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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8:1~6 다 돌려주라 2016. 4. 24

 

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3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4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니라 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지난주 신앙상담 란에 이 본문과 연결된 질문이 있었습니다. “왕하 5:27 에서 게하시는 문둥병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치료받았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고요. 그런데 왕하 8:4~5 에서 게하시가 다시 나옵니다. 당시 문둥병이 걸리게 되면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성 밖에서 살아야 한다고 아는데 어찌된 건지 궁금합니다. 왕하 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왕하 8:4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니라

 

이 질문에 대하여 제가 답을 하였습니다. “열왕기서나 다른 성경도 꼭 연대기적인 시간 순서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앞의 사건을 뒤로 보내기도 하고 뒤의 사건을 앞으로 당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왕하 8장을 4장과 연결하여 보시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하면 계시 전달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답을 했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게하시의 문제는 다르게 보는 내용도 있습니다. 게하시가 문둥병에 걸렸지만 왕궁에 출입할 정도였다고 보거나 아니면 회개하여 고침을 받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4장과 연결하여 보면 이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수넴 여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드러내시는지 보시면 됩니다.

 

왕하 4:8~37절을 다시 요약하여 보면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집 앞을 자주 지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아보고 남편에게 말하여 자기 집 담벼락에 연결된 다락방을 지어 쉬게 한 것입니다. 주도면밀하게 접대를 하였습니다. 성경에 손님접대가 아주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조롱하다가 심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엘리사를 알아보고 접대를 한 것은 이 여인이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여인에게 그런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 일을 계기로 엘리사는 그 여인의 가정에 무언가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게하시를 통하여 그 여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니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왕이나 사령관에게 청탁할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해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게하시가 그 집에 아들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자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한해가 지나면 아들을 안으리라고 합니다. 이 여인이 믿지를 않지만 아이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다가 죽습니다. 엘리사가 와서 다시 살립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말씀드렸습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하나님은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데서 살려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4:17~18절입니다.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2)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믿음 없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을 어떻게 만들어 내시는지 아브라함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믿음이 어떻게 나오게 되는지 보여주시는 말씀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바랄 수 없는데 바라고 믿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아서 믿습니다! 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는 전혀 없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이루어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에스겔 36:32~36절입니다.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3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34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폐하게 보이던 그 황폐한 땅이 장차 경작이 될지라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에스겔 36장은 예레미야 31장과 마찬가지로 새 언약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새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부어주셔서 그들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어 내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일만 하였습니다. 애굽에서도 광야에서도 약속의 땅에서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들을 다시 돌이켜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이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이름 곧 그 아들의 희생을 공로를 드러내기 위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32절에서는 이렇게 하시는 것이 너희를 위함이 아님을 알라고 합니다.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여 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심을 통하여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의 사람들을 여호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으니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루시는 것을 에스겔 37장에서는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이것도 말씀하셨기에 이루시는 것입니다(37:14).

 

오늘 수넴 여인이 7년의 기근이 들어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갔다가 7년이 지나서 돌아옵니다. 이렇게 되는 배경을 열왕기하 4:37절부터 연결하게 보겠습니다. 여인이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갔습니다. 이 본문을 볼 때에 아들을 안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봅니다. “봉독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 일은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기 전에 말한 것입니다. 기근을 여호와께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 때는 3년 반인데 이제는 배가 되는 7년입니다. 여인이 선지자의 말대로 7년을 블레셋 사람의 땅에 가서 살다가 돌아옵니다. 그런데 7년 동안 땅을 비워두었으니 다른 사람이 경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을 돌려달라고 왕에게 나왔습니다.

