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3:1~59 나병의 진단규례 2019. 3. 31

 

12 제사장이 보기에 나병이 그 피부에 크게 발생하였으되 그 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졌으면 13 그가 진찰할 것이요 나병이 과연 그의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다 희어진 자인즉 정하거니와 14 아무 때든지 그에게 생살이 보이면 그는 부정한즉 15 제사장이 생살을 진찰하고 그를 부정하다 할지니 그 생살은 부정한 것인즉 이는 나병이며 16 그 생살이 변하여 다시 희어지면 제사장에게로 갈 것이요 17 제사장은 그를 진찰하여서 그 환부가 희어졌으면 환자를 정하다 할지니 그는 정하니라

사람이 아파서 병원을 가면 의사가 진찰(診察)을 하고 진단(診斷)을 한 후에 처방하여 치료를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진찰하는 것은 단순한 피부병인지 나병인지 진찰과 진단을 한 후에 정함과 부정함을 결정하여 진밖에 격리 시키며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규례를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자기 백성들에게도 거룩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리새적인 거룩함이 아니라 정 반대로 자신이 전적으로 부정하고 더러움을 아는 자를 하나님은 정하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내용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1)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각주 1)을 보면 넓은 의미로 악성피부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대의학으로 나병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요즈음 번역은 악성피부병으로 번역을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진단은 성전에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합니다. 성전에 나가고 못 나가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단절을 뜻합니다.

 

3~8절입니다. 피부병이 있는 사람을 제사장에게 데려옵니다. 일반 피부병인지 나병인지 진단하는 규례는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나병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부의 색이 희지만 우묵하지 않고 털이 희지 않으면 일주일간 격리하고 나서 다시 진찰합니다. 환부가 퍼지지 않았다면 다시 일주일을 격리하고 진찰합니다. 격리기간이지난 후에 환부가 엷어졌고 병색이 퍼지지 않았다면 단순 피부병이기에 정하다고 한 후에 그의 옷을 빨게 합니다. 그리하면 정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정하다고 한 자가 다시 병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다시 보여야 합니다. 제사장의 진찰의 결과는 항상 정함과 부정함의 선언입니다.

 

9~17절입니다. 9절은 피부병이라고 하지 않고 바로 나병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도 보기에 나병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데려가서 진찰하여 보니 이미 오랜 나병입니다. 이미 부정한 자가 되었기에 격리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처음 발생한 피부병은 격리하여 보는데 오래된 나병은 격리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규정입니다. 그런데 더 이해가 안 되는 규정은 나병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에 나병이 퍼졌으면 정하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전체가 다 희어졌기에 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가 생살이 보이면 또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생살이 다시 희어지면 제사장은 그를 진찰하여 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병이 전신에 다 퍼졌으면 정하다고 하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일성서공회 주석에는 수수께끼 같은데, 여기 의학적인 측면은 아주 부차적인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의학적으로 설명할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결론에서 이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8~23절입니다. 피부에 종기가 생겼다가 나은 후에 그 종처에 흰 점이 돋거나 희고 불그스름한 색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보입니다. 제사장이 진찰하여 그 환부가 피부보다 얕고(우묵하여 졌으면) 털이 희면 종기로 된 나병이기에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 격리하였다가 번지지 않았다면 종기의 흔적이기에 정하다고 합니다.

 

24~28절입니다. 불에 덴 곳의 상처를 진단하는 규례입니다. 나병인지 불에 덴 화상으로 된 것인지의 구별도 피부의 환부가 우묵하게 되든가 환부의 털이 희어졌으면 나병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상으로 인한 것이기에 정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단의 가장 큰 구별은 나병의 유무입니다.

 

29~37절입니다. 남자나 여자의 머리에나 수염에 환부가 있으면 제사장이 진찰합니다. 나병인지 옴인지 구별을 합니다. 진단의 규례는 앞의 규례들과 같습니다. 옴을 새 번역은 백선(白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광범위한 피부병을 나병인지 아닌지 구별을 하는 것입니다.

 

38~39절입니다. 남자나 여자의 피부에 흰 색점이 생겨도 제사장이 진찰해야 합니다. 그 피부의 색점이 부유스름하면 이는 피부에 발생한 어루러기라고 진단하고 그것은 정하다고 합니다.

