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27~37 유대인의 왕 예수 2017. 11. 12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 패를 붙였더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유대인들의 모든 파당들이 일제히 그리스도라는 예수보다 바라바라는 예수를 원한 것을 보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려고 하였지만 유대인들의 소리가 빌라도의 의도를 묵살시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려다가 민란이 일어날 것 같으니 자신이 책임이 없다고 하면서 손을 씻고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내어줍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죄가 없는 사람을 죽도록 넘겨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조롱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 패가 붙여져 있습니다.

 

본문 27~30절입니다.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관정 안으로 데리고 갑니다.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님의 옷을 벗깁니다. 그리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쉬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롱하기를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 침을 뱉으며 그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칩니다. 이러한 조롱을 네가 무슨 왕이냐며 조롱한 것입니다. 그 당시의 왕과 총독들은 붉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붉은 홍포를 입히고, 면류관 대신에 가시관을 쉬우고, 임금의 홀 대신에 갈대를 들리고 온갖 조롱을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죄인들의 손에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보면서 나쁜 인간들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당시의 로마의 군병이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예수님에 대하여 호의적으로 대하였을까요?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 할 때에 그 일을 행한 히틀러의 부하들이 자기 가족을 끔찍하게 위하며 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행한 잔인한 만행은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히틀러의 부하들이나 천황의 신하라고 하는 자들이 잔인한 짓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포함한 인간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수요일저녁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의 모든 인간은 이런 본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선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깁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어떤 인간의 가능성도 없음이 더욱 분명하여 집니다.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을 조롱하며 십자가에 죽이는 자들 속에 우리가 다 들어있습니다.

 

지난주에 본 대로 다들 자기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긴다고 하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열심당원들이 모두 유대인의 왕 예수를 배척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왕이 누군지도 모르니 빌라도나 그 군인들처럼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하여도 유대인들은 그들의 왕이 누군지 성경을 통하여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유대인들이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원하는 왕은 예수와 같은 자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기적을 행할 때는 기대를 했는데 이렇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아무른 능력을 행하지 않고 묵묵히 그 조롱과 수치를 다 당하고 있는 이런 자가 우리의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1~32절입니다. 희롱은 다 한 후에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끌고 나갑니다. 골고다 언덕에는 이미 십자가의 형틀 기둥은 마련해 두었습니다. 가로로 걸쳐지는 나무는 죄수가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당하시고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빌라도에게도 심문을 당하시고 군인들에게 넘겨져서 조롱과 수치만 당하신 것이 아니라 매를 맞았습니다. 26절을 보면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서 못 박도록 넘겨준 것입니다. 이 당시의 매란 살점이 찢어지는 매입니다. 그런 매를 얼마나 맞았는지 이미 탈진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메고 가다가 쓰러지니 지나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잡아서 억지로 십자가를 메고 가게 하였습니다.

 

33~37절입니다.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릅니다. 이곳의 이름이 해골의 곳이 된 것은 이 골고다 언덕의 모양이 해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로마를 반역한 자들을 많이 처형하였기에 해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합니다. 이 골고다 언덕에 이르러 십자가에 못 박고서는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였지만 예수님은 맛보시고 더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지고 군병들은 거기 앉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머리 위에 죄 패가 있는데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것입니다.

 

