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1:5~12:16 삼 년 동안   2017. 8. 20

 

16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17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이스라엘이 르호보암 왕 때에 남북으로 나누어진 것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 시대에 아히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과정은 백성들이 애굽에 망명가 있던 여로보암을 돌아오게 하여 르호보암 왕에게 멍에를 가볍게 하여 달라는 요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젊은 참모들의 말을 들어 멍에를 가볍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자 나라가 나누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상태로 르호보암이 남 유다 땅에 방비하는 성읍들을 건축합니다.

 

11:5~12절입니다. “5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유다 땅에 방비하는 성읍들을 건축하였으니 6 곧 베들레헴과 에담과 드고아와 7 벧술과 소고와 아둘람과 8 가드와 마레사와 십과 9 아도라임과 라기스와 아세가와 10 소라와 아얄론과 헤브론이니 다 유다와 베냐민 땅에 있어 견고한 성읍들이라 11 르호보암이 그 방비하는 성읍들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지휘관들을 그 가운데에 두고 양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저축하고 12 모든 성읍에 방패와 창을 두어 매우 강하게 하니라 유다와 베냐민이 르호보암에게 속하였더라

 

르호보암이 남북으로 분리된 후에 유다와 베냐민 지역에 방비하기 위한 견고한 성읍을 건설합니다. 그 성읍들에 지휘관들을 두고 양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저축하여 둡니다. 이러한 성읍들의 위치가 어디에 세워졌을까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졌으니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대치되는 곳에 성읍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이 성읍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보면 예루살렘의 남서쪽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읍들의 건설은 북 이스라엘을 대비하여 성읍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애굽을 대비한 성읍들입니다. 이 당시에 이미 애굽의 위협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나중에 보겠습니다만 결국 애굽이 공격을 합니다.

 

11:13~15절입니다. “13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14 레위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을들과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니 이는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그들을 해임하여 여호와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15 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친히 제사장들을 세움이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각 지파별로 흩어져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거주할 성읍이 전국에 48개의 성읍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이 단과 벧엘에 신전을 만들고 금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기게 합니다. 제사장도 레위인이 아닌 사람을 세우고 절기도 비슷하게 만들어 백성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까지 세운 것입니다. 이러한 죄가 열왕기상을 볼 때에 여로보암의 죄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들은 레위지파만이 아니라 백성 중에서도 북 이스라엘을 떠나 남 유다로 온 것입니다.

 

16~17절입니다. “16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17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들이 남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온 것은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하려고 온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북 이스라엘의 잘못된 신전의 제사를 알기에 남 유다의 사람들도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함을 강성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무리가 삼 년 동안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으로 두 가지 적용을 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나라도 남북으로 나누어졌을 때에 북한의 공산 정권을 수립을 피하여 남으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인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그 결과로 남한에 기독교가 많이 전해지고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었다는 해석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이 땅의 기독교의 형태를 보면 결코 성경적인 기독교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합동교단에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개신교를 좋지 않게 본다는 여론이 75퍼센트였습니다. 이것이 복음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세상보다 더 세속적 이어서 욕을 얻어먹고 있기에 그렇게 보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교회에 적용을 해 봅시다. 제가 부임한지 만 18년이 지났습니다. 12년 동안은 그야 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한 두 사람씩 왔습니다. 그런데 약 5~6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왜 이렇게 오셨습니까?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 유다에 오는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기존의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동안 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복음에 대하여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약간은 그런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삼 년 동안만 강성하여 졌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갈까요?

 

18~23절입니다. “18 르호보암이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삼았으니 마할랏은 이새의 아들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의 소생이라 19 그가 아들들 곧 여우스와 스마랴와 사함을 낳았으며 20 그 후에 압살롬의 딸 마아가에게 장가들었더니 그가 아비야와 앗대와 시사와 슬로밋을 낳았더라 21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여 22 르호보암은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세웠으니 이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로 삼아 왕으로 세우고자 함이었더라 23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

 

르호보암의 아내는 18명이고 첩은 60명입니다. 아들은 28명이고 딸은 60명입니다. 그 중에 아비야를 후계자로 세우고 다른 형제들은 유다와 베냐민 온 땅 견고한 성읍에 흩어져서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왕자들의 난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강성하여 지자 르호보암이 여호와를 버립니다.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로 유입되었을 때에 우리도 여호와를 잘 섬기자고 하였지만 그것은 삼년 동안이고 그 후로 강성하여 짐으로 여호와를 버리는 것입니다.

