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2:12~17 사탄이 사는 곳 2020. 7. 19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본문 12절입니다. 봉독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하시는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이라고 합니다. 좌우의 날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합니다(6:17).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는 표현은 말씀이 나온다는 표현입니다(1:16).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일을 하는지 히브리서 4:12~13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모임을 예배라고 합니다. 가톨릭은 제사라는 의식(儀式)중심이지만 개혁교회는 말씀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를 돌보아 주십니다(66:1~2). 황소로 드리는 번제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51:17). 이런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게 됩니다.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라는 모임은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우리의 심령 깊은 곳까지 드러나는 수술을 받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검으로 해체되어 벌거벗겨져야만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시며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를 굳게 잡음이 믿음의 도리이기에 오늘도 그 은혜를 입고자 모입니다(4:14~15).

 

본문 13절입니다. “봉독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정도를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제 밤에 무엇을 하였는지도 다 아십니다. 우리가 바다 끝에 갈지라도, 하늘에 오른다고 하여도, 음부에 내려간다고 하여도 하나님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의 동기까지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 다 아십니다(139). 이런 주님께서 지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네가 사는 곳을 안다고 합니다.

 

네가 사는 곳에 사탄의 권자가 있다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초대교회가 받는 핍박은 로마의 황제를 숭배 하는 자들과 이방신을 숭배하는 자들과 유대인들의 핍박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이 빌라도 앞에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자신들의 왕이라고 함으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19:14~16). 그러므로 정치, 종교, 경제 어느 분야이든지 사탄이 주인 노릇하는 곳이 사탄이 사는 곳입니다.

 

에베소서 2:1~2절입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1)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주어진 믿음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가 살아납니다. 그런데 아직도 공중권세 잡은 자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가 사탄입니다. 사탄의 지배아래 있는 자들이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윤리 도덕적으로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마을의 자암서당의 일지가 서당의 일상이라는 책으로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120년 전의 일지인데 유교적인 가르침이 바리새인들의 율법적인 모습과 비슷합니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아홉 가지 몸가짐을 구용(九容)이라고 합니다. 발걸음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눈은 단정하게, 입은 다물고, 목소리는 조용하게, 머리는 곧게, 기운은 엄숙하게, 서 있을 때는 덕성스럽게, 안색은 장중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런 훈련을 일곱 살 학동이 받고 자라는 것이 유학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당신을 지배하는 자가 사탄이라고 하면서 그 서당의 훈장을 사탄의 종이라고 한다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만이 아니라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는 부칙까지 흠 없이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이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십니다(23:33). 너희의 아비는 마귀라고 합니다(8:44). 그 당시 유대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지도자들을 사탄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전을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곳을 도적의 소굴이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이 사는 곳이 되었기에 예수님은 그런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교회의 어느 집사님이 다니는 회사의 회장이 회사를 확장할 때 마다 돼지머리 놓고 고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나 진보나 다를 바가 없음을 잘 아실 겁니다. 그들의 배후에 누가 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까? 사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라고 모인다고 하여도 예수님의 피의 능력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의 힘으로 유지하려고 하면 그곳도 사탄의 회가 되며 사탄의 왕좌가 놓인 자리가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버가모 지역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탄의 권자는 어디에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로부터 온 믿음은 그런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지만 믿음을 배반하지 않은 안디바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사탄을 이기는 믿음이며 이런 믿음이 은혜로 주어진 믿음입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봉독 두어 가지 책망할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 당의 거짓됨을 잘 드러내었다고 합니다. 이 니골라 당의 모습이나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같은 내용입니다. 니골라 당이나 발람의 교훈은 우상을 섬기게 하며 행음하게 합니다. 가나안 주변의 종교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냅니다. 신전에서 신전의 창기와 음행을 함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립니다. 신전에는 신전 창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창(男娼)도 있었습니다. 이런 남창들이 이스라엘에도 있었습니다(왕상15:12,22:46). 발람의 꾐을 봅니다.

 

민수기 25:1~3절입니다.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민수기 22장부터 24장까지 발람이 발락왕의 요청을 받아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여도 저주가 통하지 않습니다. 저주는커녕 오히려 축복이 나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가면서 자기에게 후하게 대접한 발락 왕에게 한 가지 꾀를 가르쳐 준 모양입니다.

 

민수기 31:16절입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 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을 정복하여 돌아오는 길에 여자를 살려왔습니다. 이때 모세가 브올의 사건으로 책망합니다. 브올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여인들을 이스라엘 진중에 이끌어 와서 음행함으로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비느하스가 그들을 죽임으로 재앙이 멈추어진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받는 사람들이 버가모 교회에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버가모 교회나 오늘 우리나 간에 이런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인 음행이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2:15~16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4절부터 보면 태초부터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강성한 자들은 그 말씀이 그들 안에 있어서 흉악한 자를 이겼다고 합니다. 흉악한 자가 누구입니까? 사탄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음행입니다. 음행이란 예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음행입니다. 이런 음행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에 지금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주님께서 책망하십니다. 그 좌우에 날선 검이 우리의 마음을 찔러 쪼개어 우리 마음의 생각을 벌거벗은 듯이 드러내시면 우리가 다 고멜과 같이 음행하는 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고멜을 값 주고 사 오도록 호세아게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는 책망은 아직 사랑하고 계십니다.

 

야고보서 4:4~10절입니다. “4 1)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음행이나 간음이란 세상 사랑이며 세상과 벗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사탄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속이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봉독 그러므로 회개하라고 합니다. 지금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실제적인 음행도 있고 영적인 음행도 있습니다. 둘 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그 십자가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그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신다고 합니다. 이 싸움은 두 가지입니다. 자기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기 위하여 음행하는 대상을 자기 신부에게서 끊어내시는 싸움입니다. 이것이 비록 환난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이 신랑의 끝없는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그 음행하게 한 발람이나 니골라와 같은 자를 심판하십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이기는 자는 지금 성령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감추었던 만나이고 흰 돌입니다.

 

요한복음 6:51절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감추어졌던 만나는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는 드러난 만나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이지만 이 만나를 먹은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만나를 통하여 계시하시는 하늘로서 내려온 참 만나를 먹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이기는 자 곧 성령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는 자에게 감추어진 만나를 주신다는 말씀이 예수님과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흰 돌을 주신다는 말씀은 흰 것을 말할 때에 예수님과 연결합니다. 예수님께서 흰 말을 타십니다(6:2). 예수님께서 흰 구름위에서 추수를 하십니다(14:14). 예수님께서 흰 보좌에서 심판을 하십니다(20:11). 그러므로 희다는 것은 예수님과 연결함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돌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는 말씀이 예수님을 말씀합니다(118:22, 21:42). 사람에 손에 의하지 않은 뜨인 돌이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 나라를 영원히 세우십니다(2:34). 그러므로 흰 돌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 돌에 새 이름을 새겨준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피로 새롭게 창조하시기에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돌을 받은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알아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성령은 교회를 향하여 책망을 합니다. 책망을 받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버리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 책망을 받고 돌이키는 자는 감추어진 만나와 흰 돌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궁극적인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희미하여 진다면 지금 우리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받아서 음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돌아오라고 합니다. 사탄을 대적하고 돌아오는 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분이 어떻게 자기 백성을 견고하게 인도하시는지 다음의 말씀을 봅니다.

 

베드로전서 5:7~11절입니다.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1)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2)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 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