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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7:1~20 어찌 이런 일이 2016. 4. 17

 

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어제가 세월 호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어찌 이런 일이 다 일어나는가 하였습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고의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이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조금만 손해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지 요즈음 카페라는 곳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자신들의 하소연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내용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지난주에 본 말씀은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아람 군대에 의하여 포위가 되었습니다. 성 안에는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물가가 폭등을 합니다. 돈이 있어도 음식을 사지 못합니다. 나귀 머리 하나가 은 80세겔이나 하고 비둘기 똥 4분의 1갑에 은 다섯 세겔을 주어야 합니다. 부자들은 이런 것이나마 사 먹고 연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자들은 이미 굶어죽어 가는 지경에 자기들의 자녀를 삶아 먹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여호와께로부터 온 것이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릴 수 있느냐며 선지자를 죽이려고 사람을 보냅니다.

 

오늘 본문 7:1~2절을 봅니다. “봉독 엘리사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할 것이라고 합니다. 가격이 폭락을 합니다. 가격이라는 것은 상품이 희소할수록 올라가고 상품이 많아질수록 가격이 내려갑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어서 아이까지 삶아먹는 성읍에 갑자기 곡식 가격이 평소의 거래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말을 들은 장관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 말을 이런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때 엘리사는 이 장관에게 네가 눈으로 보기는 하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어디에 대입시킵니까?

 

우리가 이 장관이라고 하여도 믿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고 사는 자들입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노아 홍수 때를 봅니다. 장관이 하늘의 창을 낸다고 할지라도이 말이 노아 홍수 때에 하늘에 창이 열려 비가 쏟아진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 사람들은 노아의 말과 행동을 보고서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홍수로 세상이 멸망한다는 사인을 끊임없이 보여주었습니다만 사람들은 어떻게 하늘에 창이 열려서 홍수가 날 수 있느냐며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 홍수로 온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늘에서 정말 창이 열려서 비가 쏟아져 내린 것입니다.

 

창세기 7:10~12절입니다.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여기서 하늘의 창문들이 열린다는 이 말이 오늘 본문의 하늘의 창을 내신들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과 같은 단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노아 가족 외에 아무도 방주에 타지 않았습니다. 왜 타지 않았을 까요?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이 열려 비가 쏟아질 것이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이들이 경험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지식으로 보아도 도무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만들도 방주에 타게 되었습니까? 그것도 비가 오기 일주일 전에 말입니다. 노아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6:8). 그러므로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내 마음에 드는 설교를 들을 때 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의 심판을 믿고 방주를 예비하며 사는 삶이 은혜 입은 삶입니다.

 

창세기 19:12~14절입니다.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롯의 사위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이 성을 멸한다는 소식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도 천사들의 손에 끌려나옵니다. 롯의 아내를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본문 3~5절입니다. “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성문 어귀에 나병환자들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적진으로 나갑니다. 해질 무렵에 나아갔는데 적들이 한 명도 없이 다 도망갔습니다.

 

6~7절입니다.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나병환자가 아람 진영에 도달하여 보니 한 사람도 없이 도망간 이유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아람을 치게 하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신 것입니다. 언제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까? 7절에 보시면 해질 무렵입니다. 해질 무렵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네 명의 나병환자가 아람 진영으로 간 것입니다. 이 소리가 무슨 대단한 소리이겠습니까? 그런데 마침 그 해질 무렵의 시간에 적들은 대단한 병거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무기도 다 버려두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8~10절입니다.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10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나병환자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합니다.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면 성안은 더욱 굶주려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어야하기에 나병환자들이 먹고 마시며 보물들을 감추다가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많은 군수품을 그들이 아무리 먹고 마시고 숨긴다고 하여도 표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병환자가 성에 이르러 그 상황을 알려줍니다.

 

11~12절입니다. “11 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12 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하니왕이 이 보고를 받고 신중하게 생각을 합니다. 적들이 유인하려고 매복하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때 한 신하가 대답합니다.

 

13~15절입니다. “13 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14 그들이 병거 둘과 그 말들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15 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니왕의 호위부대의 말 다섯 마리가 사마리아 군마의 전부입니다. 말도 나귀도 다 잡아 먹은 상태이나 마지막 말로 병거를 메고 정찰하게 합니다. 나병환자의 보고대로 된 적의 진영임을 왕에게 보고하지 백성들이 아람 진영으로 달려 나갑니다.

 

16~17절입니다. “16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17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하늘에서 문이 열리듯이 양식이 주어짐으로 여호와의 말씀대로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관은 왕이 성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렇게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굶주려 눈이 뒤집힌 백성들은 그런 질서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밀고 나감으로 성문에서 그 장관이 밟혀 죽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18~20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19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20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선지자의 예언까지 합하면 세 번을 반복하여 이 말씀이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겠느냐고 믿지 못한 장관이 눈으로 보기는 하지만 먹지는 못하리라고 한 그 말씀대로 성문에서 밟혀 죽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우리도 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데 이 장관처럼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갑니까?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내 힘과 내 능력을 믿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이 장관의 신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놀라운 어찌 이런 일이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이 말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준다는 행위를 믿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믿게 된 자들이 자신이 한 것도 없는데 의롭다 함을 받는 이 놀라운 소식을 누가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소식은 나병환자가 전하는 소식과 같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염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염병과 같고 나병환자와 같은 자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누가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굶어죽는 지경, 심지어 자기의 자식까지 삶아먹는 지경에 이른 자들이 나병환자가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이 들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정말 자기 자신에 대하여 철저하게 절망하는 자들입니다. 나 행한 것 죄 뿐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나병환자와 같은 자들이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어찌 일어나는 것입니까?

 

창세기 28:10~15절입니다.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가는 야곱에게 하늘에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은 언약을 하십니다. 이렇게 하늘이 열리는 것이 누구에게 이루어집니까?

 

요한복음 1:47~51절입니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더 큰일도 볼 것이라고 합니다. 더 큰 일이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길이 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보는 것이 하늘이 열리는 일입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에 열립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면서 음성이 들리기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합니다(3:16~17).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에 하늘에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게 됩니다(7:56). 이러한 하늘이 열리는 일들을 사람들이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자신의 능력으로 나올 수 없기에 나병환자가 전하는 모습으로 복음이 증거 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전염병이라고 하였습니다(24:5). 이런 자들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 믿는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불신앙의 말이 아니라 감탄의 말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단번에 영원히 의롭다 함을 받는 이 말씀을 사람이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직 믿음에서 믿음이며 은혜에서 은혜입니다. (찬송 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