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22~27 제사장의 축복 2020. 5. 10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제사장이 축복할 내용을 알려주십니다. 이런 축복은 사람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제사장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내용으로 축복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축복이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것이지 제사장이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사장은 축복의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입니다. 제사장이 축복을 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는 것이기에 축복(祝福)입니다. 축복이란 빌 축()자에 복 복()자입니다. 한글로 번역하니 이렇게 구별하지만 히브리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축복이나 복은 바라크입니다. 바라크의 첫째 의미가 무릎을 꿇다, 꿇어 엎드리다, 절하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가 하나님께 기원하다, 복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복을 빌어주는 것은 제사장이 백성에게도 하지만, 백성이 백성에게도 합니다. 또한 왕이 백성에게 축복하고 백성도 왕에게도 축복합니다(왕상8:55,66). 그러므로 축복이라는 단어의 원 어미로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 경배함이 축복입니다. 우리는 내가 경배 받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지만 성경은 저주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2:20~24절입니다.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헤롯에게 잘 보이려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왕의 측근을 설득하여 헤롯과 화목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헤롯이 왕복을 입고 백성들 앞에서 연설합니다. 헤롯과 화목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아부하면서 신의 소리라고 합니다. 헤롯은 유대의 율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음으로 벌레에 먹혀 죽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이 죽어갈 때에 몸에 있는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다 벌레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축복입니까? 권력이 있는 왕으로 이런 영광을 누림이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참된 복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 무릎을 꿇음이 참된 복입니다.

 

본문 22~24절입니다. 제사장의 축복의 내용이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한다는 내용입니다. 복이 지키신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지키신다는 뜻을 야곱에게서 찾아봅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가다가 루스에서 돌베개를 베고 잡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의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다 이루시기까지 지켜주신다고 하십니다. 야곱이 깨어나서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켜주신다고 하시는데도 야곱은 믿음이 없어서 서원을 합니다. 자기를 지켜주시면 이곳에서 성전을 짓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켰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다 이루십니다. 야곱이 죽을 고생을 하고 환도 뼈가 위골이 되어 장애인이 되게 하셔서라도 그 약속을 지켜주십니다. 신약 식으로 말하면 환난과 핍박과 죽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음이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서 사라질 것들을 지켜주심을 복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본문 24~26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24 주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켜 주시며, 25 주께서 너를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너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26 주께서 너를 고이 보시어서, 너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주께서 주시는 복이 지켜주심의 복인데 이것은 앞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은혜와 평강의 복이 둘 다 여호와께서 밝은 얼굴로 대하시는 것과 고이 보시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얼굴을 비추어 주시는데 그 얼굴의 표정이 밝고 고이 보시므로 은혜와 평강을 얻는 것이 복입니다.

 

출애굽기 3:4~6절입니다.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모세가 여호와의 음성을 처음 듣습니다.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이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립니다. 죄인이 여호와를 뵙게 되면 죽습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33:18~23절입니다.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이 곧아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기도하여 함께 가시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올려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광야에서 다 죽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의 말을 들어주시면서 너는 은총을 입을 자라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모든 선하심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고 살 자가 없습니다. 그 정도로 인간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것, 하나님의 영광을 지나가게 하는데 직접 보면 죽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시는데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은 여호와께서 너그럽게 봐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20~23절입니다.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얼굴을 직접 보면 살 자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그 영광을 죄인이 보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곁에 한 장소가 있는데 그 반석위에 서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거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며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구약에서 가장 여호와를 가까이 하였던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합니다(12:7). 이 말씀은 여호와의 뜻을 구약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보지 못한 창세기를 계시를 받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모세가 바위틈에 숨겨져야 할 정도로 여호와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0: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여호와의 영광을 직접 대면하여 보면 죽기에 바위틈에 감추십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그 바위가 신령한 반석인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반석에서 생수가 나왔습니다. 그것을 신령한 음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를 뵙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직접 여호와의 얼굴을 뵈면 살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는데도 죽지 않았다고 하여 제단을 쌓았는데 그 제단 이름이 여호와 살롬입니다(6:23~24). 지난주에 본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도 여호와를 뵈었으니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외면하거나 진노의 얼굴이 아니라 자비의 얼굴을 비추어주심이 복입니다.

 

출애굽기 34:22~24절입니다.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23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24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삼대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는 이유는 여호와를 뵙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얼굴을 보여주심이 복이지만 그 얼굴 뵙는 것도 복입니다.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성소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 제물을 드림이 여호와를 뵙는 일이기에 그 자체가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절기를 잘 지키고 제물을 잘 드리고 예배를 잘 드려서 썩어질 것을 구한다면 우상숭배가 됩니다.

 

시편 42:1~3절입니다.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하나님의 얼굴을 뵙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세상은 조롱합니다.

 

시편 67:1~2절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복을 주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구원임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주 얼굴을 뵙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성경은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편 104:24~29절입니다. “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2)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3)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바다의 물고기도 리워야단도 주님의 낯을 숨기시면 그들이 떨게 됩니다. 그 호흡을 거두면 죽어 먼지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주의 얼굴을 비추어 주시는 것이 참으로 복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게 되면 그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얼굴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마가복음 14:61~65절입니다.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만 하여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그 영광을 버리고 오신 하나님의 얼굴인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눈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면서 네가 선지자라면 누가 때렸는지 알아보라고 합 하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칩니다. 누가 이 얼굴을 보고서 하나님의 얼굴로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직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야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믿게 됩니다.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합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보리시고 이 땅에 오셨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얼굴을 향하여 침 뱉고 때리고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지 이제 알아봅니다.

 

고린도전서 13:9~13절입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2)제일은 사랑이라

 

오늘 오전에 본 말씀입니다만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로 대하여 볼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신약의 계시가 완성이 되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더욱 온전하게 안다는 뜻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 속에서의 앎이란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성도의 부활로 인하여 그 얼굴을 뵙게 될 때에 참으로 사랑의 완성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성경에 가득하기에 성경으로 그 사랑을 알아갑니다.

 

요한계시록 1:16절입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시고 주먹으로 뺨으로 맞으신 그 얼굴이 이제는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구원입니다.

 

요한계시록 22:1~5절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주의 얼굴을 뵙는 것이 영원한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