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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13~15 천국은 이런 사람의 것 2016. 10. 30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지난주의 설교제목이 이혼증서와 천국이었습니다. 음행한 여인이 이혼증서를 받는 것만도 과분한 처사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세상을 사랑하는 간음하는 여인에게 이혼증서를 주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언약을 따라 그의 피로 정결한 신부로 맞이하는 천국의 내용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 앞의 제목은 용서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용서 해주는 능력이 아니라 영원한 용서를 받아서 가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 앞에는 예수님이 계신 곳이 천국임을 보았습니다. 그 앞에는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질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으로부터 오늘 본문까지 다음 주까지 계속 연결되는 내용이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어떤 자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려면 돌이켜 어린아이 같아야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한 주제에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 꼭 이 땅의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은 벌써 따 놓은 당상(堂上)으로 여기면서 누가 크냐는 질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어떤 자인지 예수님은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큰 자도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안수하고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구약에서 안수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안수를 하면서 축복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면서 직분을 승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전된 율법인 미쉬나에 의하면 대 속죄일 저녁에 어린아이들이 장로들에게 데려와 기도와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러한 배경으로 사람들이 자기들의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하고 축복하여 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제자들이 왜 꾸짖었을까요? 유대 사회에서 어린 아이와 여자들은 사람의 수를 헤아릴 때에 수에 넣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무시 받는 자들이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하고 축복하여 달라고 하니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그들을 물리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물리친 내용을 좀 더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시면 대업을 이루셔야 한다고 제자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아이들은 아무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애들은 가라는 식입니다. 어른들이 중요한 일을 하는데 애들이 들락거리면 우리도 저리 가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한다는 일이 예수님의 뜻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드디어 자신이 장로들에게 잡혀 고난을 받을 것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실 일을 베드로가 가로 막아서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복음을 말한다는 자들이 복음을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합니다.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아이들에게 안수하시고 그곳을 떠나가십니다. 아주 간단한 단락입니다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이 어떤지를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루실 메시아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안수를 받기위하여 오는 그런 일들은 자신들이 하는 중요한 일에 걸리적거리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천국은 이런 어린아이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씀은 이미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어린 아이가 순수하고 착하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미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간은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6:5). 그 악함이란 사람이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모든 일들을 자기 좋은 대로 하는 것이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말씀을 인정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이 죄악이 관영한 모습이기에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에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방주를 예비합니다. 그런데 노아 홍수이후에도 인간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고 합니다(8:21). 그러므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착하여야 천국에 간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0:13~16절입니다.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같은 내용입니다만 표현이 조금씩 다릅니다. 이런 본문을 평행본문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어린이를 가로막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노하시면서 어린아이를 용납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처럼 받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받든다는 말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명령이나 뜻, 말을 받아들여 지지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또는 공경하여 높이 모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지지하고 소중이 여기며 공경하고 높이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8:17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그러므로 받든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물론 어린아이가 아무른 힘과 능력이 없기에 일방적으로 주는 것을 소중이 받는 의미로 봐도 됩니다. 어린 아이가 무엇을 받을 때에 선별하여 골라잡는다면 이미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자신의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어린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판단과 가치관들이 이미 다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에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쳐들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도대체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쳐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 백성들에게 쳐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헬라어 동사를 중간태라고 합니다. 능동으로도 수동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영어의 재귀대명사와 같이 주어가 행동한 결과가 주어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행위라는 것이 자기에게로 되먹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천국의 주인의 행위로 자기 백성들을 들여놓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 곧 메시아 왕국에는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이 들어가는 나라로 보았습니다. 율법을 알지도 못하거나 율법을 알아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은 메시아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일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한 세례 요한조차 예수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의심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은 영접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0:4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며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접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누가 복음을 영접하겠습니까? 복음은 세상의 영광을 주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멸망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성령은 종말의 영이시기에 이미 세상이 망하였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복음을 전하는 자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8~10절입니다.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왜 옥에 갇히고 온갖 고난을 다 받습니까? 복음이란 세상의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고난 받고 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거룩하신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습니다.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결코 좋아할 내용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라고 말하면서 생명도 아닌 것을 말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이 불에 살라 없어질 때에 함께 멸망할 것들을 복음의 내용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썩어질 것들은 복음의 내용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을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세상의 힘을 추구하고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이런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어린아이 같은 자의 나라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은 어른이 된 자들이 고르고 선택하여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주는 것을 그저 받는 자들의 나라입니다.

