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6:24~30 속죄제 규례 2019. 1. 20

 

2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5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제물을 잡을 것이요 26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27 그 고기에 접촉하는 모든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28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29 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을지니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 30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죄하게 한 속죄제 제물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

 

오대 제사의 제사장의 규례를 보고 있습니다. 번제와 소제를 보았고 오늘은 속죄제입니다. 일반적인 속죄제의 제물은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죄제 중에 그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 피를 뿌린 속죄제의 제물은 먹지 못하고 기름을 불사른 후에 나머지는 몽땅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살라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예수님을 말하는 것을 히브리서에서 보았습니다.

 

이러한 제사들과 규례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시는 것입니까? 번제에서 보았듯이 24시간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려면 제사가 없이는 만날 수가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들과 함께 하는 순간 죄인들은 멸하여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3,5절입니다.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사건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을 진멸하시겠다고 하셨을 때에 모세의 목숨 건 중재로 용서를 받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기에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는 하시겠지만 함께 가시지는 않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목이 곧은 백성이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데 한 순간이라도 거룩하지 못하면 그들은 진멸당하는 것입니다. 다시 모세가 기도하기를 함께 가시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광야에서 다 죽여 달라고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이 진정한 구원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제 왜 제사가 중요하고 성막이 중요한지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과 제사제도와 성막이 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까지입니다.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내용은 27~28절입니다. 속죄제의 고기에 접촉하는 모든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라고 합니다. 속죄제의 제물로 드려진 고기에 접촉하면 거룩하게 된다는 뜻이 무엇인지 그 피가 묻었으면 거룩한 곳에서 빨라고 합니다.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리고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을 다루는 규례입니다.

 

출애굽기 29:37절입니다.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제사장 위임식을 일주일 동안 하면서 제단도 일주일 동안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어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단이라는 물건에 접촉하면 어떻게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거룩함을 입었기에 평생 성전에 속하여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언약궤를 만진 웃사가 즉사한 것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 거룩함을 입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속죄제의 고기에 접촉하면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 손을 댄 자들이나 예수님이 손을 댄 자들이 어떻게 거룩함을 입었는지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거룩함에 접촉이 되면 죽임을 당하여야 하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 당함을 통하여 거룩함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고기를 삶은 토기는 깨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봅니다.

 

학개서 2:10~14절입니다. “10 다리오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1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13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학개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할 때의 선지자입니다. 학개 선지자가 제사장들에게 질문한 것은 오늘 본문의 내용과 연결이 됩니다. 거룩한 고기에 접촉이 되면 그것이 거룩하게 됩니다. 이것은 세속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선지자가 질문을 한 것입니다.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다른 식물에 닿으면 거룩하게 되겠느냐고 합니다. 거룩한 고기에 직접 접촉한 옷자락은 거룩하게 되지만 그 옷자락이 다른 식물에 닿는다고 그 식물이 거룩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시체를 만져서 부정한 자가 다른 식물에 접촉을 하게 되면 부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에 학개 선지자가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이 그러하고 드리는 것도 부정하다고 합니다.

 