요한복음 19:19~22절입니다.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 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빌라도가 예수의 십자가 위에 붙이는 죄목을 쓰는 곳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말로 기록합니다. 십자가에 처형하면서 어떤 죄인지를 밝힘으로 지나가는 자들이 저런 죄를 지으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좌우편에 강도는 살인강도라는 죄목을 붙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죄목(罪目)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마땅치 않게 생각하여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라고 하자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자칭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신성모독이라는 죄가 되는데 그 말이 없으니 자신들이 유대인의 왕이신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대인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과연 이런 예수를 우리의 왕 곧 메시아로 맞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자들조차 그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습니다. 메시아가 이렇게 무력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누구도 이렇게 비참하게 저주받아 죽는 모습의 메시아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계속하여 자신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과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것을 언제 알게 됩니까?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어도 제자들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했습니다만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알고 전하게 되는 것은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부터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된 자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이 복음 선포 앞에서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하나는 어찌할꼬! 하면서 회개하거나 이를 갈면서 돌을 던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에게 배척받아 죽은 나사렛 예수가 우리의 왕이 되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시니 제자들이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선포한 것입니다. 이 복음의 선포를 받은 자들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어떤 표적과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를 듣고서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2절을 다시 봅니다.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의 한 지역입니다. 이곳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순례를 가족들과 함께 오기에 아내와 아들도 함께 왔을 것입니다. 유월절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오는 중에 십자가의 행렬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때 로마 군인에 의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게 됩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오늘 우리도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지고가면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 구레네 사람은 억지로라도 지고 갈 마음이 없었다고 봅니다. 로마가 유대나 다른 나라를 지배하면 강제로 부역(負役)을 시킵니다. 마태복음 5:41절에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하면 십리도 가주라고 하신 것은 부역시키는 일에 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 중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걸린 것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재수 없이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재수 없이 걸린 것일까요? 그와 함께 온 가족들도 할 수 없이 십자가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처형당하는 것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겠습니까?

 

마가복음 15:21절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마가복음은 그 아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때에 루포라는 사람은 이미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로마서 16:13절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여기서 루포란 시몬의 아들로 봅니다. 그러면 루포의 어머니는 시몬의 아내입니다. 이들이 이미 초대교회에서 잘 알려진 자들이며 바울의 사역에 동역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무력하게 비참하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길에서도 예수님은 왕으로서의 일을 하신 것이기에 시몬의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본문 34절을 봅니다.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쓸개 탄 포도주를 신 포도주라고도 합니다. 이것을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자의 고통을 잠시라도 들어주는 것이라고 하는 해석도 있지만 잔인한 십자가 처형에 그런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쓸개 탄 것이란 극도로 쓴 식물의 즙을 신 포도주에 섞어서 마시게 하면 너무 써서 더욱 고통스럽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고 목마를 때에 초를 마시게 하였다는 말씀이 시편에 나옵니다.

 

시편 69:19~21절입니다. “19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20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2)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다윗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이렇게 시편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벧전1:11). 다윗이 기름부음 받음으로 인하여 수치와 능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쓸개와 초를 마시게 한다는 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본문 35절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는 이 장면은 시편 22:18절입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이 말씀 앞에 온갖 조롱과 고난당함이 다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눈앞에서 보듯이 그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다윗에게 주의 기름부음이 있었기에 메시아의 고난을 선취하여 당하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금 온갖 수치와 조롱을 당하시고 무력하게 끌려가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는 것은 왕이 능력이 없어서 당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왕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가 받으실 일이시기에 그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스스로 이 길을 가신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누가 봐도 저주 받아 죽는 죽음의 길인 십자가의 길이 유대인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나사렛 예수가 그 메시아의 길을 실수 없이 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그 영을 넘겨주신 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로 승리하셨기에 세상을 다 우리의 발아래 복종시키기 위하여 세상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알고 따라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만왕의 왕을 믿고 따라가는 자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하는지 디모데전서 6장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1~2절입니다. “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멍에 아래 있는 자는 이 당시에 종이며 노예입니다. 속히 성공하여 종의 멍에를 벗어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라고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노예제도를 인정하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미 자유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상전이 있다면 같이 믿는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살면 나중에 주인이 알아서 해방도 시켜주고 부자 되게 하여 준다는 약속이 없습니다. 평생 종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유입니다.

 

3~5절입니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사도들이 전한 이 복음을 따르지 않으면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팽배한 번영신학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상 번영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추구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들이 진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6~10절입니다.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자족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11~14절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15~21절입니다.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만왕의 왕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 역사 속에서 그 만왕의 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약(期約)이 이르면 그의 나타나심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기약이란 때를 정하여 약속하여 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약속하였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 그 영광을 나타내실 때 까지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로 복음이 증거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진 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17~21절입니다.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