 

40~44절입니다. 대머리는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머리나 이마에 나병이 발생하면 확실히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 환부가 머리에 있으면 다른 나병보다 더 확실하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도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

 

45~46절입니다. 모든 피부병을 제사장이 진단 한 후에 나병이 결정되면 나병으로 진단받는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병이 있는 날 동안 혼자 진영 밖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 부분도 결론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47~59절입니다. 의복에 나병이 발생할 때에 행하는 규례입니다. 나병이 의복에 발생하지 않으니 새 번역은 곰팡이로 번역합니다. 옷은 베옷도 있고 양털 옷도 있고 가죽옷도 있습니다. 그러한 옷에 피부병과 같은 병반이 생기면 역시 제사장이 진찰하여 정결의 유무를 진단하고 물에 씻든지 찢든지 불에 태우든지 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만이 아니라 의복도 정결규례가 있습니다.

 

여기서 살펴볼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병이 머리에 든 것을 다른 나병보다 더 확실한 나병이라고 진단하는지를 볼 것이며, 두 번째는 나병이 든 사람이 자신을 부정하다고 외쳐야 하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전신에 나병든 자가 정하다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이마에 나병이 든 사람이 있습니다. 역대하 26:19절입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웃시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주 강성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성함이 교만이 되어 제사장이 하는 분향을 자기가 하려고 나섰다가 이마에 나병이 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쫓겨나서 별궁에 거하며 남은 생애를 보냅니다. 다른 나병보다 이마에 나병이 발생한 것은 더욱더 분명한 나병이라고 한 것은 이마는 그 사람의 전신을 대표하는 자리가 됩니다. 제사장의 이마에도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붙입니다(28:38).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것이 가장 분명한 나병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이 되어 있다는 증거이기에 이보다 더 분명한 나병이 없습니다.

 

둘째, 나병이 든 사람이 자신이 부정하다고 윗입술을 가리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나병은 천형(天刑)이라고 하는데, 나병 든 것만 해도 죽을 고통인데 사람들이 자기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나는 부정한 자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것도 머리를 풀고 옷을 찢고 머리를 푼 채로 외쳐야 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표시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입술이 부정하다고 한 자가 있습니다.

 

이사야 6:1~5절입니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마에 나병이 발한 왕이 웃시야입니다. 나병이 발하였기에 격리 되어 별궁에 거하다가 죽었습니다. 그 웃시야 왕이 죽은 해에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높인 들린 보좌에 앉으신 그 분의 영광 앞에 천사들도 얼굴과 발을 가리고 거룩 삼창을 합니다. 이 영광 앞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병의 확증판단을 받으면 해야 할 모습이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나옵니다. 입술을 가리고 나는 부정하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거룩한 선지자라고 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선 모습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을 때에 정함을 받습니다.

 

이어지는 6~7절입니다.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부정한 자 임을 알 때에 제단의 숯불로 그 입술을 지져 주시면서 정하다고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전적인 나병임을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장면은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 소명은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으라고 합니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모두 베임을 당하고 십분의 일이 남아도 그것마저 베인 후에 그루터기가 남듯이 거룩한 씨가 등장할 때 까지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13:10~17절입니다. 봉독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을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합니다. 알기에 말씀을 가르치고 장로들의 전통까지 지키라고 합니다. 자기들은 지킨다고 하면서 보고 듣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를 알아들을 자만 알아듣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씨 뿌리는 비유를 설명하시는데 그 비유의 내용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예수님의 자기희생으로만 구원하신다는 것이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셋째,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에 나병이 든 자를 왜 정하다고 하는지 요한복음 9:39~41절을 봅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예수님께서 눈 뜨게 하신 후에 결론의 말씀입니다. 본다는 자는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십니다. 본다고 하는 자는 죄가 그대로 있지만 보지 못한다고 하면 죄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나는 전적인 나병환자이기에 부정하다고 외치는 자는 구원에 이르지만 자신이 의인이라고 하면 주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자기는 안다고 합니다. 자기는 본다고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복음도 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면 무엇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눈과 귀를 열어 주님을 알게 하여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기도한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마태복음 설교를 할 때에 산상수훈의 결론이 나병환자의 치료임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이 율법으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정말로 깨끗한지 율법의 심층으로 들어가는 것이 산상수훈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그 마음의 더러움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들이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종교적인 의무를 다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이 책망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을 통하여 자신이 전적인 죄인임을 아는 자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고쳐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8장에서 첫 고침을 받는 자가 나병환자입니다.

 

마태복음 8:1~3절입니다.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십니다. 그 부정함을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기에 깨끗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즉지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 집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하나님의 말씀앞에 자신이 얼마나 부정한 자인지가 드러나는 사람만이 나병환자처럼 예수님께 달려가서 주께서 원하시면 정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14~16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자신이 말씀으로 벌거벗겨져서 온 몸과 마음이 나병임을 알수록 더욱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굳게 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