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1:1~22:1 다윗의 인구 조사 2017. 5. 14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다윗이 적들로부터 병거 천대를 노획하였는데 그 중에 병거 백대의 말만 남기도 나머지 말들의 발 힘줄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한 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어떠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사람의 수나 말과 병거의 수로 싸우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말의 발 힘줄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항상 여호와의 전쟁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살해한 것은 사방의 적들을 거의 평정한 시기였습니다. 이럴 때에 신하들은 전쟁터에 났는데 자신은 왕궁에 머물러 있다가 밧세바를 범합니다. 이 순간은 여호와의 용사가 아니라 이방나라의 왕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방나라의 왕들이 하는 행태를 따라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여호와의 용사가 되어 여호와의 전쟁을 하는 것은 다윗의 능력이 아닌 전적인 은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합니다. 사무엘하 24:1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치시기 위하여 다윗을 격동시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말씀이 맞는 것입니까?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욥기에도 하나님의 천상회의에 사탄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시자 사탄이 욥을 참소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스가랴서는 사탄이 대제사장의 옷이 더럽다고 참소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라고 합니다. 사탄은 이처럼 참소하고 대적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탄도 여호와의 허락 하에 움직이는 것이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는 충동은 이미 다윗 마음 안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셔서 사탄의 활동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신 것입니까?

 

다윗 개인으로 봐도 됩니다. 광야에서 쫓겨 다닐 때에는 여호와만 의지하고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적들을 거의 다 평정하게 되자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충동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베드로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고 베드로가 복을 받은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때부터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말리고 나섭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조금 전에 바른 신앙고백을 하였는데도 갑자기 사탄이라는 책망을 듣습니다. 이러한 책망의 이유는 베드로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인데 이런 사람의 생각이 바로 사탄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것을 말리고 나선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바로 사탄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사람의 생각이며 사탄의 일이듯이 다윗이 인구 조사하는 이 마음이 사람의 일이며 사탄의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수나 말과 병거로 전쟁하시는 것이 아님을 광야에 쫓겨 다닐 때에는 알았는데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사방의 적들을 다 평정하고 나니 이제는 자기의 힘이 보이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을 봅니다.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 전체의 인구를 조사하여 자기에게 보고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늘 충성하던 요압은 왕의 명령이 잘못된 것을 압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 많게 하실 것인데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 하게 하느냐고 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해보겠다는 것을 요압이 범죄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본 대로 자기 힘을 과시하며 그 힘을 의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백성의 수를 헤아려보려고 한 것입니다. 요압이 거절하여도 왕이 명령하니 하는 수 없이 레위와 베냐민은 빼고 인구조사를 하여 보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구를 조사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못하고 자기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한 것이 범죄가 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의 수 그 자체로 힘을 삼거나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0:11~16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생명의 속전을 내게 합니다. 이 속전이 성전 세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명의 속전은 반 세겔인데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합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값이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생명을 대속하여야 합니까? 12절의 속전이나 15절의 대속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덮어준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속전이며 대속입니다. 그러면 생명 그자체로 선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이 대속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생명을 대속하는 기능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생명의 속전으로 성막을 봉사하는 일에 사용하게 함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누구나 생명이 속함을 입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 수를 헤아린 내용이 민수기(民數記)입니다. 민수기에서 두 번 백성수를 헤아립니다. 처음은 출애굽한 후의 성인 남자를 헤아리고(603,500. 1:46) 두 번째는 광야 40년을 지난 후에 수를 헤아립니다(601,730. 26:51). 첫 번째 계수된 자 중에 두 번째 계수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뿐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12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10명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이 다른 지휘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이들을 진멸하려고 하시자 모세가 중보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지만 여호와의 언약을 믿지 못한 자들을 광야에서 죽이시는 기간이 40년입니다(14).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를 헤아리는 의미는 첫째로 생명의 속함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생명 그 자체가 존귀하다고 세상은 말하지만 성경은 생명이 속함을 입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의 인구를 헤아림도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아 나온 자들의 숫자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 들어가라고 하시자 가나안 사람들의 성벽과 군대를 보고서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린 양의 피로 애굽의 재앙에서 살아남아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왔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 것은 어린 양의 피의 능력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의 숫자에 속한 자들 중에 여호수아 갈렙외에 두 번째 숫자에 들어간 자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어떤 자들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가 언약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2:20~22절입니다. “20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21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우상을 의지한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바위틈에 들어갑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시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 위엄과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과 오늘 오전에도 이러한 무너짐의 이야기들이 계속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무엇을 믿고 의지하지는 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있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수에 칠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사람의 수를 힘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지지하는 수가 많으면 대통령이 됩니다. 교회도 사람의 수가 많아야 큰 교회라고 합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라면 완전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도 세상의 숫자 놀음에 빠져서 크고 작음을 사람의 수와 재정의 규모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이 바로 다윗이 백성의 수를 헤아린 정신이기에 여호와께 범죄 한 것입니다. 수에 칠 가치조차 없는 자들의 수를 헤아려 자기의 힘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본문 7~13절입니다. “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인구조사 한 일을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고 이스라엘을 치시니 다윗이 그제야 자신이 큰 죄를 범하였다고 하면서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자신이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큰 죄를 범하고 미련하게 행한 이 일을 오늘날 교회는 성공이라고 합니다.

