낸 일이 무엇일까요?

 

본문 6절을 먼저 봅니다. “봉독니골라 당이 나옵니다. 니골라는 초대교회에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의 이름입니다(6:5). 집사를 뽑을 때에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뽑았는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가룟 유다가 나옵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그런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니골라의 뜻이 백성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발람이라는 이름도 이런 뜻입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여도 통하지 않자 음행에 빠지게 한 사람입니다(22~25). 그러므로 버가모 교회에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나오며(2:14) 두아디라는 이세벨의 음행에 넘어간 자들이 있습니다(2:20). 그러므로 니골라, 발람, 이세벨은 다른 복음을 따르게 만들기에 음행하는 자가 됩니다.

 

고린도후서 11:2~4절입니다.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바울이 복음을 위한 열심은 중매쟁이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에게로 중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종을 삼아버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넘어갑니까?

 

고린도후서 11:13~15절을 봅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바울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기에 사람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짓 사도들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오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복음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들의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고린도후서 11:20절을 봅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우리가 흔히 이단이라고 하는 집단들의 특징이 여기에 다 나옵니다. 자기들만이 참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속아 넘어가면 결국 그 사람의 종이 됩니다. 그래서 잡아먹힙니다. 몸도 마음도 재산도 빼앗깁니다. 그렇게 세뇌된 자들에게서 스스로 자기를 높이면서 뺨을 칠지라도 용납합니다. 작년에 은혜로 교회라는 곳에서 타작마당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런 거짓 선생들을 시험하여 잘 드러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망이 있습니다.

 

본문 4~5절입니다. “봉독 책망은 한 가지입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은 칭찬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책망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네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간단하게 처음 사랑과 회개와 촛대를 옮긴다는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사랑이란 복음을 처음 듣고 알게 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신 사랑입니다(요일4:10). 우리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이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5:6~10). 이 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사랑합니다.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합니다(벧전1:8). 이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없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있다면 이 사랑을 같이 받은 사람이 있다면 서로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복음으로 받고 이 사랑을 같이 받은 사람과 사랑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서로 사랑함이 당연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입니다. 유대인의 핍박과 이방인의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다는 이유로 가정에서도 쫓겨납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고 있는 중에 같은 이유로 핍박을 받는 자들이 만난다면 이것은 부모형제의 혈육의 정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가족이 생긴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을 보고 믿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을 에베소 교회가 왜 놓쳐버렸습니까?

 

본문 2절과 6절에서 본 것처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니골라 당에 속한 자들을 드러내고 추방하는 일들을 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놓치게 된 것입니까? 방금 말씀드린 그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 사랑을 놓치게 된 겁니다. 물론 그 사랑을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완전히 잃어버릴 수는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으로 돌아가도록 지금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회개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 4~5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이런 설명 후에 이 본문을 보면 조금 더 생생해 집니다. 칭찬 후에 책망할 내용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합니다. 이단을 분별하여 내느라고 애를 쓰다가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겁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곳에서도 다른 복음을 비판하다가 복음이 주려고 하는 처음 사랑을 놓쳐버리는 경우를 저에게서도 주변에서도 보게 됩니다. 계속 그렇게 가면 네 촛대를 옮겨버린다고 합니다. 교회란 예수님의 교회인데 왜 네 촛대라고 합니까? 이것은 그 교회의 감독 장로 목사의 사역을 못하게 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다 들어야 할 말씀이기에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성령의 역사로 들리면 회개합니다.

 

여기서 회개란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근원적인 회개란 사람이 할 수가 없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에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혈과 육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1:12,13).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때가 되어 성령을 보내셔서 죄를 알게 하고 예수님의 피 뿌림을 입게 합니다(1:3~6, 벧전1:2).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따라 믿게 되면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8:15, 4:6)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고전12:3). 이런 자들이 잘못하면 버리지 않고 책망하고 징계합니다.

 

히브리서 12:5~13절입니다.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책망은 말로 꾸짖습니다. 그래도 말 안 들으면 매를 듭니다. 그러나 이런 책망과 징계는 아들에게만 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봉독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의 귀를 막아 버리고 눈을 감기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모두가 다 잘려지고 거룩한 씨가 남을 때 까지라고 합니다(6:13).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씨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3:16). 그러므로 책망을 받아 회개하는 자들은 이기는 자가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말은 특정한 사람의 혈육의 조건으로 이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적 행위로 사랑하여 이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기는 자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기는 자들입니다.

 

요한일서 5:4~5절입니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기에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 안에서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이런 자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먹게 하신다고 합니다. 생명나무 열매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십자가의 사랑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나올 때 마다 책망을 하심이 사랑입니다. 책망으로도 돌이키지 않으면 징계를 하셔서라도 그 십자가로 이끄심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