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5:1~28 말씀을 듣지 않음 2017. 10. 29

 

1 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2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아스가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여호와 보기기에 정직하게 살았지만 여호야다가 죽고 나자 자기 타락하였습니다. 방백들의 말을 듣고 바알숭배를 합니다. 여호야다의 아들이 책망을 하니 죽여 버렸습니다. 이런 요아스가 죽고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됩니다. 아마샤가 이십 오세에 왕이 되어 이십 구년 동안 왕으로 다스시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정직하게 행한 것이 있지만 나중에 자기 마음대로 하였다는 말입니다. 아마샤의 아들 웃시야도 처음에는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나중에 타락합니다.

 

오늘은 아마샤입니다. 아마샤가 여호와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3~4절입니다. “3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4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자기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죽였지만 그들의 자녀는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세 율법을 따라 행한 것이기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아마샤는 자기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잘 압니다. 왕이 된 나이가 25세이니 모든 상황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를 죽인 자를 죽이되 그 아들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복수를 하면 항상 과도한 복수를 합니다. 그래서 율법에서 눈에는 눈으로라는 율법도 과도한 복수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신명기 24:16절입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이 말씀의 적용과 해석을 예레미야서에서 봅니다.

 

예레미야 31:27~30절입니다.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멸망을 목격한 선지자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되고 성전마저 파되고도 약탈이 되는 과정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하는 말이 이것은 자기들의 죄가 아니라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이런 벌을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에스겔서 18장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자기 조상들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속담을 만들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렇게 무너지고 새롭게 새워지는 것을 새 언약으로 말씀합니다. 새 언약이 체결되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오기에 자기 죄를 압니다.

 

본문 5~12절입니다. 봉독아마샤가 세일을 공격하려고 삼십만 명의 군인을 준비하고 은 백 달란트로 북 이스라엘의 용사 십만 명을 용병으로 고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듣고 북 이스라엘의 용병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이미 준 은 백 달란트를 받지 못하는 손해를 이야기하지 하나님께서 이보다 많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하자 그 말을 듣고 나가서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용병들이 돌아가면서 유다의 성읍들을 약탈하고 삼천 명이나 죽이고 물건을 노략해 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아마샤가 북 이스라엘을 공격 하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실패의 이유는 바로 이어지는 말씀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때는 에돔의 승리를 가져왔지만 듣지 않을 때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14~16절입니다. “봉독 에돔을 공격하여 이긴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세일의 우상을 들고 온 것입니다. 자기에게 패배한 나라의 신상을 들고 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 것입니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세일의 신은 멋진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마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사람이 책망을 하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때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선지자가 왕에게 말하기를 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니 여호와께서 버리시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알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승리를 주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것이 버림을 받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좋은 대로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것은 받아들이지만 나에게 좋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것도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반드시 징계를 통하여 깨우쳐 주십니다.

 

17~20절입니다. “17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18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9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적절한 비유의 말로 북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아마샤에게 말하지만 아마샤가 듣지 않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샤가 여호와께 구한 것이 아니라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기에 그 대적이 손에 넘기시기 위하여 아마샤가 듣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번 여호와의 말씀이 주어지지만 그 말씀을 계속하여 듣지 않는 것은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그 결과 북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21~26절입니다. “봉독 아마샤가 북 이스라엘 요아스에게 패배합니다. 요아스가 아마샤를 사로잡아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사백 규빗이나 헐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전 안에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사람들을 볼로 잡아서 사마리아로 돌아갑니다.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는 십 오년 간 생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생존 기간동안 얼마나 수치스러운 삶이었는지를 이 단락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27~28절입니다. “27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8 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린 것은 에돔에서 승리하고서 그 에돔의 신을 섬긴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미련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떠한 형상도 금지하신 것입니다. 오직 말씀으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에돔을 정복하고 보니 그곳에는 보이는 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을 섬기고부터 이스라엘게 패배하고 예루살렘에서 반역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라기스도 도망갔는데 반역한 무리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그곳에서 죽입니다. 그런데 그 시체를 말에 실어 와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합니다. 열왕기를 볼 때에도 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은 죽여서라도 언약 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에스겔 18:1~4절입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은 신명기의 말씀을 따라 아버지의 죄를 아들에게는 묻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에서도 이 부분을 보았습니다만 에스겔은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이 상당히 깁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 자기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이렇게 잡혀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죄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자가 주의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끊임없이 남의 탓을 하게 됩니다.

 

에스겔 18:30~32절입니다. “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5절부터 29절까지 긴 논증을 통하여 스스로 돌이키라고 하시지만 스스로 돌이킬 능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음을 나라가 망한 것으로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 있어도 돌이킬 줄 모르고 조상 탓과 하나님의 탓만 합니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거나 순종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일하심입니다.

 

에스겔 36:16~23절입니다.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고국 땅에 거주할 때에 그들의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행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 위에 쏟아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여러 나라에 헤쳤더니 20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니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아끼시고 거룩하게 여기심으로 자기 이름을 더럽힌 자를 구원하여 내십니다. 이렇게 구원받아 나올 때에 비로소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을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까?

 

에스겔 36:24~31절입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1)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30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31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은 아마샤가 이스라엘에 패배하고 반역이 일어나서 라기스로 도망갔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한 후에 다시 유다의 왕들의 조상들의 묘에 묻히는 것이나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돌아오는 과정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망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리에서도 자기 들이 죄를 인정하지 않고 조상들이 죄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구원받아 돌아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새 언약입니다. 그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시고 맑은 물로 씻어서 돌이켜 주시면 그제야 자신들의 악한 길과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죄를 알아 회개하여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고 나니 비로소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고서 알게 되는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이 몽학선생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율법으로 자기를 치장하게 되면 예수님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율법에 의하여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알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새 언약으로 인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에서 새 언약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마샤처럼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고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처럼 선지자를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임 당한 분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살려주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하여 구원이 일어나는 자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죽인 자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이 복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