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5 복음의 시작 2018. 7. 22

 

1 1)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2)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2)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2)세례를 받더라

 

오늘부터 마가복음을 시작합니다. 제가 늘푸른교회 처음 와서 주일 낮에는 신약, 오후에는 구약, 수요일은 구약과 신약을 번갈아가면서 말씀을 보았습니다. 20년 동안 이렇게 보니 신약은 마가복음을 보면 전부다 봅니다. 마가복음은 사복음서중에 가장 짧은 내용입니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마가복음이 가장 처음 기록된 복음서라고 봅니다. 저자 마가는 요한이라고도 불리는 사람으로 베드로와 함께 사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바울과 바나나와 함께 사역한 사람으로 성경 여러 곳에 나옵니다. 마가는 복음을 전하면서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헬라어로 설명을 합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증거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복음이라고 하면 복된 소식, 좋은 소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에서 좋은 소식과 마가가 기록할 그 당시의 좋은 소식이 다릅니다. 2 천 년 전에 헬라어로 기록된 복음이라는 단어는 로마의 황제가 등극을 함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말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물론 다른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만 성경에서 사용될 때는 성경적인 의미로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완전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였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종말론적인 단어입니다.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시작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마가복음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과 예수와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알아봐야 합니다. 물론 마가복음 전체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만 오늘 마가복음 서론으로 이 단어들이 성경에서 어떻게 예언되고 성취되었는지 살펴봄으로 복음의 시작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씨(후손)와 땅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씨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씨가 이삭으로 야곱으로 유다로 다윗으로 연결되어 결국은 예수님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16절에서 이 씨를 그리스도라도 합니다. 시편 2:7절을 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22:43, 벧전1:11) 기록한 메시아 예언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입니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여러 번 언급하면서 마무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그 현장을 지휘한 이방인 백부장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합니다(15:39).

 

로마서 1:1~6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1)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2)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마가와 바울이 전한 복음이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1:5~9절입니다.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1)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구약을 통하여 아들에 관한 말씀만이 아니라 기름부음에 대하여도 증언합니다.

 

이어지는 10~13절입니다. “10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창세기의 천지 창조는 멸망할 것이며 낡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요한일서 5:9~10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하나님의 증거는 그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그 안에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2. 예수

예수의 이름은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마태복음(1:21)에서는 이 이름의 뜻을 한 문장으로 기록합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이름이 많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을 표현할 때에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1:9,24. 10:47, 14:67. 16:6). 태어나시기는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지만 자라나시기를 나사렛에서 자라나셨기에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알기로는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알고 있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마가는 이러한 내용을 과감하게 생략하여 버리고 바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선언하고서 그리스도의 일과 행적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구구 절절히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선포하는 형식이 마가복음의 특징입니다.

 

3. 그리스도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나 왕이 위임 받을 때에 기름을 붓습니다. 선지자도 그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시는 자이시며 동시에 능력을 부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됩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가 오실 메시아를 고대하였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아를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를 한문으로 음역하면 기독(基督)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라고 하는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여러 파당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파당들은 자기들만이 메시아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경쟁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니즘은 어느 민족에게도 다 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자기 민족을 구하여줄 사람을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가 중학교 국어 책에서 배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내용도 메시아니즘의 일종입니다. 물론 그 소설은 마을의 아주 평범한 사람이 큰 바위 얼굴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만 우리도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가정, 회사, 교회에서도 메시아를 원합니다. 가정이나 회사나 교회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메시아가 되려고도 합니다. 종교심이 많은 이 땅에는 스스로 하나님, 예수, 보혜사라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원 전에 약속된 그 메시아,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 한 그 메시아가 오셨지만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누가 메시아로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다나엘조차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라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다른 설명 없이 예수가 하나님이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면서 복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본문 2~5절입니다. “봉독 마가가 복음의 시작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합니다. 그 선포를 논증하면서 제일 먼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라고 하지만 2절은 말라기서의 내용이고 3절은 이사야서의 내용입니다. 두 선지자의 글이지만 한 선지자의 이름만 말하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각 인용한 구절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선지자들이 어떤 문맥에서 마가가 인용하는지를 보면 지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시급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 본문이 심판과 구원의 소식이기에 마가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갑니다.

 

말라기 3:1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마가가 인용한 말라기 본문의 문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괴롭히는 줄도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말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게 지내는가 하는 말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언약의 사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사자가 오기 전에 먼저 길을 준비하는 자가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날이 주의 날인데 누가 그 날을 감당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 날이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을 통하여 정결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사야 40:1~5절입니다.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마가가 인용한 이사야서 40:3절의 문맥입니다. 여기서도 심판 후에 구원의 소식을 전합니다. 이제 구원의 때가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말라기나 이사야서나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고 그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과 구원의 일을 이루시는 분이 오시기 전에 지금 그 길을 준비하는 자가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 앞에서 길잡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으로 말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입니다. “봉독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성전에 머물지 않고 빈들에 나와서 외칩니다. 왜 빈들인 광야에 나온 것입니까? 예루살렘은 이미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이 아니라 광야에서 새로운 나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이 선포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준비라는 말입니다. 죄 사함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율법을 어긴 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회개하라는 선포입니다. 이런 회개란 예수님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죄를 자복한다는 것은 수요일 저녁에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이 성령이 임하여 알게 하시는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세례 요한의 회개의 외침은 자신이 증거 하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으라는 선포입니다.

 

우리는 세례요한 보다 더 분명한 선포를 듣습니다. 십자가 이후의 사도들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말을 인용합니다만 사도들은 구약의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로 믿는 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 복음의 시작에 들어가면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과정이며 완성이며 복음 그 자체가 됩니다. 그 복음을 친히 십자가로 이루어내시고 오늘도 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선포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