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4:1~57 나병의 정결규례 2019. 4. 7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3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4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5 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6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7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8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9 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레위기 13장은 나병에 대한 진단의 규례입니다. 14장은 나병이 나은 사람에 대한 정결규례입니다. 14:1~9절은 나병환자가 나았으면 제사장이 진영에서 나가서 진찰을 합니다. 진찰 후 나병이 나았으면 그 사람에게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합니다. 흐르는 물 위에서 한 마리의 새를 잡아 질그릇에 피를 받고 그 피를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로 찍어서 나병에서 나은 자에게 일곱 번을 뿌린 후에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아줍니다. 정결함을 받은 자는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몸을 씻고 진영에 들어옵니다. 진영에 들어와도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게 한 후에 일곱째 날에 모든 털을 다시 밀고 옷을 빨고 몸을 씻게 합니다.

 

10~20절입니다. 팔일 째에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고운 곡식 가루 십 분의 삼 에바와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고 속건제와 요제로 드리고 제물은 제사장에게 돌립니다. 제사장은 속건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은 자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 기름도 취하여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리고 기름을 피를 바르듯이 바른 후에 남은 것으로 머리에 바릅니다. 그리고 속죄제를 드리고 번제와 소제와 제단에 드려서 속죄함으로 정결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21~32절입니다. 나병에서 나은 자가 가난하여 위의 제물을 드리지 못할 경우에 제물을 삼분의 일로 줄여줍니다. 그리고 정결하게 하는 규례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았는데 왜 다시 정결규례를 행하게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나옵니다. 13장에서 보았습니다만 나병이 들면 진 밖에서 격리시킵니다. 14장은 나병이 나은 경우에 정결규례를 통하여 진 안으로 들어오게 합니다. 이것은 일상생활로의 복귀만이 아니라 성전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이 정결함이며 들어갈 수 없음이 부정함입니다. 그러므로 정결규례가 필요합니다.

 

33~48절입니다. 32절까지는 사람이 나병에서 정결하게 되는 규례라면 33절부터는 사람이 사는 집에 대한 정결규례입니다. 나병이 집에 퍼질 수는 없기에 요즈음은 곰팡이로 번역합니다. 히브리어의 짜라아트라는 단어를 악성 피부병이나 악성 곰팡이나 나병에 같이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집안에 나병이 생긴 것도 제사장이 진단을 하는데 그 부위가 사람의 피부처럼 움푹하게 들어가 있으면 나병이라고 진단을 하고 여러 조치를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복발이 되지 않았으면 정한 집이 되지만 다시 복발하면 그 집을 헐고 그 재료들을 다 부정한 곳에 버리게 합니다. 이러한 규례를 주신 것은 사람의 몸만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도 정결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49~57절입니다. 집을 정결하게 하는 규례도 사람이 정결하게 되는 7일째의 규례와 같습니다. 그런데 집은 사람의 정결규례인 8일째의 규례는 없습니다. 사람의 7일째의 정결규례와 같이 행하면 그 집이 정결함을 얻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각종 나병에 대한 규례입니다. 피부병만 아니라 의복과 가옥까지 포함함으로 정함과 부정함을 가르치는 것은 삶의 전반을 다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聖徒)라고 하는 것은 구별된 무리라는 뜻입니다. 몸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구별됨을 요구하는 것이 정결규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결규례의 특징 두 가지를 보겠습니다.

 

사람이나 집이나 부정할 때에 정결하게 하는 규례는 두 마리의 새를 잡아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에서 잡아 질그릇에 피를 담고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그 피에 찍어서 나병에서 정결하게 된 사람이나 집에 일곱 번을 뿌린 후에 살아 있는 새는 날려 보내는 것입니다. 죽은 새는 부정함을 담당하고 죽는 것입니다. 그렇다며 살아난 새는 죽은 새 대신에 살아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집이 아니라 사람은 팔일 째의 규례가 또 있습니다. 팔일 째는 속죄제와 속건제와 소제와 번제를 드리는데 그 속죄제물의 피와 따로 가져온 기름을 정결하게 된 사람의 오늘 쪽 귓불과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르게 합니다(14:14~18). 나병든 자는 피도 바르고 기름도 바릅니다. 그리고 남은 기름은 머리에 바릅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기름을 머리에 바르기는 하는데 나병환자의 규례처럼 오른 쪽 귓불과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는 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머리에 부었기에 제사장도 전체적인 기름부음으로 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의 정결규례나 제사장의 위임식이 정확하게 겹쳐지는 장면은 피를 바르는 부위입니다(8:22~24). 오른 쪽 귓불과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피를 바르는 것은 제사장과 나병환자가 겹쳐지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19~22절입니다.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아합왕 때에 엘리야가 난데없이 등장하여 가뭄을 예고합니다. 여호와의 명을 따라 그릿 시냇가로 갔다가 사렙다 지역의 과부에게로 갑니다. 과부는 한 아들과 살고 있는데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나뭇가지를 주우러 온 여인에게 떡을 만들어 먼저 자기에게 달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런데 그 집의 아이가 죽어버립니다. 그때 이 과부가 엘리야에 하는 말이 당신이 나타남으로 나의 죄를 생각하게 하느냐고 합니다. 엘리야가 그 아이를 다락방에 올려놓고 기도하는데 그 아이 위에 엎드림으로 살아납니다.