 

9~13절입니다. “9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11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12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 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윗의 선지자라고하면 나단이 가장 많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갓이 등장합니다. 갓은 다윗이 광야시절에 한번 여호와의 뜻을 전한 선지자입니다(삼상22:5).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 나단이 선지자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갓이 등장한 것은 다윗에게 광야시절을 회상하여 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갓을 통하여 세 가지의 재앙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니 다윗이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다는 신앙적인 표현을 하지만 결국 자신이 적군에게 쫓겨 다닐 일을 택하지 않습니다.

 

14~17절입니다. “14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 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17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다윗이 인구 조사한 죄로 백성의 7만 명이 전염병에 죽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시고 멸하는 천사에게 족하다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뉘우치실 일도 행하시는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시지 않으셨다면 삼일 만에 전염병으로 전 이스라엘을 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천지 사이에 서서 칼을 빼들고 있는데 예루살렘을 향하여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되고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자기이기에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자신이기에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이제야 다윗이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18~19절입니다. “18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19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기를 다윗에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다윗이 말씀대로 올라갑니다.

 

20~25절입니다. “20 그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21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22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23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24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25 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다윗이 오르난에게 타작마당의 갚을 주고 사서 여호와께서 번제를 드립니다.

 

26~22:1절입니다. “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28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29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30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하더라 1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임하여 번제를 태우십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하시자 천사가 칼을 칼집에 꽂았습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그 결과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그 재앙을 멈추게 되는 것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것입니다. 이러한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다윗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는 여호와의 성전이며 이스라엘의 번제단 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성전이 세워집니다.

 

역대하 3:1절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오르난의 타작마당을 다윗이 구입하여 둔 곳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이 곳이 모리아 산입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산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에 미리 준비된 숫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산 이름이 여호와 이레라고 아브라함이 부릅니다.

 

창세기 22:13~14절입니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1)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아브라함을 통하여 여호와 이레 곧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하신 그 준비가 다윗에게 와서는 성전의 장소가 됩니다. 다윗의 인구조사가 비록 죄를 범한 것이 되지만 결국은 이러한 성전의 터를 찾게 하심으로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속죄가 되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전도 아브라함의 언약과 다윗의 언약을 다 담아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이러한 사건을 통하여 무엇을 보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2:19~22절입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를 이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치려고 하였던 곳, 다윗이 오르난에게 구입하여 번제를 드린 곳, 그 성전의 터에 자리 잡고 있는 성전이 도적의 소굴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하여 보여준 대속의 성전기능을 종교꾼들이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런 성전을 무너뜨리고 삼일 만에 새로 지으시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성전이 되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다윗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 구역은 몇 명이 모였는지 우리 교회는 몇 명이 모였는지 계산해 봅니다. 우리는 주보에 그런 숫자를 기록하지 않습니다만 숫자를 기록하거나 안하거나 간에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사람의 수로 힘을 가늠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보면 사람의 수라는 것은 수에 칠 가치고 없다고 합니다. 인생은 속임수입니다. 그래서 저울에 달아보면 입김보다 가벼운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62:9). 인생이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습니다. 오직 복음만 영원합니다(벧전1:24,25). 이런 인생이 수에 헤아릴 가치가 있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뿐입니다(벧전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