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5:8~21   유다 멸망의 의미(2) 2017. 3. 12

 

지난주에 본 내용은 유다 예루살렘성이 바벨론에 의하여 18개월 포위되어 있는 동안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예레미야 애가를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멸망의 애통 속에서도 예레미야 선지자는 소망을 말하였습니다. 그 소망은 여호와께서 인자와 자비가 무궁하심으로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고통과 환난의 때에 그 입을 땅의 티끌에 대라고 합니다. 그러면 혹시 소망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난 주 오전의 말씀을 통하여서도 보았습니다만 인간은 끊임없이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근원적인 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낮추어져야 오직 주의 긍휼과 자비만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본 사건이 일어난 후 약 한 달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주에 본 내용은 성이 함락이 되고 도망가던 왕이 사로잡혀 눈이 뽑히고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귀인의 집이 불살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을 초토화 시켜버립니다.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모든 귀인의 집이 불살라지고 성전에 있는 모든 귀중한 것들을 다 약탈해 갑니다.

 

본문 8~17절입니다.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11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12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3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 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4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15 시위대장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으로 만든 것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나 모두 가져갔으며 16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17 그 한 기둥은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 머리가 있어 높이가 세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일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가나안 땅에 심으셨는데 이렇게 멸망을 하는 것을 보시고도 속수무책으로 계시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계속하여 희망을 말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쳐들어왔습니다. 포위하고 있지만 성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너집니다.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자 2년 만에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70년이 되어야 돌아온다고 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바벨론이 평안하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7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살아남아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의 주민이라면 누구 말이 좋게 들리겠습니까? 당연히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핍박을 받습니다.

 

이러한 유다의 멸망을 통하여 하나님은 무엇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지난주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이 이렇게 멸망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함을 언약의 저주가 담겨있는 신명기 28장과 그 일의 성취라는 차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망하고 낮추어짐으로 오직 주의 긍휼과 자비만 의지하게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유다가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났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본문 18~21절입니다. “18 시위대장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19 또 성 중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한 사람과 또 성 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백성을 징집하는 장관의 서기관 한 사람과 성 중에서 만난 바 백성 육십 명이라 20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사로잡아 가지고 리블라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1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대제사장과 부제사장과 성중의 중요하다는 사람들을 다 사로잡아 갑니다. 이들을 사로잡아 바벨론 왕이 있는 하맛 땅 리블라에 끌고 갑니다. 바벨론 왕이 이들을 다 쳐 죽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위대장은 별 볼일 없는 비천한 사람만 예루살렘에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남은 자 일까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남은 자 일까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이 남은 자가 됩니다. 이들이 멸망을 당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어떤지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멸망한 유다에 대하여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 곧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떠났다고 합니다. 땅이 백성을 토하여 낸다는 말씀이 율법에 있습니다.

 

레위기 18:24~30절입니다. “24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26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나 내 규례와 내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라도 행하지 말라 27 너희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29 이 가증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30 그러므로 너희는 내 명령을 지키고 너희가 들어가기 전에 행하던 가증한 풍속을 하나라도 따름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쫓아내시는 이유는 그들이 온갖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인하여 땅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우상숭배란 자기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까지 드리는 것이며, 음행들은 근친상간, 동성애, 수간 등의 음행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행하면 너희도 그 땅에서 쫓겨 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죄악이 관영하여 쫓겨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죄악이 관영함으로 쫓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더럽힘으로 쫓겨나는 것은 가나안 원주민이나 이스라엘이나 동일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에서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가나안 원주민은 땅을 더럽힘으로 땅에서 토하여지는 것으로 끝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쫓겨남을 통하여 땅이 안식을 하게 됩니다. 그런 안식의 과정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언약 안의 백성과 언약 밖의 백성의 차이점입니다. 자신들이 언약의 땅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자기 언약의 성실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한 약속들이 그 백성에게 담겨지는 것이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레위기 25:1~7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3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4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5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6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7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안식년에 대한 규례입니다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 안식년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습니다.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열심히 지켰습니다. 그런데 6년 농사지은 땅을 7년째 통째로 안식하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일 년 동안 소출이 얼마입니까! 그러니 쉴 수가 없습니다. 현재 유대인들은 이런 율법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안식년이 되기 전에 일 년 동안 경작권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작비용을 제외한 수입은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한 규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희년입니다.

 

이어지는 8~12절입니다.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 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1)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도 지키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희년을 지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신다고 하셨는데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레위기 25:20~22절입니다. “20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21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 22 너희가 여덟째 해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소출을 먹을 것이며 아홉째 해에 그 땅에 소출이 들어오기까지 너희는 묵은 것을 먹으리라이런 말씀을 믿지 못하였기에 안식년도 희년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역대하 36:21절입니다.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11~20절까지는 열왕기하의 내용과 예레미야의 내용들을 요약하여 유다의 멸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온갖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땅이 안식년을 누리듯이 70년 동안 안식하게 하십니다. 그동안 지키지 못한 안식년을 한꺼번에 지키게 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희생과 그 수고의 결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약속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살리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살리겠느냐는 마음으로 자기를 위하여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언약 밖의 백성들은 이렇게 평생을 물을 모아둘 수 없는 터진 웅덩이에 물을 붓는 식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 백성들은 그 터진 웅덩이와 밑 빠진 독을 주님께서 완전히 부수어 버립니다. 그 어떠한 것도 신뢰할 수 없도록 부수어 버립니다. 그것이 70년입니다. 완전하게 무너뜨림으로 이제 더 이상 다른 것을 의지할 수가 없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하게 되는 것이 야곱의 생애이며,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살아가는 생애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질 그날 되어도 주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그 반석 위에 서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