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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4:8~22 다윗 성에 장사 됨 2016. 8. 28

 

18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9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0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지난주에 아마샤가 에돔을 무찌르고 그곳의 우상을 가져와서 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산당에서 떠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제공함으로 자신의 왕위를 든든히 하고자 하는 모습이 하나님의 원수 된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겠습니까? 실패하게 만들고 반역을 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하여서라도 그를 다윗의 성에 장사 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봅니다.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지난주에 역대 하 25장을 통하여 아사랴가 에돔을 공격하기 위하여 유다의 30, 북 이스라엘의 용병 10만을 은 백 달란트를 주고 고용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 용병들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은 백 달란트를 손해 보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보다 더한 것을 주실 것이라고 하시자 하는 수 없이 돌려보내고 에돔을 치러 갔는데 대승을 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의 용병들이 돌아가면서 유다의 성읍들을 약탈하고 삼천 명이나 죽였습니다. 에돔에서 대승을 하고 자신감을 가진 유다 왕이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와 전쟁을 하자고 합니다.

 

9~10절입니다. “9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북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비유로 말하면서 네가 교만하다고 하면서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어찌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고 합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중에 어느 나라가 다윗의 언약을 이어가고 있습니까? 남쪽입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의 왕이 남 유다의 왕을 향하여 교만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 유다의 왕이 듣지 않고 공격을 합니다.

 

11~14절입니다. “11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그와 유다의 왕 아마샤가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1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1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14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15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의 왕 아마샤와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6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북 이스라엘이 잘한 것이 없습니다. 용병으로 왔다가 돌아가면서 유다의 성읍을 약탈하고 삼천 명이나 죽였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의 아마샤가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아마샤가 패배합니다. 벧세메스에서 요아스가 아마샤를 사로 잡아버립니다. 벧세메스가 어떤 곳입니까? 사사시대에 블레셋에 빼앗긴 언약궤가 홀로 적을 물리치고 돌아온 장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마샤의 군대가 30만이며 에돔에서 대승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전리품들도 챙기고 왔습니다. 그런데 벧세메스에서 아마샤가 사로잡힙니다. 이런 사건이 무엇을 담아내고 있습니까? 지금 아마샤가 여호와의 언약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에돔에서 우상을 들고 와서 섬기는 아마샤입니다. 패배한 나라의 신상을 들고 와서 섬기고 있는 아먀샤입니다. 그러므로 벧세메스에서 패배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아마샤를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사백 규빗을 헐어버립니다. 사백 규빗은 약 200미터가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참으로 굴욕적인 일을 당하였습니다. 아마샤가 그렇게 잘못한 것이 없어 보이는 전쟁에서 이렇게 굴욕을 당한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산당을 없애지 못한 그 마음으로 에돔의 신상까지 가져와서 섬긴 것입니다. 오늘 오전의 말씀대로 하면 믿음이 없고 패역한 모습입니다.

 

역대하 25:19~20절을 봅니다. “19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역대하에서 아마샤의 패배 원인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말을 듣지 않고 전쟁을 벌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마샤를 심판하신 일입니다. 그 이유는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마샤를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에게 넘겨버린 것입니다.

 

17~18절을 봅니다. “17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간을 생존하였더라 18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아마샤가 패배하였지만 유다의 왕으로 15년을 더 생존합니다.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을까요? 멸시를 받았을 까요? 백성들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의 금은까지 빼앗긴 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모로 잡혀갔습니다. 그렇게 15년을 더 왕으로 있어도 굴욕적인 왕위를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19~22절입니다. “19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0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21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를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그 때에 그의 나이가 십육 세라 22 아마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더라

 

아마샤가 죽임을 당합니다. 어디에서 반역이 일어납니까?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반역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반역이 일어났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집행한 것입니다. 다윗의 왕위를 이어가는 왕을 백성들이 반역하여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반역한 자들이 왕권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왕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이미 아마샤의 아버지에게도 일어난 일입니다.

 

역대하 24:24~25절을 봅니다. “24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5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26 반역한 자들은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가 왔지만 유다의 심히 큰 군대를 아람에 넘기신 이유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게 한 원인 제공자가 누구입니까? 요아스 왕입니다. 아마샤의 아버지입니다. 요아스가 이 전쟁에서 부상을 입었는데 아람 군대가 죽이지 않고 그를 버리고 갑니다. 그런데 그의 신하들이 요아스를 죽이는데 그 이유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하들이 반역한 것은 왕위를 차지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심판의 도구로 반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반역한 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들이 암몬 족속의 여인과 모압 족속의 여인의 아들 이라고 합니다. 모압과 암몬 출신의 여인이 유다의 백성과 결혼하여 유다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반역하여 왕권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아마샤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왕을 다윗의 성에 장사하였지만 왕의 묘실에서 두지 않습니다. 이름 없는 백성들이 왕의 치세기간동안 여호와의 언약에 충성되었는지를 평가하여 왕의 무덤의 위치를 정합니다. 세상 나라의 왕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집트의 왕은 왕이 되면서부터 사후의 무덤을 준비합니다. 진 나라의 시 황제가 사후의 무덤이 얼마약 22백년 만에 그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발견된 것입니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그 위용이 대단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왕들은 자신의 무덤을 준비하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자신이 무덤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무명의 백성들이 결정을 합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반역을 하는 것도 왕의 무덤을 결정하는 것도 그 기준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충성도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아마샤가 자기 아버지의 이런 죽음을 잘 알면서도 그 아버지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시가 주어져도 이렇습니다. 산당을 없애지 못하는 그 마음으로 에돔의 신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을 이기게 하여 주셨는데도 그 패배한 에돔의 신상을 가져와서 섬겼기에 북 이스라엘에 패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처럼 신하들의 반역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반역이 일어나자 아마샤가 도망을 갑니다. 도망 가다가 라기스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반역해서 왕을 죽였다면 그 시체를 모독하여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짐승의 밥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죽음이 저주스러운 죽음이 됩니다. 그런데 그 시신을 말에 싣고 와서 다윗의 성에 장사를 지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죽여서라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 유다의 왕들도 북 이스라엘의 왕들 못지않게 악한 왕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의 성에 장사를 지냅니다. 다윗 자신도 간음하고 살인한 왕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을 잘한 왕으로 기준을 삼는 것은 자신의 죄를 나단 선지자가 책망 할 때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어떠함을 고백하였습니다. 모태로부터 죄 중에 잉태되었고 죄 짓은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아스 왕은 죄를 지적하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을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 왕인데 왜 다윗의 성에 장사를 지내는 것입니까?

 

이것이 언약의 위력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한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언약을 배반한 왕을 죽여서라도 다윗의 성에 장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아스 만이 아니라 그 아들 아마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이 왕을 배반하여 죽이고 그 시체를 예루살렘의 다윗 성에 와서 장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죽여서라도 자기 백성을 삼으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에 우리는 놀라야 합니다. 죽여서라도 다윗의 성에 장사되게 하는 이런 모습을 신약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1~5절입니다.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사탄에게 넘겨주었다는 말은 그의 육체를 죽여서라도 그 영을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고 그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왕을 죽여서라도 다윗의 성에 장사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죽여서라도 구원하여 내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입니다.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백성들은 예외 없이 이 세상에서 죽여서 구원하십니다. 그 죽이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셔서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편입되는 자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