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2:8~11 실상은 부요한 자 2020. 7. 12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교회가 왜 환난을 받을까요? 요한복음 15:18~21절입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교회란 세상에서 부름 받아 나온 자들입니다. 구약에서는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온 자들을 광야교회라고 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교회로 세우신 겁니다. 이런 교회는 예수님이 세상에서 당하신 일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교회에 등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듣고도 등록하셨다면 앞으로 환난과 궁핍이 기다릴 것입니다. 싫으시다면 등록취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의 성령의 일하심으로 세워지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지금도 세상으로부터 환난과 핍박과 미움을 받기 마련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받는 환난과 핍박은 크게 세 종류로 구별하여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인 핍박입니다. 그 당시의 로마의 식민지는 황제를 신격화 하여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조그마한 땅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났다는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그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음을 믿는다고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자들은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각 지역에 있는 온갖 우상숭배자로부터 박해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바울사도 일행이 에베소에서 전도를 하는데 누가 핍박을 합니까? 아데미 신상을 은으로 만들어 파는 자들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바울 일행을 죽이려고 합니다. 에베소에서 섬기는 아데미 신상은 많은 젖가슴과 아이들의 모습을 새기고 있기에 풍요와 다산을 주는 신으로 섬깁니다. 그런데 복음은 사람이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니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로 유대인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자칭 유대인 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이라고 합니다. 복음전하는 바울과 그 일행을 가장 집요하게 미워하며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정통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모세의 후계자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참된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바울을 살려두는 것이 여호와를 모독하는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유대인들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랬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핍박, 이방 종교의 핍박,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봅니다. 봉독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갑(AD75~155?)은 사도요한의 제자인데 황제숭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합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었기에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무엇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참으로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환난과 궁핍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런 말씀이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인한 환난과 궁핍이 있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된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봉독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알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의 비방도 안다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자신들이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유대인은 사탄의 회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복음을 듣고 믿는 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에게서도 핍박을 받기에 취업도 제대로 안 됩니다. 그들의 조직된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기에 궁핍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당신의 현실에서 정치적인 부요, 종교적인 부요, 유대인들의 부요함이 허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실상과 허상을 분별하며 사십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것,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만져지는 것을 실상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도 보이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11:3).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 것이 유물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합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고후4:18).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설명하기 위한 소품에 불과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불에 살라질 허상이 됩니다.

 

골로새서 1:15~18절입니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곧 실상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 1:19~23절입니다.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3)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예수 그리스도가 실상임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봉독서머나 교회가 지금 환난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인하여 궁핍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에 대하여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마귀는 이미 십자가로 예수님께 패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도 예수님의 허락 하에 움직입니다. 이 마귀란 배후에서 일하는 대적이지만 실제로 옥에 던지는 자들은 황제의 신하들입니다. 이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한다고 옥에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정하여져 있습니다. 기간이 정하여진 것은 사람이 감당할 만한 것만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그러므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도 주님께서 이기실 힘을 주십니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교회에서 임직을 할 때에 기념패에 단골로 새겨 넣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충성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만든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신실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이 생명의 관을 받습니다.

 

전에 번역은 생명의 면류관인데 이번에는 생명의 관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면류관이나 관을 받는다고 하니 머리에 쓰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면류관과 같은 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입니다(14:6). 그러므로 더 열심히 죽도록 교회에 충성하여 남 보다 더 크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는다는 그런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받는 면류관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몇 가지 면류관 또는 관을 받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여 믿은 자들을 자신의 면류관이라고 합니다(4:1, 살전2:19). 의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면류관입니다(딤후4:8). 여기서 의의 면류관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니 예수님을 말합니다. 시험을 참고 견디어 낸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합니다(1:12). 이 말씀은 오늘 본문과 같습니다. 목자장이 나타날 때에 영광의 관을 주신다고 합니다(벧전 5:4). 생명, , 영광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이란 신실하게 값없이 생명수를 받는 자들입니다(22:17).

 

본문 11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이기는 자는 지금까지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볼 때에는 예수를 믿는 다면서 왜 저렇게 환난을 당하느냐고 왜 저렇게 가난하냐고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정치적인 핍박, 종교적인 핍박,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둘 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둘 째 사망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9:27-28절입니다.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세상 사람들은 한번 죽으면 끝이라고 합니다. 물론 종교인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고 그 죽음 이후의 세계는 자신의 공력을 따라 정하여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 이후의 심판을 피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한번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죄와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두 번째 나타나시기를 기다립니다. 두 번째 나타나심은 재림입니다. 재림 때에 영생과 영벌로 나누어집니다. 재림 때에 영벌에 들어가는 자들을 두 번째 사망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제가 주일학생들에게 간단히 설명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한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번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태어나는 것은 아담의 죽음 곧 죄와 사망아래 태어납니다. 이것을 첫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는 것은 죽은 자가 죽는 겁니다. 이런 죽음은 예수님을 믿는 자도 육신적인 죽음을 죽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듣고 믿게 되면 다시 태어납니다. 이렇게 거듭난 자들은 생물학적인 죽음은 같이 죽지만 두 번째 사망 즉 영원한 멸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0:11-15절입니다.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최후의 심판 장면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둘째 사망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누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하여 환난과 궁핍 중에 있는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들리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 들리지 않고 허상을 쫓아가는 사람이라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둘째 사망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읽어드린 성경의 말씀들이 사실로 믿어지신다면 우리는 허상을 쫓지 않고 실상을 쫓아가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둘째 사망에 대하여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책에서.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르타의 제3장에서 강인한 영혼인 야크샤가 팝다바의 최고령자이자 현자인 유디스티라에게 무엇이 가장 큰 신비인지 물었다. 이에 현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5~6개월 동안 전 세계를 요란하게 한 코로나19 로 죽은 사람이 전 세계에서는 558,041, 한국에서는 288명입니다(710일 기준). 그런데 다른 질병이나 사고로 죽는 자는 이 기간 동안 한국에서만 수만 명이 넘습니다(연평균 26만 명). 그렇게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불멸의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신비하다고 현자가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왜 자기 죽음을 잊어버리고 살까요? 이 세상의 신 마귀에게 속아서 그렇습니다. 마귀는 첫째 사망도, 둘째 사망도 없는 것처럼 속입니다. 그러므로 실상인 복음이 들려지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기 바랍니다. 믿음에 부요하게 되면 비록 세상에서는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 있습니다(고후6:10). 이런 자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부활에 참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