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5:1~6:22 성전 완공과 유월절 2018. 3. 18

 

에스라 6:13~15절입니다. “13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신속히 준행하니라 14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15 다리오 왕 제 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에스라 3장은 성전 재건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4장에서는 사마리아와 본토에 살고 있는 토호세력들이 성전 재건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약 15년이나 지체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 재건을 하라고 함으로 다시 재건 공사가 시작되어 마치게 되는 것이 오늘 보는 5장과 6장입니다. 이 내용을 구조적으로 표시한 것을 보겠습니다. 몇 번 인용한 여호와의 날개아래 약속을 땅을 향하여라는 김지찬 교수의 역사서 내용에 있는 것입니다.

 

A 성전건축을 독려하는 학개와 스가랴(5:1~2)

  B 닷드내 총독이 성전 건축 허락에 대해 알아봄(5:3~5)

   C 닷드내 총독이 다리오 왕에게 보낸 서신(5:6~17)

   C' 다리오 왕이 닷드내 총독에게 보낸 답신(6:1~12)

  B' 닷드내 총독이 성전 건축 허락에 동의함(6:13)

A'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으로 성전 완공(6:14~15)

 

이런 구조로 살펴보면 5장과 6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적 구조가 본문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월절에 대한 내용은 이 구조에 어울리지 않기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구조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의 약속을 이루어내시는지를 유의하여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것을 인용하는 것은 전체적인 조감도를 보는 식입니다.

 

본문 5:1~2절을 봅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이미 구약의 선지서 설교를 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면서 책망도 하고 격려도 합니다. 우리가 많이들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집은 이렇게 해 놓고서 너희는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는 말씀이 학개서에 나옵니다. 그러한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자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기초만 놓고 중단된 성전을 다시 건축합니다. 이 일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들과 함께 있어 그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3~6절입니다. 4장의 방해꾼들과 달리 이들은 유브라데 강 건너편의 총독과 관리들이 성전 재건소식을 듣고 시찰을 온 것입니다. 누가 명령하여 성전을 건축하느냐고 묻자 그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건축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돌보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들이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보내어 답장을 기다립니다.

 

7~17절입니다. “봉독 이 모든 일들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목하여 볼 것은 12절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힘이 강하여 유다를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여 온갖 우상을 섬겼기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징계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 왕은 하나님의 징계의 막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본문 6:1~12절입니다. “봉독 다리오 왕이 편지를 받고서 조서를 내립니다. 고레스가 명령한 내용을 찾아보라고 하니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아서 성전 재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고 속히 재개하도록 합니다. 성전 재건을 하고 그들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재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조서를 내린 것은 여러 신들을 섬기는 왕이기에 이런 조서를 내린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성전이 재건되는 일이 이미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된 것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재건의 명령을 변조하면 그의 집에서 들보를 때내고 그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 집은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핵심적인 내용은 12절입니다. 왕들이나 백성이 이 명령을 변조하고 손을 들어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성전을 헐진대 그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이방 왕의 조서 안에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벌하시리라고 합니다.

 

13~18절입니다. 다리오 왕의 조서로 인하여 성전 건축을 끝냅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의 조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4절을 보면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의 권면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하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으로 인하여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까지 여호와의 종이 되어 건축하는 일을 돕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닥사스다가 벌써 언급이 되는 것이 나중에 성벽의 재건까지 여호와의 명령으로 인하여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전이 완공되고 봉헌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루어내신 것임을 아주 분명하게 계시합니다.

 

19~22절입니다.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한 후에 유월절을 지킵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 본문에서 사로잡혔던 자들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19, 20, 21). 이렇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이 포로생활 하다가 돌아왔기에 제 2의 출애굽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제 1의 출애굽은 말 그대로 애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출애굽 하는 가장 큰 정점이 유월절이었습니다. 마지막 재앙에서 장자의 죽음에서 살아남는 길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한 후에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 유월절에 참여하는 자가 사로잡혔다고 돌아오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기 땅에 살던 자들도 유월절에 참여할 수는 있는데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 구별한 자들이 유월절에 참여합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즐거움으로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오게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언약하신 것을 이루어내시기 위하여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이방 나라의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백성들의 마음으로 감동시키시고, 이방 나라의 백성들이 유대인들에게 예물을 주게 합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런데 방해세력이 나타납니다. 방해세력이 나타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시는 기회가 되기고 하고 또 함께 하지 못할 자들을 드러나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이 완공하는 일에 방해세력이 아무리 등장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분명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그러면 성전 건축의 완성과 유월절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내용을 성경전체적인 맥락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자들이 사로잡혔던 자들이 돌아온 것이라고 세 번이나 강조를 합니다. 첫 출애굽도 약 4백년의 종살이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이미 앞에서 두 번이나 살펴보았습니다만 이것도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모든 것들이 실체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림자입니다.

 

골로새서 2:12~15절입니다. “12 너희가 1)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십자가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16~19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구약이 그림자라고 합니다. 율법의 조문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도 다 그림자입니다. 물론 성전도 안식일도 십일조도 다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성도들은 머리를 붙들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림자를 붙들고 있다면 머리를 붙들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서를 통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려면 애굽에 나와서 성막을 건축하는 것과 함께 구약의 성소개념과 에스겔서의 새로운 성전까지 함께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하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5:39).

 

성전을 재건하고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잡히십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유월절에 죽이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명절이 지나고 조용할 때에 죽이려고 하였지만 죽이려는 자들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죽음의 길로 가시는 분이 유월절에 잡히시고 죽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그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세세토록 찬양을 받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입니다.

 

요한계시록 5:12~14절입니다.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죽임 당한 유월절 어린 양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은 모세의 노래 곧 어린 양의 노래를 부릅니다(15:2~3). 이것이 유월절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