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바로듣기]  [음성설교 다운받기]

열왕기하 10:18~36 여로보암의 죄 2016. 7. 17

 

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29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지난주에 이세벨의 최후에 이은 아합과 이세벨에 속한 사람들이 예후에 의하여 진멸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 일에 여호나답이 예후와 함께 한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지난 한 주간 우리는 여호나답의 후손처럼 이세벨의 영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포도주를 금하고, 집을 짓지 않고,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사셨습니까?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서 떠나지 못하는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텐데 이런 말씀을 통하여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아합과 이세벨의 집안을 진멸하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다 죽인 예후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목을 다 말하자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예후입니다.

 

본문 18~24절입니다. 18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20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21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22 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23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24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예후가 집권을 하고서 자신은 아합보다 더 바알을 섬기겠다고 하면서 전국의 바알선지자를 다 모읍니다. 오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고 하여 전국에서 다 모아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게 하고 예복을 입히게 합니다. 그리고 예후와 여호나답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만 남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에 있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섬기는데도 예후가 바알을 더 많이 섬기겠다고 하여 그 속에 머뭇거리며 남아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바알 선지자들이 알아보고 나가게 합니다. 너희는 평소에 우리 편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제 예후의 말대로 바알의 세상이 왔다고 좇아낼 것입니다. 이렇게 밀려나온 자라면 자신의 어떤 결단과 용기를 자랑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런 자들이지 않습니까? 바알을 섬기기 위하여 그렇게 애를 썼는데 오히려 풍요와 다산의 선지자들에게 밀려나온 자들이지 않습니까!

 

25~29절입니다. “25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26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29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만약 떠밀려 나오지 않고 그 신당 안에 남아있었다면 한 사람도 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놓치면 자신의 생명으로 대신하라고 하였기에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다 진멸하여 버립니다. 그리고 바알의 신당이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불사르고 바알을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 바알을 멸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9절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러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상 숭배자를 진멸한 예후이지만 여러보암의 죄에서 떠날 수 없었던 예후의 모습을 봅니다.


30~36절입니다. “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31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32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33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 34 예후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5 예후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6 예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스물여덟 해이더라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잘 행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의 집에 다 행하였기에 네 자손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에 이스라엘의 땅을 여호와께서 잘라 내기 시작합니다. 아람 왕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영토를 공격하되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을 공격합니다. 예후는 28년을 통치하고 죽습니다.

 

그런데 예후에 대한 평가가 북 이스라엘 왕들 중에 유일하게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 중에 유일합니다. 9번의 왕조가 바뀌고 19명의 왕들이 등장합니다. 반역과 반역이 이어집니다. 그런 왕들의 역사 속에서 예후 홀로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예후조차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이스라엘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바알과 아세라도 쉽게 용납이 되는 북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인지 봅니다.

 

열왕기상 12:25~32절입니다.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가 됩니다. 자신의 왕위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대체신앙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가 되어 온통 북 이스라엘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로보암의 죄가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요즈음 목장교회라는 프로그램을 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니 우리식으로 말하면 구역장인데 특별한 교육과정을 마쳐야 합니다. 그러면 목장이 되는데 목장을 지역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목자를 선택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기 있는 구역장에게는 많이 모일 것이고 인기가 없는 구역장에게는 많이 모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목장 안에 있던 사람이 다른 목장으로 옮기면 목장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여로보암의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붙들어 두기 위하여 목장은 마음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장사하는 사람에게 없는 마음이겠습니까?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에게 없겠습니까? 목사에게 없는 마음이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있는 이런 마음이 바로 여로보암의 마음이며 여로보암의 죄가 됩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들이 다 이길로 갑니다.

 

열왕기상 15:25~26절입니다. 25 유다의 아사 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26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그 아버지의 길 곧 여로보암의 길로 간 것입니다.

