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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사사기 4장 2012. 12. 23

 

1~3. 이스라엘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합니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이스라엘을 파십니다. 야빈은 철 병거가 900대 이며 그의 군대장관은 시스라입니다. 이스라엘은 철병거가 한 대도 없는데 이들은 철 병거가 900대가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들을 몰아내지 못하는 변명거리이기도 합니다(삿1:19). 이들의 학대가 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4~11. 이때 랍비돗의 아내 드보라가 사사로 있습니다. 사사의 일은 구원자의 일 만이 아니라 백성을 재판하는 역할을 합니다.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서 여호와의 명이라고 하면서 납달리와 스불론 자손 만명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가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들을 기손 강으로 이끌어 내어 그를 네 손에 넘겨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락이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드보라가 이 말을 듣고 내가 함께 가지만 이번에 가는 길에서 당신이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시스라를 한 여인의 손에 판다고 합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사람들을 가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갑니다.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에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삽니다.

 

12~16. 드보라와 바락이 다볼 산에 모였다는 것을 시스라가 듣고서 일제히 공경격을 하기 위하여 기손 강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일어나 가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앞서 가신다고 하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갑니다. 이미 여호와께서 앞장서서 적을 치십니다. 그러자 시스라의 온 군대가 혼란에 빠지며 철병거들이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스라는 걸어서 도망을 갔습니다. 시스라의 군대가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습니다.

 

17~22. 겐 사람 헤벨과 시스라 사이에 화평이 있었기에 시스라가 헤벨의 장막으로 도망칩니다. 그때 헤벨의 아내 야엘이 시스라는 영접하면서 두려워말고 들어오라고 합니다. 시스라가 물을 달라고 하자 우유를 주면서 이불을 덮어주고 쉬게 합니다. 이때 시스라가 누가 물으면 없다고 해라고 합니다. 시스라는 이처럼 아무 것도 아닌 자입니다. 없는 자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면서 이들을 섬긴 것은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야엘이 장막 말뚝과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박아버립니다.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시스라가 죽어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23~24.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굴복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멸하게 됩니다.

 

우리는 드보라에 대하여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놀랍게도 사사의 목록에 드보라 대신 드보라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나간 쪼다 같은 남자 바락을 사사의 명단에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남자들 모두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 고발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의뢰하여야 하는데 다른 것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적에게 팔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남자의 역할이란 여호와를 남편으로 의지하는 여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남자의 역할을 하려고 나섰습니다. 그 결과 집안에서만 큰 소리 쳤지 적들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럴 때에 여호와께서 집에서 남자들 앞에 꼼짝 하지 못하는 여자들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바락을 사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2:11절입니다. “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1)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 1)칠십인 역본에는, '바락' 베단이 사사 이름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70인 역(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에서는 베단을 ‘바락’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4장을 보면 드보라와 야엘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바락은 거저 여자의 치맛자락 잡고 나갔다가 승리하게 된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바락을 사사의 이름에 올리는 것입니까?

 

민수기 30:1~16절을 봅니다. “봉독” 이스라엘에서 여자는 투표권도 없고, 증인도 못 되고, 수에 치지도 않습니다. 여자는 언제나 남자에게 속하여 있어야합니다. 여자는 서원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서원을 비록 하더라도 그 결정권이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있고 결혼하면 남편에게 있습니다. 이런 여자들인데 사사기 4장에서 드보라와 야엘은 영웅처럼 보이고 남자 바락은 쪼다로 보입니다. 그런데 왜 바락의 이름이 사사에 오릅니까?

 

히브리서 11:32절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11장의 제목을 붙이기를 ‘믿음의 영웅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겠습니다만 사사의 이름이 나오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가 별 볼일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일반인 보다 출신성분이나 능력이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자신의 못남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날 믿음이 있다고 할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들의 능력을 말합니다. 사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란 없는 데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에게서는 없는 것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란 어떤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까? 나는 당신 없이는 한 순간도 못 삽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여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 없이 한 순간도 못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여자가 남자 없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종말의 현상입니다. 교회는 남자나 여자나 상관없이 여자여야 합니다. 교회 자체가 여성명사입니다. 이것은 바락이 드보라의 치맛자락을 잡고 가듯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고가야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존심,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한 그 자존심이 죄이기에 구원이란 이런 자존심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사의 이름에 드보라가 아니라 바락이 올라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