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5:1~19 내부의 방해자들 2018. 5. 13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느헤미야 4장에서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방해하는 자들이 외부인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성벽 건설의 방해자들은 내부인들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고리의 이자를 받음으로 가난한 자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를 찾아와서 호소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그 때란 성벽을 재건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럴 때에 경제적인 문제로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이런 원망은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동원되었기에 어느 정도 원인이 있기도 합니다만 성벽재건이 52일 만에 마치기에 그 이전부터 쌓여온 문제가 성벽 재건으로 인하여 더욱 힘들어지니 원망들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2~4절입니다.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원망하는 사람들이 세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고 합니다. 당장 끼니가 급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아직 밭과 포도원과 집이 있는 사람들로 그것을 저당 잡히고 흉년에 곡식을 얻어야 하겠다고 합니다. 이들은 처음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들이지만 양식을 얻기 위하여 저당을 잡혀야 하고 그러면 또 이자를 많이 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밭과 포도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빚을 내어 왕에게 세금을 바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왕이란 페르시아 왕입니다. 고레스 왕 때는 20퍼센트이었는데 나중에는 40퍼센트 까지 세금을 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원망들을 느헤미야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내용이 나옵니다.

 

5절입니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 같은 피붙이 형제라고 하는 백성들끼리 고리대금을 매겨서 자녀들이 종으로 팔리고 밭과 포도원도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른 힘이 없다고 합니다.

 

6~7절입니다. “6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8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원성을 듣고서는 크게 노하였다고 합니다. 왜 크게 노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율법을 어긴 것이 됩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빚으로 팔린 자들을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아왔습니다. 쉰들러 리스트가 생각이 납니다. 쉰들러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유대인을 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유다 땅에서 그랬는지 바벨론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자기 동족을 구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포로에서 돌아온 동족끼리 빚으로 종을 삼아 버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크게 화가 났지만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분노하여도 마땅한 자격이 있습니다. 총독의 자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깊이 생각한 후에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책망을 합니다. 먼저 율법부터 살펴봅니다.

 

출애굽기 22:25~27절입니다.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이런 법을 주신 이유는 여호와께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39~43절입니다. “39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41 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42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43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러한 율법을 어김으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시기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잊어버리고 또 다시 율법을 어겨 형제들에게 고리대금을 받고 밭을 가로채고 자녀들을 종으로 잡아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의 권한으로 그들의 불의함을 재판하여 모두 돌려주게 하고 벌금을 매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백성들을 설득합니다. 느헤미야의 선행을 봅니다.

 

본문 14~19절입니다. “봉독 총독의 월급조차 12년 동안이나 받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힘을 다하여 성벽을 재건하고 여러 손님들을 대접한 것은 여호와를 경외함과 백성들이 부역이 중함을 알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처벌을 하여도 백성들이 지지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본문 9~11절입니다. “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10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11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탐으로 이방의 조롱을 받았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서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는 중에 다시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또 비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하여야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기의 종자들도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자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느헤미야 자신은 이자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율법을 지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행한 일이 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친인척 가운데 이자를 받을 사람도 있을 수 있기에 자신도 그들과 동일시합니다.

 

우리의 역사인 조선왕조를 보면 개혁을 할 때 누가 제일 걸림돌이 됩니까? 왕의 친인척들과 기득권층입니다. 그러므로 토지 제도나 세금제도를 개혁하려고 하면 가장 큰 저항이 권력층입니다. 공납의 폐해를 개혁하는 것이 대동법입니다. 공납은 가구 수로 현물을 내도록 하는 것이라면 대동법은 미곡을 토지 중심으로 매긴 것입니다. 무려 백년(1608년 광해군~ 1708년 숙종)에 걸쳐 고쳐집니다. 온갖 기득권의 방해가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솔선수범 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낮추어 그들과 같은 입장에서 우리가 이자를 받지 말고 돌려주자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심지어 종으로 삼았던 기득권층들이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이런 지혜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본 대로 하나님의 감동이 있고 범사에 기도하는 느헤미야입니다.

 

본문 12~13절입니다. “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더 이상 기득권이 할 말이 없게 되었기에 느헤미야의 말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느헤미야는 제사장들을 불러 그 말대로 맹세하게 합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자신의 옷자락을 털며 이 말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버리실 것이니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회중이 다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저주 선언에도 아멘을 합니다.

 

여기서 옷자락을 털어버린다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이렇게 털려버릴 것이라고 하는 저주의 몸짓입니다. 동족끼리 고리대금(高利貸金)을 하고 빚을 갚지 못하면 집과 땅을 빼앗아가고 심지어 자녀들을 종으로 삼아버리는 이런 행태를 율법이 금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이런 율법을 주어서 약속의 땅으로 들여놓았지만 이 법을 지키지 못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곳에서 돌아와서도 같은 죄를 짓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다시 맹세시키면서 그 옷자락을 털어버림을 통하여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잊어버리는 자들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자비의 공동체에 대한 내부의 방해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털려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어떻게 신약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됩니까?

 

마태복음 10:14~15절입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가는데 그들을 영접하지 않으면 그 집이나 그 성에서 나가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도 옷을 털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는 다는 몸짓입니다. 제자들을 거절한 것은 예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 심판의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3:48~52절입니다.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복음을 핍박하는 자들이 주로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합니다. 이들은 바울이 전하는 그 십자가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복음이 싫은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는 쫓겨나면서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데 제자들은 이런 핍박을 받으면서 기쁨과 성령이 충만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을 듣고 믿고 전하는 것은 그 영생에 참여되었음 알기에 기뻐합니다.

 

사도행전 18:4~6절입니다.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방해하는 자들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있습니다. 느헤미야에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잊어버리고 동족을 박해하는 자들을 책망하면서 옷자락을 털어버립니다. 그 자비를 버리는 자는 그렇게 털릴 것이라고 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털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느헤미야시대에 책망 받은 자들이나 복음을 배척한 유대인들과 귀부인과 같이 유력한 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이 내부의 방해자들이기에 결국 털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