 

본문 4~5절입니다. “봉독여기서 엘리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만 등장합니다. 엘리사가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갔는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다시 엘리사가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꼭 연대기 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 등장을 하지 않아도 엘리사의 말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기에 그 약속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종종 말씀드린 대로 언약의 전달자는 죽어도 그 언약은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를 통하여 하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자기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사람 중심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성취 중심으로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멸망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과연 믿고 사십니까?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에게 엘리사가 행한 하나님의 모든 큰일을 설명하라고 합니다.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말할 때에 그 수넴 여인이 왕에게 호소하려고 온 것입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입니다. 이런 일들이 성경 도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엘리사가 말한 대로 7년이 지나서 돌아왔는데 마침 그 시간에 게하시가 그 여인의 아들이 죽고 살아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없었는데 있게 되었고 죽었다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자 왕이 그 여인에게 말하기를 허락하고 그 여인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왕은 그 여인을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까지 다 돌려주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직접 왕에게 온 것을 보니 그동안 남편이 죽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의 모든 땅을 돌려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기근이 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근을 피하여 블레셋 땅에 갔다가 7년 만에 돌아오니 이미 땅을 다른 사람이 경작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이 땅을 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고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남 유다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말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속 내용은 풍요와 다산의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라에 흉년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수넴 여인은 그 기근이 끝나고 돌아와서 왕에게 요청하였을 때에 자신의 모든 땅만이 아니라 그 동안의 소출까지 받게 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엘리사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기에 그렇습니다. 마침 그 시간에 왕이 게하시과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살려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7년 동안 기근을 피하여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남편이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왕에게 청원하는 일을 아내가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룻기의 나오미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하나님의 떡집에 기근이 듭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압으로 이사를 갔지만 그 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두 며느리만 남았을 때에 베들레헴을 하나님이 돌보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룻만 끝까지 따라 왔습니다. 이때 이 가정의 유업을 물려준 자가 보아스입니다. 이러한 룻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수넴 여인이나 나오미나 룻이 물려 받은 기업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이 땅이 아직 있습니까? 그 집안의 후손들이 아직 받고 있습니까? 이런 땅을 문자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자들이 아직 혈통적인 유대인들입니다. 이들 중에 예수를 믿는 자들도 있지만 이들과 함께 세대주의가 연결되어 육적인 예루살렘의 회복과 건물 성전의 회복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옛 언약이 완성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1:9~12절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수넴 여인이나 나오미나 룻도 그들의 행위대로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불러내시고 그런 역할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그림자로 보인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상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들이 물려받은 기업은 하늘의 기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받은 그것들을 결국 불에 살라지지만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드러나는데 이제는 그가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복음을 말하면서 생명도 아닌 것을 썩어질 것을 복음의 내용으로 전한다면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다른 복음입니다. 바울사도 이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전하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서 미움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율법지킴이라는 자기들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기에 복음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도 미워하였습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신을 믿어서 복을 받고 싶은 자들이나 신비한 체험을 원하는 자들이나 내세의 복을 구하는 자들에게서도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믿게 된 예수님을 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길을 가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믿음을 주셨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그 이루신 내용을 이 역사 속에 펼쳐내고 계시는데 그 약속에 자신이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사람이 절대로 이를 수 없는 영원전의 약속이라고 합니다. 이 영원 전의 약속에 누가 참여할 수가 있겠습니까? 피조물은 참여하지 못합니다. 이 영원전의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셨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고 계시는지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믿는다는 그 믿음의 내용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을 전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고난을 받을 지라도 자신은 하나님의 그 약속이 믿어지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게 전할 때에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그 복음을 듣고 반응하면 그렇게 기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나오미와 룻과 같을 수 있습니다. 수넴 여인의 모습과 같을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온 이스라엘이 다 타락하여 우상을 섬겨도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이루시는 일에 이러한 일들이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불순종의 배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 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명하게 보여주시고 계시지만 우리는 늘 우리의 인본주의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보기에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사람의 일함을 더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가려진 모세의 수건이 벗겨지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내신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 약속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인간의 불순종과 반역 속에서도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지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그리스도를 받았다면 모든 것을 다 돌려받은 것입니다. 그 돌려받은 것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썩어지고 불태워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것을 돌려받는 것은 하늘에 속한 영원한 기업이며 이것은 그 아들의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것이 모든 것을 받은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품에 안아주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입니다. 이 복 받기를 소원합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입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