 

지난주 오후에 어린아이들도 훌라후프 돌리기를 하였습니다. 너무 잘 돌리면 제기차기로 바꾸니 아이들이 잘 돌리다가 손으로 내리쳐서 더 이상 돌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손으로 내리치는 것이 너무 표가 나니 걸어가서 나무에 부딪혀 떨어뜨립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마구 돌렸습니다. 그러자 어떤 분이 저게 어린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 아이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신경질이 나서 마구 돌려 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어떻게 손을 써서 받을 수가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 같이 천국을 받아들이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씀은 전혀 자신의 힘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은혜로만 된다는 말씀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국의 내용은 다음 주에 볼 율법을 잘 지킨 부자 관원의 내용과 연결하여 보면 더욱 분명하여 집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제자들에 의하여 배척을 받은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의 나라라는 말씀은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때에 어떻게 저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그런 자들이 가는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유대 사회 속에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은 죄인과 이방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만약 이방인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철저하게 개종을 하고 유대인들의 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이지만 율법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로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생각한 천국이란 메시아 왕국을 말합니다.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가 다스리는 그 나라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의 나라라는 말씀은 그들의 생각을 뒤집어 놓습니다.

 

마태복음 21:31~32절입니다.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나중에 이 본문을 볼 때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이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인데 큰 아들은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말에 순종하겠다고 하고서는 불순종을 했습니다. 그런데 둘 때 아들은 안 가겠다고 하고서는 나중에 순종했다고 하시면서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야 말로 죽음을 재촉하는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의 의가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리와 창기가 먼저 들어가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라면 그들은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8:9~14절입니다.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의로운 자들이 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누가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까? 자신은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다고 하는 바리새인은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은 죄인이라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지도 못한 세리는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라는 이런 자들 안에 지금까지 누가 들어갔습니까?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는 것은 자기 힘으로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세리와 창기가 등장을 합니다. 유대인들로서는 경악할 일입니다. 자신들의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와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예수님을 그냥 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편 131편입니다.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구원받은 상태 곧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편입니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찬양하기를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피조물이란 창조주께 절대 의존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을 받은 인간은 그 의존의 자리에서 독립선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인간은 수고와 슬픔의 세상을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과 경쟁하여 큰일과 놀라운 일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실적에 때라 연봉을 줍니다. 그러므로 큰 일을 이루어내어야 영웅이라고 대접을 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자의 모습은 그런 일들이 교만과 오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이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젖을 배부르게 먹고 그 어머니의 품에 있는 그 만족과 평안한 상태를 구원의 모습으로 천국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금부터 영원토록 되는 곳이 완전한 천국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은 이런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오히려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꿈이라는 이름으로, 천국의 상급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교인들에게 축복과 저주의 채찍으로 휘두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교회가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천국은 어린아이 같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나라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힘과 자기의 의가 없습니다. 세리와 창기와 이방인들이 은혜로 받는 나라를 천국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천국을 위하여 값을 지불하신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예수님을 죄로 삼아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예수님의 공로로만 들어갑니다.

 

히브리서 11:30~31절입니다.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오늘 본문에서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평행구절에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것이라는 말씀이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하였다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면 기생 라합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믿음을 발휘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이런 일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는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가 강조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중에 기생 라합의 믿음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옵니다. 온 성읍에 이미 소문이 들렸습니다. 애굽이라는 제국을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10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시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광야를 건너서 요단강을 건너온 사실에 온 성읍이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스라엘에 항복하지 않습니다. 오직 기생 라합이 히브리인들의 정탐꾼을 숨겨줍니다. 전시 상황에서 스파이를 숨겨주다가 발각되면 바로 사형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기생 라합이 어떻게 정탐꾼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까?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이 안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으로 영접하였다는 것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생 라합은 여리고성이 멸망할 때에 함께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의 영웅적인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그 나라를 받아들인 자들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임한 자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이 세상을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모든 것을 받아야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선물로만 받는 나라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공로로만 들어가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신 이런 자는 어린아이 곧 부모가 다 해주어야 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신 그 천국에는 자신의 의로움이나 자신의 공로로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세리와 창기와 이방인과 같은 자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자들입니다. 자신이 행한 것이 다 죄인 줄 알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만 바라봅니다. 주의 영이 임하여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알게 되는 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참으로 기쁜 소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