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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5~9 영접과 실족 2016. 9. 25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1)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2)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1)범죄 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태복음 18:1~14절까지 전체를 한 단락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많아서 세 번에 나누어 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본 말씀은 제자들이 누가 천국에서 큰 자인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어떤 자인지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한 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묻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니고데모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 큰 자란 예수님임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보고 들은 대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크고 작은 자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천국에는 한 몸이 있을 뿐입니다. 한 몸의 기능상의 구별이 되지만 그것을 높고 낮음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 몸의 기능입니다. 그러한 한 몸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어린아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어른 된 판단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들은 다 어른들이 되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주체적으로 선악을 판단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어떻게 믿을 수가 있습니까?

 

마태복음 11:25~27절입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자들은 율법을 지키며 선악을 분별하며 산다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가 사전적인 어린 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과 그렇지 못한 세리와 죄인들과 창기들과 같은 자들과 대비하는 개념이 어린 아이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스스로 알 수가 없고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어린 아이라는 말입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어른들이 알지 못하였는데 어린 아이들은 더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에게 알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국을 이루어 내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하는 경쟁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에베소서 4:4~6절입니다.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이미 에베소서에서 본 내용입니다. 여기서 몸이 하나라는 내용만 다시 봅니다. 몸은 어떤 몸을 말합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머리가 둘인 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가 되는 것이지 머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가 말씀의 검에 의하여 베어진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자들인데 어떻게 우열이 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2:12~13, 25~27절입니다.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1)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몸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성령을 받아 연합되어 한 몸이 되었다면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8:1~2절입니다.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 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여호와 우리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그 이름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주의 대적을 물리치시는데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원수들과 보복 자들로 잠잠 하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8편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21:15~16). 여기서 예수님의 행색이 어린 아이 지극히 작은 소자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이사야 9:1~7절입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여호와의 전쟁을 어린 아이로 이루어내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을 보라고 합니다. 시편 8편과 이사야 9장의 한 아기로 오신 분이 어떤 분이십니까?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큰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한 아기로 오신 분의 이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아기의 어깨에 정사(政事)를 매었다고 합니다. 임금으로 다스린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름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합니다. 그가 다윗의 왕좌에 앉아서 영원히 다스린다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일을 한 아기로 이루어내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어린 아기로 오는 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이들은 어린 아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 있는 임금을 기다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는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로 6절과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방식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셨기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아버지를 영접하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실 때도 지극히 작은 자로 보내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만 골라내기 위한 방식입니다. 세상은 힘이 되는 자를 영접하지 힘이 되지 않고 힘을 빼게 하는 자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9:13~15절입니다.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오는데 제자들이 왜 꾸짖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예루살렘에 가셔서 대업을 이루셔야 하는데 걸리적거리는 어린 아이들을 치우라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천국은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영접하고 있습니까? 나를 세상에서 큰 자가 되게 하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되게 하여준다는 자들을 영접하십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함께 죽자고 하는 자를 영접하십니까? 그러므로 영접과 실족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지극히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는 다른 것을 힘으로 삼지 않기에 정말 작은 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먼저는 예수님의 모습이고 그 다음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모두가 힘을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나 제자들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빼라고 하십니다. 이런 자들을 실족하게 한다는 말은 힘을 주는 예수를 전하라고 하는 것이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임합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로 인하여 어떤 화가 임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 화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낸 자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며 아버지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 실족하는 것이며 이런 작은 자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다른 것으로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자들이 실족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8~9절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만약에 실족하게 하는 손과 발과 눈이 있다면 그 손과 발을 찍어 버리고 그 눈을 뽑아서라도 실족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장애인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온 몸이 성한채로 영원한 불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낫다고 합니다. 실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옥이 어느 정도로 무서운지 영원한 불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곳에 던져지지 않기 위하여 손과 발을 찍어 버리고 눈을 빼서라도 그런 곳은 가지 않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7절의 말씀처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없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실족이 무엇인지 마태복음에서 차례대로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27~30절입니다.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음의 음욕만 품어도 간음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세상을 사랑함이 간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에 남아 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을 우리가 어떠한 자인지 실체를 보여줍니다.

 

11:6절입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이 말씀은 예수님을 증거 한 세례요한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증거 한 세례요한조차도 자신이 생각한 메시아 상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옥에 갇혀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어보니 도대체 자신이 기다렸고 유대인들이 기다린 그 메시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우리가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느냐고 했을 때에 예수님은 자신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실족이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는 것이 실족하는 것입니다.

 

13:20절입니다.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앞에서 본 내용이기에 실족과 연관해서 간단히 봅니다. 말씀을 받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 곧 넘어지는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넘어지는 자가 실족한다는 단어입니다. 말씀으로 인한 환난과 박해로 인하여 넘어지는 자가 실족하는 자가 됩니다.

 

13:40~42절입니다.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세상 끝에 천사들이 가라지를 골라내는데 그 가라지가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 곧 실족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이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풀무 불에 던져진다고 합니다. 결국 실족하게 하는 자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실족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13:57절입니다. “3)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예수님의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를 배척한지라는 앞에 각주 3)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예수로 말미암아 넘어진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넘어진 것이 바로 실족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한 것이 실족한 것입니다.

 

15:12~14절입니다.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1)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고발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멀다고 하시면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으로 걸림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실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심지 않는 것은 뽑힐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실족하게 되는 자들은 결국 아버지께서 심지 않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실족하는 것입니다.

16:23절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이미 자세히 살펴본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제와 연결하여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실족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것을 가로막아 서려는 것이 예수님을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족하게 한 베드로가 어떻게 제자가 됩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24:10절입니다.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세상은 늘 난리와 난리의 소식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지만 아직 끝은 아닙니다. 이런 세상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이미 십자가로 하나님의 심판 받았음을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실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견디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로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제야 끝입니다.

 

26:31~35절입니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2)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3)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4)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밤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버린다는 말씀의 각주 2) 3) 4)를 보면 실족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제자들이 예외 없이 다 실족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려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너희가 다 실족한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을 절대로 실족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누구 말대로 됩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 실족합니다. 만약 실족하지 않으려면 손과 발도 찍고 눈도 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해서 실족하지 않을 자가 한명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외에는 다 실족한 자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 실족하여 넘어집니다. 우리는 작은 이익 앞에서 실족합니다. 나의 취미와 습관으로도 넘어지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으로 실족합니다. 나만 실족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실족하게 만듭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실족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따라 갈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끝에서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뛰고 다녔지만 늙어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성령이 줄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묶어서 끌어가시는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어떻게 제자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는지 봅니다.

 

사도행전 15:7~11절입니다.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율법을 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님을 믿은 자들이 그들이 예수님만 믿어서 안 되고 율법도 행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로 논쟁이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한 말이 너희가 어찌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실족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오늘도 주 예수의 은혜를 전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끝이 다시 율법의 멍에와 같은 것을 메우는 것이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십자가 앞에서 세 번이나 완전하게 실족한 베드로가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실족하지 않는 길은 우리와 그들이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전합니다. 오직 주 예수의 은혜, 그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실족한 베드로가 증거 한 실족하지 않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받는 자가 영접하는 자이며 이런 자들이 실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