 

열왕기상 15:33~34절입니다. 28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30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 31 나답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2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33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사 년 동안 다스리니라 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아히야 선지자의 말대로 여로보암의 집을 심판하는 자가 바아사입니다. 바아사가 나답을 반역하여 여로보암 집안의 생명 있는 자를 다 죽였지만 바아사 자신도 여로보암의 길로 간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이 얼마나 우리의 본성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북 이스라엘의 왕들을 보면 전부 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정직한 왕이라고 칭찬을 들은 예후조차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1~8절입니다.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의 근원입니다. 백성들이 원하는 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며 여로보암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만족과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어 내라고 합니다. 이것이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며 우상숭배가 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 너희 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신이란 자신들을 위하여 주는 신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 수도 있고 섬길 수도 있는 신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가 됩니다.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신전을 만들고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여로보암의 죄가 됩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우상이란 어떤 형상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탐심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형상물을 만들지 않더라도 나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과 활동들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말은 성경의 하나님을 말하고 성경의 예수님을 말하지만 그 내용이 나를 위한 신이며 우리를 위한 신이라면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까? 우리는 여로보암의 죄에 빠지면 안 됩니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만 한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후조차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순종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영생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순종이라는 단어를 찾아내면서 순종하지 않고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순종을 하려면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성전에 와서 자신의 필요나 문제 해결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순종을 강조합니다. 믿음과 순종을 분리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순종하여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그 순종은 결국 교회당에 나와서 목사가 전하는 그 말씀에 잘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성경구절을 계속 읽게 합니다. 앞뒤 다 자르고 그렇게 전하면 사람들은 아주 성경적인 설교로 생각합니다.

 

고린도후서 3:6절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말은 복음이라고 해도 그 내용을 율법조문으로 전하면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됩니다.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할 때에 살리는 것은 새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옛 언약이라는 율법을 통하여 왜 인간은 스스로 의에 이를 수가 없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율법 조문의 역할입니다. 우상숭배자를 엄청나게 죽인 예후 본인도 우상숭배에서 못 벗어납니다.

 

갈라디아서 3:8~22절입니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만약에 우리가 율법의 조문에 순종하여 의에 이르고자 한다면 우리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의란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 행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브라함 언약이며 모세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의 죄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자가 있으면 구약의 역할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 아래 갇힌 모습입니다. 죄가 왕노릇 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구약을 통하여 다 보여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11:32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갈라디아서나 로마서의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를 아는 자들은 자신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하여 어떤 인간도 스스로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서 구원을 얻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북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남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 유대에서는 바른 왕의 기준은 다윗입니다. 그러므로 남북 왕조를 통하여 잘하면 다윗처럼 말하고 잘못하면 여로보암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도 간음하고 살인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를 알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자신을 위하여 가짜 하나님을 만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2~13절입니다.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면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참으면 함께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까?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오래참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고 있습니까? 예후가 그렇게 열심히 우상 숭배자들을 진멸하였지만 자기 자신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만 있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아주 작은 이익 앞에서도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작게 자존심 상하는 일에도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무슨 미쁨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미쁨이란 신실하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신실함이 없지만 주님은 항상 미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자신의 미쁘심으로 이루어내십니다.

 

우리가 한 평생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우리가 여러보암이 갔던 그 우상숭배의 길에서 돌이켜 주십니다. 나의 우상이라고 여긴 것들을 말씀의 검으로 찍어 내리십니다. 내가 꿈에서도 품고 있는 바알과 아세라만 곧 풍요와 다산의 신만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섬겨온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부수어 내십니다. 말로는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이 금송아지라는 말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우리를 불러내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십자가입니다.

 

요한복음 12:32절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십자가에 들리신 분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 올리시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신실한 일하심만이 여로보암의 죄에 빠진 우리를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 아니기에 은혜로 받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 선물의 능력을 주의 백성이라면 또 한 주간 맛보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당황하지 마시고, 율법주의로 돌아가지 마시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