 

12:1~4절입니다. “1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2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 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 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3 그에게 병거가 천이백 대요 마병이 육만 명이며 애굽에서 그와 함께 온 백성 곧 리비아와 숙과 구스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더라 4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빼앗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나라가 견고하고 강하여지니 여호와를 배반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그 힘을 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왕 시삭이 쳐들어옵니다. 르호보암이 아무리 강하여도 애굽의 왕이 다른 나라의 용병들과 함께 오니 상대가 될 수가 없습니다. 병거가 천 이백 대. 마병이 6만에, 애굽 군대만이 아니라 리비아와 숙과 구스까지 용병을 모아서 왔으니 그동안 견고하게 쌓았던 성읍들도 애굽의 시삭 왕이 다 빼앗고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5~8절입니다. “5 그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의 일로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노라 하셨다 한지라 6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7 여호와께서 그들이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들이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 8 그러나 그들이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셨더라

 

애굽의 침략으로 인하여 유다 방백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선지자 스마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가 나를 버림으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서 이스라벨의 방백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여호와는 의로우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왕들은 이런 선지자를 핍박합니다만 선지자의 책망에 회개를 하자 여호와께서 저희를 조금 구원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리라고 합니다.

 

9~12절입니다. “9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빼앗은지라 10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에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궁문을 지키는 경호 책임자들의 손에 맡기매 11 왕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갈 때마다 경호하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경호실로 도로 가져갔더라 12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 유다에 선한 일도 있으므로 여호와께서 노를 돌이키사 다 멸하지 아니하셨더라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과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빼앗아 가 버립니다. 르호보암이 여호와를 버리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라가 견고하게 되자 여호와를 버린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고 배부르게 되면 여호와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먹고 배부르게 되면 여호와를 배반한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호와께서 징계하심으로 과연 누구를 섬기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알게 하십니다.

 

13~16절입니다. “13 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여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예루살렘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여 그의 이름을 두신 성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여인이더라 14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15 르호보암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16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비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르호보암이 이런 연단을 받았지만 14절을 보면 르호보암은 일평생 여호와를 향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않았습니다. 늘 흔들리는 갈대처럼 그렇게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르호보암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그가 선지자의 책망을 들을 때에 스스로 겸비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선지자의 책망을 받아들임으로 애굽 왕 시삭의 손에서 진멸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역대기 기자의 중요한 관점입니다. 나라가 망하였지만 그러나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은 그 망한 자리에서 마음이 겸비하여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낮추심으로 주를 의지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로마서 12:14~16절입니다.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여 졌을 때에 여호와를 버립니다. 그러므로 시삭 왕을 보내어 환난을 당하게 합니다. 이런 환난은 여호와를 버림으로 오는 것이지만 그 환난을 인하여 마음이 낮추어지고 주께로 돌이키게 된다면 이것이 복입니다. 바울시대에 박해를 당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박해를 당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오늘 이 시대도 바르게 예수님을 믿으면 박해를 당합니다. 그럴 때에 그런 자들을 축복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박해를 통하여 오히려 주와 가까이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라면 함께 웃고 함께 울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놓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언제든지 높아지려고 하는 본성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런 상태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환난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낮추어주시는데 그렇게 낮추어져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갈까요? 갈대처럼 늘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버림으로 주도 우리를 버리신다면 우리는 아무른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심은 그의 성실하심 때문입니다.

 

시편 119:75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여지나 여호와를 버립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애굽 왕 시삭을 보내어 괴롭히십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성실하심입니다. 그 언약에 성실하시기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괴롭히심으로 주께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1~13절입니다.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하는데도 고난을 받고 죄인처럼 매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라고 합니다. 주와 함께 죽은 사람이라면 참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참으면 함께 왕 노릇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만약 이 말씀이 율법적으로 적용이 된다면 우리는 다 버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미쁨이 없을 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기에 자기를 부인하실 수가 없습니다. 이 언약의 신실함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