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5:1~13 속죄제(贖罪祭) (2) 2018. 12. 16

 

1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2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3 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4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5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6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1)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속죄제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 본 속죄제는 제사장, 백성전체, 족장, 평민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어긴 것을 깨달았을 때에 속죄제를 드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속죄제물의 피를 뿌리고 기름을 따로 태워드린 후에 모든 고기와 짐승 전체를 성막 밖 재버리는 곳에 불에 태워야 합니다. 이러한 속죄제가 히브리서에서 영문 밖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속죄를 이루신 내용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속죄제를 드려야하는 구체적인 예들이 나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저주하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않는 것도 속죄를 해야 합니다.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누구든지 어떤 사건을 보아서 알거나 들어서 알아 증인으로 출두하였을 때 바로 증언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리라는 선고를 듣고서도 바르게 증언하지 않는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그 죄의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바른 증언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서도 바르게 증언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29:24절입니다.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바른 증언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서도 도둑과 짝하여 바른 증언을 하지 않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고합니다. 그러므로 바른 증언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저주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저주만이 아니라 성경에서는 자신이 저주를 함으로 저주를 받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저주까지 몇 가지 함께 살펴봅니다.

 

저주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178회가 나옵니다. 출애굽기 21:17절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2:28절은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의 부모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데 저주한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재판장과 백성의 지도자에 대한 저주에 대한 내용을 신약에서 봅니다.

 

사도행전 23:1~5절입니다. “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1)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4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5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바울이 대제사장인줄 모르고 회칠한 담이라고 하자 다른 사람들이 대제사장을 욕하느냐고 합니다. 그때 바울은 출애굽기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바울도 율법의 전문가입니다. 이 정도로 유대인들은 율법이 생활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율법을 지킨다는 자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저주받을 자라고 보고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회칠한 무덤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화 있을 진저에 해당되는 자들입니다. 저주의 말을 한 자가 어떤 벌을 받는지 봅니다.

 

레위기 24:10~16절입니다. “10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여인이요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이 나가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11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 지파 디브리의 딸이었더라 12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4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16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이스라엘 여자와 애굽인 남자 사이에 태어난 남자가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끌고 가서 재판을 받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였기에 돌로 쳐서 죽게 하였습니다. 부모나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면 속죄제를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면 그를 돌로 쳐서 죽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저주를 사용하는지 보겠습니다.

 

사사기 17:1~2절입니다.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어머니가 돈을 잃어서 저주를 하니 아들이 그 저주를 받지 않으려고 자기가 훔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축복하면서 그 돈으로 우상을 만들고 제사장의 에봇을 만들어 아들 중에 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복과 저주를 해석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자들의 후손들이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아서 재판합니다(26:59~68).

 

본문 2~3절입니다. 누구든지 부정한 것에 접촉되면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 부정한 것이란 부정한 들짐승, 가축, 곤충의 사체를 부지중에라도 만졌다면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부정에 접촉되었는데 그것을 모르다가 나중에라도 알게 되었다면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에 접촉만 되어서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부정한 것의 구체적인 예는 레위기에서 계속하여 나옵니다. 이러한 율법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맹세에 대한 내용입니다.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죄인 줄 깨닫지 못하다가 나중에라도 깨닫게 되면 그 중에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일에 맹세야 당연히 허물이 되는 것이지만 선한 일에 있어서도 잘못 맹세로 서원하였는데 나중에 맹세를 지킬 수가 없다면 허물이 됩니다. 그래서 맹세와 서원에 대하여 여러 경우들을 율법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헛된 맹세도 죄가 되기에 속죄제를 드려야한다고 합니다.

 

본문 5~6절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허물이 있을 때에 아무 일에 내가 잘못하였다는 자복을 해야 합니다. 이중 하나란 저주의 말을 듣고도 바른 증언을 하지 않는 것과 부정한 것에 접촉한 것과 잘못된 맹세입니다. 이 세 가지의 경우 중에 하나만 어겨도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의 규례를 하나라도 어긴 것을 깨달았다면 자기의 죄를 시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인하여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는데 양 떼의 암컷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 제사장은 그 사람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합니다.

 

본문 7~10절입니다. “7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8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9 그 속죄제물의 피를 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제단 밑에 흘릴지니 이는 속죄제요 10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잘못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자신의 죄를 깨달아 속죄제를 드리려고 하지만 가난해서 어린 양을 바칠 힘이 없는 사람은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제물로 드릴 수가 있습니다. 제사장이 이렇게 속죄를 하면 그가 사함을 받습니다.

 

본문 11~13절입니다. “11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2)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12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13 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서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데 비둘기를 드릴 형편도 안 되면 어떻게 합니까?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속죄 제물로 드리면 됩니다. 2리터 정도 되는 양입니다. 곡식 가루로 드리는 것이라서 소제입니다. 소제에는 기름과 유향을 놓지만 이것은 속죄제이기에 그것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제단 위에 화제물 위에서 불사르라고 합니다. 그러면 속죄가 되고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리면 됩니다. 속죄제 인데 피가 없는 속죄제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죄가 없는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죄를 깨달아도 속죄제 제물을 마련하지 못하여 속죄제를 드리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가난한 자를 위한 속죄제를 마련해 두신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복하고 속죄제를 드리면 속죄를 받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오늘 속죄제의 첫 번째 내용은 저주에 대한 것입니다. 증인이 바른 증언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다는 맹세를 하고서도 바른 증언을 하지 않았을 때에 속죄를 해야 합니다. 이 뿐 아니라 모든 부정함과 잘못된 맹세에 대하여서도 속죄를 해야 합니다. 모든 죄는 다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저주를 구약에서 속죄의 제물로 대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저주 받으심으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저주가 없습니다.

 

오늘 저주에 대하여 많은 내용들이 나왔습니다만 사람들은 무엇을 저주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에서 제 명대로 못 살고 병이나 사고로 빨리 죽으면 저주 받았다고 합니다. 제 명대로 살아도 건강하지 못하여 고생하면서 살거나 가난하게 살아도 저주 받은 삶이라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주라는 개념은 세상이 말하는 저주입니다. 가인과 아벨중에 누가 저주 받은 사람입니까? 에서와 야곱 중에 누가 저주 받은 사람입니까?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아벨과 야곱이 저주 받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저주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9:1~3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바울의 형제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합니다. 바울사도에게 가장 큰 저주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가장 큰 저주임을 알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우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는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갔습니다. 이 때의 저주 개념과 예수님을 믿고 나서의 저주의 개념이 완전히 다릅니다.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를 대신 받은 저주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신명기 21:23절의 문자대로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은 죽음으로만 봅니다. 그러므로 같은 십자가를 저주 받은 자로 보는 것과 대신 저주 받은 주와 그리스도로 보는 것입니다.

 

로마서 8:35~39절입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세상에서 어떤 환난을 당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 참된 복입니다.

 

요한계시록 22:1~5절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예수님을 믿음으로 속죄함을 받은 자들이 영원히 살 나라에는 다시는 저주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