이 본문에 대한 독일성서공회 주석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건축 공사를 시작한 석 달 남짓 지난 뒤에(주전 52012월 중순) 학개는 제사장들에게 율법(종교의식법) 문제에 대한 답을 받아내야 했다. 거룩한 고기는 제물로 바친 짐승의 고기를 말하는데, 제사장들만이 이것을 먹을 수 있었다(18:8~19절 참조).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은 거룩한 고기에 직접 닿았기 때문에 그것과 마찬가지로 거룩하게(성물이) 되었지만, 곧 세속적으로 쓸 수 없게 되었지만(6:27), 그 옷자락에 닿은 다른 음식물들은 그렇지 않았다. 간접적인 접촉으로는 거룩함이 옮아가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시체와 간접적으로 접촉한 음식물은 시체와 마찬가지로 부정하게되어 먹을 수 없게 된다(5:2, 19:11,22참조). 예언자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 배후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성전 건축에 참여시키려는 시도나 건축에 참여하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열망이 있었을 것이다(4:1~2 참조). 예언자의 질문은 분명한 공식적인 해명과 결정을 겨냥한 것이다. ‘거룩한 것’(성물12)에는 부정한 것의 경우처럼 침투력과 전염성이 없다. 곧 유다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거룩하게만들 수는 없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우상과 계속 접촉함으로 마치 시체를 만진 사람들처럼(왕하17:29,33) ‘부정하게되었기 때문에 모든 유다 사람들을 부정하게만든다. 또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는 일과 그들이 벌써 지금 임시로 만든 번제단에서 드리는 제물로 부정하게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성전 건축 작업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4:5절 다음 해설 참조). 사도 바울은 거룩함부정함을 이해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정반대 논리를 전개한다(고전7:13~14). 그렇지만 바울에게도 거짓된 우상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교회, 곧 마지막 때에 하는 하나님의 성전건축(2:19~22)에서 멀리할 경우가 있다(고전3:17; 5:2~5,13; 10:20~21; 고후6:14~16참조)”

 

거룩한 고기에 접촉된 것은 거룩하다는 말씀을 보기 위하여 구약과 신약의 해석을 말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누구라도 힘을 보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생각이 없습니까? 예배당이 좁으니 능력 있는 사람이 와서 예배당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지난 금요일 어떤 분이 오셨는데 그 분이 저의 설교를 어떤 분에게 소개하였더니 그 분이 예배당을 하나 지어드리면 좋겠다는 말을 했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받아들이겠습니까? 배척하겠습니까? 우리는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을 신약과 연결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단번에 영원히 이룬 그 의에 다른 것을 섞지 말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본 것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단장품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단장품이란 자기를 치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우상숭배와 주술과도 연결된 단장품들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어떤 단장품들이 있습니까? 자신의 공적으로 삼을 만한 것들은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깨어져야 합니다. 거룩한 고기가 담긴 질그릇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4~18절입니다.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신약의 하나님의 성전은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전 됨을 무너뜨리는 온갖 세상의 것들을 배척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였다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 된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것들이 어떤 것들입니까? 평소에 가지고 있던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복음을 말하고 자유를 말하지만 그 자유를 가지고 서로 종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과 왜 함께 어울리느냐는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신약의 성전 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잘못한 것에 대하여 책망하면서 인용한 내용이 레26:12, 29:45, 37:27, 31:1, 52:11, 1:10, 43:6절의 말씀을 한꺼번에 인용합니다.

 

고린도후서 7:1절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린도 교회에 온갖 세상의 것들이 다 밀려들어온 것입니다. 여러 가지 파당이 생겼습니다. 세상에서도 하지 않는 더러운 짓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 어떠한지를 구약을 인용하면서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 책망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회개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7~15절입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땅의 티끌입니다. 이 땅의 티끌 안에 천지를 창조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을 우리 안에 담아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아무른 가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 안에 있는 보배로 인하여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그릇을 포장하면 안 됩니다. 거룩한 고기를 삶은 질그릇을 깨어버리듯이 보배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담기게 되면 질그릇이 깨어지는 방식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살아있다는 자들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집니다. 질그릇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제 집사람과 함께 곽 집사님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아들과 아내가 같이 있었습니다. 시편 90편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이 아내와 아들에게 교회에 가라고 유언을 했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사망에 넘겨집니다. 그런데 그 안에 보배가 담긴 사람이라면 비록 고통 가운데서도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고기가 담긴 질그릇이 깨어지듯이 우리의 육체가 사망에 넘겨집니다. 이러할 때에 거룩한 보배가 담긴 자들은 비록 고통 가운데 있지만 부활의 소망을 가지며 견뎌냅니다.

 

고린도후서 4:16~18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