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9:1~36 하나님께서 예비하심 2017. 12. 3

 

34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35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36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우리는 히스기야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았기에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기도하여 생명을 15년 더 연장 받은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식으로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으로 성경을 본다는 것 자체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모르고 우리가 원하는 소원을 성경에 투사하여 나의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지식 없는 소원이며 우리의 탐심이 됩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25세 입니다. 29년을 왕으로 다스렸으니 54세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연장을 위하여 기도한 나이가 39세입니다. 15년 연장 받고 행한 일로 인하여 바벨론 사절단에 왕궁의 보물과 무기고를 보여줌으로 이것들이 바벨론에 빼앗기게 되고, 생명 연장하여 낳은 아들이 므낫세이며 이 므낫세의 악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우리 좋은 식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보셔야 합니다.

 

2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지난주에 본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하스 왕 때에 임마누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를 통하여 스알야야숩된 자들에게 임마누엘 하신 것입니다. 아하스 왕 때에도 노략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노략 중에도 남은 자들 위에 임마누엘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가 다윗의 행실과 같이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것은 임마누엘의 결과물입니다. 그 증거가 36절입니다. 성전을 수리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 다 임마누엘로 인하여 하나님의 준비하심입니다.

 

3~9절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등극한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모으고 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왕이 되어 가장 먼저 행한 일이 성소의 청결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레위인들이 먼저 성결하게 하여야 하고 그 다음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들을 성소에서 없애라고 합니다. 아하스 왕 때에 성소에 온갖 우상들이 가득 찼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그 얼굴을 돌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성전의 문을 닫고 등불을 끄고 분향하지 않고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유다와 예루살렘이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고 조상들이 칼에 엎드려지고 우리의 자녀와 아내들이 사로잡혀 간 것입니다.

 

10~19절입니다. 10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운다고 합니다.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언약을 새롭게 하는 언약의 갱신입니다. 다윗 시대처럼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을 16일간 청소합니다. 언약의 갱신이란 더러워진 성전을 새롭게 하는 일로 시작을 합니다.

 

20~30절입니다. 성전의 청소가 끝나고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온 이스라엘의 속죄를 위하여 피의 제사를 드립니다. 수소와 숫양과 어린 양들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립니다. 그러면서 다윗 왕과 선견자 갓과 나단이 명령한 대로 각양 악기를 동원하여 여호와의 시로 찬양합니다. 이러한 속죄의 제사를 마치자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다 엎드려 경배합니다. 이때 찬양은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이러한 예배는 즐거움입니다.

 

31~36절입니다. 속죄의 제사가 드려지고 나서 감사의 제물을 드립니다. 감사의 제물은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가져옵니다. 자원하여 가져온 제물이 많아서 제사장의 일손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돕고 제사장 중에 아직 성결하게 하지 못한 자들이 있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일에 제사장들보다 레위인들이 성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속죄제와 감사제가 순서대로 갖추어 졌습니다. 이 일이 갑자기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기에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습니다. 성전 청결과 속죄제와 감사제가 갑자기 이루어졌지만 누가 예비한 것입니까? 히스기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뻐하였습니다.

 

창세기 22:7~8, 13~14절입니다.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1)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너무 잘 아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너무 잘 알지만 우리는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을 아낌없이 바쳤다는 그 아브라함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우리의 것을 바치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원래 없는데서 생긴 자식입니다.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를 바치라고 하신 것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산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준비하십니다.

 

이 산의 이름이 모리아 산이며(22:2)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며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지는 장소입니다(대하3:1). 그러므로 성전에서 희생되는 어린 양은 그림자이며 실체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1:29).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친히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이며 이것이 우리의 기쁨인 것입니다.

 

신명기 1:29~33절입니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전에 12정탐꾼을 먼저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좋지만 우리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자들이 열 명입니다. 그 땅의 사람들은 거인이며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성은 튼튼하고 무기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허락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 명의 말을 듣고 모세를 원망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한 그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죽이십니다. 그리고 이십 세 이하의 백성들이 자라서 4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약속의 주어지는 말씀이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2017년을 지나왔습니다. 한 달이 지나면 역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2018년을 맞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시는데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도 인도하십니다. 물과 양식이 없는 광야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안고 이곳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팔에 안겨가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그들보다 앞서 그 길을 가시고 장막 칠 곳을 찾으시며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길은 이들보다 더 분명한 내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보다 더 분명한 객관적인 증거가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러한 객관적인 말씀들이 우리 안에 살아서 기록되는 것이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나를 주님을 불신하고 의심하여도 그 말씀의 일하심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고 인도하여 가십니다. 주의 팔에 안겨가면서도 믿지 않은 자들처럼 우리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의 영원한 팔에 안겨있으면서도 주님을 믿지 못하기에 두렵고 불안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는 친히 생명의 길이 되신 그 분이 인도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4:4~5절입니다.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이 사람들은 온전하게 구원받은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어린 양의 인도를 받습니다.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는다는 말은 이세벨의 유혹, 바벨론의 음녀, 곧 세상 사랑에 넘어가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계시록의 어린 양은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입니다(5:6, 5:12, 13:8). 성도란 죽임 당한 어린 양의 인도를 받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죽음의 길 같지만 그 길이야 말로 참으로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