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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19~25 선지자의 두 기능 2016. 1. 3

 

19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엘리사가 엘리야를 승계하여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로 들어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사의 두 가지 사역이 나옵니다. 하나는 구원이며 하나는 심판입니다. 여리고 성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 반면 벧엘의 사람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같은 선지자인데 그 기능이 두 가지입니다.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지(擔持)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개인의 어떤 자질이 아니라 그 선지자가 전하는 그 말씀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구원에 이르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심판에 이릅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 사람의 외모만 보고 취급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사람의 중심이 어떠한지를 보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보통 사람들보다 더 못한 사람들로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보통사람보다 못한 사람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불렀다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도 자기 살려고 자기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아먹은 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막아주심으로 무사히 돌아왔지만 아브라함과 이집트의 바로 왕과 비교하면 아브라함은 거저 지나가는 유목민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나중에 아비멜렉 왕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들을 다루시는 것입니다.

 

모세나 다윗이나 그 어떤 자들이라도 인간적인 약점이 없는 자가 없습니다. 다니엘은 개인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나아보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포로로 잡혀온 한 소년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성경의 선지자들이 대단한 자질을 소유하고 불굴의 의지를 발휘한 사람으로 보려고 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의도와 달리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그들은 선지자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왜 그렇게 엘리야를 따라 다니게 되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런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되는 일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인물을 연구하여 그 사람의 자질을 본받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선지자를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본문 19~22절입니다. 여리고성의 사람들이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보았을 것이며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오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보고 말합니다. 엘리사를 자신들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엘리사의 개인적인 자질과 능력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로 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합니다. 토산(土産)이라는 것이 농산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낙태나 사람의 유산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를 이 성읍의 사람들은 물이 좋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이때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합니다. 엘리사가 그 소금을 가지고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가운데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 것이라고 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면 소금을 던지게 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엘리사는 거저 심부름만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사에게 여리고 사람들이 물이 좋지 않다고 한 말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물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 일이 일어난 시점과 기록한 시점이 한참이나 지난 뒤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팔레스타인의 땅인 여리고 지역의 샘물을 엘리사의 샘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소금을 물 근원에 던지게 하셨을까요? 소금은 저주와 심판(19:26, 47:11, 2:9, 9:45)도 의미하지만 언약(18:19, 대하 13:5)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성이 한때 저주의 성읍이었지만 엘리사를 통하여 회복이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금의 기능이 두 가지 이듯이 선지자의 사역도 두 가지입니다. 여리고성은 여호수아 때 정복하고 저주를 한 성읍입니다. 물론 이 성읍이 여호수아 때 무너진 성읍으로는 볼 수 없지만 여리고 지역의 성읍으로 보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후에 이 성을 다시 쌓으면 그 자식을 잃을 것이라고 저주를 합니다.

 

여호수아 6:26절입니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이 예언대로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읍을 건축한 사람이 여리고 사람이 아니라 벧엘 사람입니다.

 

열왕기상 16:34절입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맏아들을 잃고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첫 아들이 죽을 때에 여호수아의 말씀을 알았더라면 정신을 차렸을 터인데 이 시대가 아합 시대입니다. 온 나라가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가득하니 언제 성경말씀을 읽을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벧엘은 북 이스라엘의 처음 왕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신전을 만든 곳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를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중심지인 벧엘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를 조롱합니다.

 

본문 23~25절입니다.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갑니다. 여리고는 해발고도로 비교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속합니다. 해발고도 265미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벧엘로 가도 올라가는 것이고 예루살렘으로 가도 올라갑니다. 반면에 여리고로 가는 방향은 항상 내려간다고 표현합니다(10:30).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에 길에서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엘리사를 조롱합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합니다. 이미 엘리사가 엘리야의 사역을 승계 받은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벧엘의 아이들은 엘리사를 보고 대머리라고 놀리면서 올라가라고 합니다. 올라가라는 말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기에 올라가라는 말도 되지만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 버리라는 말도 됩니다.

 

작은 아이들이라면 13세부터 본다고 합니다. 이들은 율법의 전통에 의하면 율법의 의무를 져야하는 나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조롱하였을까요? 엘리야를 통하여 삼년 육 개월의 가뭄이 왔을 때에 왕과 백성들이 어떤 욕을 했을까요? 아합 왕이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엘리야라고 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말했기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야를 다 욕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물론 소수의 남겨진 백성들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하여 조롱한 것입니다. 그러한 조롱이 아이들도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과 그 선지자들에 대한 조롱을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들었기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른들이 교통경찰 욕하면 아이들도 따라서 욕을 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선지자를 조롱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두 마리가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습니다. ‘사십이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생각이 납니까? 마흔두 달이 생각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2절과 13:5절에서 마흔두 달이란 삼년 반으로 심판의 기간을 상징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필 마흔두 명의 아이들이 죽임 당한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0:14절에서 예후에 의하여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도 죽임을 당합니다.

 

동일한 선지자인데 그 기능이 두 가지 역할입니다. 선지자를 여호와의 사자로 알아보고 선지자의 말을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저주의 땅, 저주의 물이 회복이 됩니다. 그런데 벧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조롱한 것은 여호와를 조롱한 것이기에 그들이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벧엘로 올라가다가 갈멜산으로 갑니다. 갈멜산은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이 죽이려고 할 때에 피하여 간 곳입니다. 지금 엘리사도 엘리야가 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습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이 됩니까?

 

다음 주 주일 오전에 볼 말씀을 미리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1:20~24절입니다.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구약의 본문과 연결하여 보시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마을들이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예수님의 권능을 이방의 교만하고 타락한 두로와 시돈과 소돔에서 행하였다면 그들이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을 기쁘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할 것입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과 시편이 증거 한 예수님도 선지자들의 사역처럼 두 가지 기능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저주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구원에 이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고 배척하면 그 사람이 현재 아무리 부귀영화의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영원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고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영원한 저주에서 건짐을 받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마라에서 쓴 물이 모세를 통하여 단 물이 되고, 여리고의 좋지 않은 물이 엘리사를 통하여 좋은 물이 되듯이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수를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5~40절입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며 생명의 음료수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가 있고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믿는 자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믿지 않는 자는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스스로 자신을 살릴 수가 없어서 전적으로 예수님만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만 사모하게 됩니다. (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