 

살아난 아이를 받은 어머니의 고백이 24절입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가뭄에 떡과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기적이 아니라 참된 기적은 자기 아들의 죽음과 살아남을 통하여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엘리야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알겠다고 합니다. 제사장이나 나병환자가 피를 바르는 부위가 같다는 것은 나병 환자가 제사장에게 겹쳐져야 속죄가 일어남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죽은 아이 위에 엎드리는 것은 정한 자가 부정한 자와 겹쳐집니다. 죽음은 부정함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그 부정함의 결론인 주검 위에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가 포개어 짐으로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열왕기하 4:32~35절입니다.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에게서 일어난 일입니다. 수넴의 귀한 여인이 엘리사를 알아보고 지나갈 때 마다 식사를 대접합니다. 그뿐 아니라 선지자가 쉴 수 있도록 다락에 방을 하나 마련하여 침상과 책상을 준비하여 드리자고 남편에게 말하여 그렇게 합니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이 여인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하니 소원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없다는 사환의 말을 듣고서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인이 믿지 않았지만 아이가 태어났고 그 아이가 들에 나갔다가 머리가 아파 집에 와서는 죽어버립니다. 이 여인이 갈멜에 있는 엘리사에게 와서 그 발을 안습니다. 이 여인이 왜 그러는지 엘리사가 알지 못합니다.

 

이때 여인이 말하기를 아이를 준다고 할 때에 속이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아이를 주시고서는 죽이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살려내는 장면이 엘리야의 모습과 같습니다. 엘리야도 아이 위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엘리사는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입과 눈과 손을 마주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과 나병환자의 동일한 부위에 피를 바르는 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겹쳐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런 성경의 내용이 무엇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는 것입니까?

 

성경은 나병이나 죽음이나 다 부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한 자들이 정함을 입는 것은 정결한 짐승의 피를 바름으로 정하다는 선언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피를 바르는 부위가 제사장의 위임 식 때에 제사장이 피를 바르는 부위와 같다는 것은 부정한 자가 제사장에게 겹쳐지면 정함을 받는 것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엘리야와 엘리사가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에게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레위기 13장에서 보았습니다만 마태복음 8장에서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을 손을 대시고 깨끗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통하여 율법의 의로 깨끗하다고 여기는 자들도 자신이 전신이 나병환자처럼 부정한 죄인임을 안다면 예수님께 나를 깨끗하게 하여 달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십니까?

 

누가복음 7:11~16절입니다.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셨다고 하는데 유대의 장례는 시신을 관에 넣고 못을 박는 것이 아니라 시신을 세마포로 사서 들것에 매고 가서 동굴에 둡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시체에 손을 대신 것입니다. 율법에서 이런 행위는 부정함을 입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죽은 아이에게 손을 대시고 살려내십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를 아는 자들이기에 큰 선지자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 선지자를 보내신 주님입니다. 이 주님이 자기 백성을 살리시는 것은 죄인들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부정한 자가 제사장과 겹쳐지듯이 그리스도가 죄인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로마서 6:5~9절입니다.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산자가 죽은 자가 연합됩니다.

 

고린도후서 5:19~21절입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을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고 우리와 함께 연합되셔서 함께 죽으신 그리스도에게 돌리심으로 우리가 하나의 의가 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2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이렇게 연합되는 것을 제사장과 나병환자의 피 바름의 부위가 같음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1:21~24절입니다.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골로새서 3: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