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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5장 2012. 12. 30

 

사사기 5장은 드보라와 바락의 찬송입니다. 병거 900대를 끌고 온 시스라를 물리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떻게 병거가 한 대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 병거 900대를 끌고 온 적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이런 것을 여호와의 붙여주신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야빈 왕의 손에 붙여짐으로 이스라엘이 고역이 심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구원자를 보내셔서 적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백성을 원수의 손에 붙이기도 하시고 원수를 자기 백성의 손에 붙이시기도 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누가 여호와 편에 속하였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1~5.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인도하고 백성들이 헌신하였는데 여호와께 찬송하라고 합니다. 왕들과 통치자들도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으면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합니다. 각자의 공력에 따라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의 지도자나 즐겁게 헌신한 백성들이 찬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홀로 찬송을 받는 것이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헌신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호와께서 찬송을 받으시는가 하면 적을 물리치신 분이 여호와이시고 백성들이 즐겁게 헌신하게 하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나오시는데 세일와 에돔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시스라의 병거들이 기손강으로 모였을 때에(4:13) 여호와께서 큰 비를 내리심으로 그들의 병거가 무용지물이 되게 하신 사건입니다(5:21). 이것은 마치 홍해바다에서 애굽의 군대가 수장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강림하신 시내산이 진동한 것처럼 지금 야빈 왕의 군대를 하나님께서 공격하시는 것이기에 오직 여호와만 찬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6~7. 드보라가 일어나기 전에 삼갈의 날과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다고 합니다. 대로로 다니면 대적들이 약탈을 하거나 아니면 중한 세금을 물렸기에 행인들이 오솔길로 피하여 다닌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마을에 사람들이 그쳤고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숨죽여 살고 있을 때에 드보라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여자는 수에 치지도 않는데 여자가 일어났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새 신들을 택하였기 때문에 적들에게서 꼼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9~12. 이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드보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드보라가 세워지고 백성들이 즐거이 헌신하였기에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이 찬양에는 귀한 자들이나 천한 자들이나 다 여호와의 공의로운 일을 전하고 그의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고 합니다. 드보라는 깨어 노래하고 바락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가게 합니다. 전쟁은 여호와를 찬양함으로 적들을 이기는 것입니다(역대하 20:26).

 

13~18.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한 자들과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구별됩니다. 남은 귀인과 백성들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드보라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습니다. 이 여호와의 전쟁에 즐거이 헌신 한 자들은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므낫세 반지파),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입니다.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은 언급이 없습니다. 이 전쟁이 북쪽지역이기에 북쪽의 지파들만 소집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북쪽이 있으면서 참여하지 않는 지파들이 르우벤, 길르앗, 단, 아셀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핑계거리를 대면서 오지 않았습니다.

 

19~23. 가나안 왕들이 와서 싸웠으나 은들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들이 그들을 쳤다는 것은 천체까지 적들을 치는 일에 동원되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큰 비로 그들을 표류시킨 것입니다. 기손 강물이 갑자기 불어남으로 그들이 밟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를 함께 받는 성읍의 이름이 메로스입니다. 이들은 전쟁터 가까이 있으면서 여호와를 돕지 않았기에 저주를 받습니다.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4~27. 야엘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전쟁에 평소에 평화의 언약을 맺은 시스라를 장막 말둑으로 박아 죽임으로 그의 발 앞에 엎드려져 죽게 되었습니다.

 

28~30. 시스라의 어머니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승리하고 전리품을 가져올 것을 헛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병거가 늦게 오는 것이 불안하였지만 전리품을 많이 챙겨오느라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시녀들도 그렇게 말했고 시스라의 어미도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을 것이며 아름다운 옷을 노략하였기에 그것으로 즐기느라고 늦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헛된 욕망의 결론입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의 꿈들이 늘 이렇게 허무하게 결론이 납니다.

 

31. 여호와의 원수들은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여 달라고 드보라의 찬양이 마무리됩니다. 그 땅이 40년간 평온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에 즐겁게 헌신합니까? 내가 즐겁게 헌신 하는 일이 나를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우리가 헌신하여도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자기가 찬양받을 일이 없다는 하면 헌신할 마음이 있습니까? 헌신을 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가나안의 원주민을 쳐 죽이는 일입니다. 또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자기 안의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여호와의 편에 서는 자와 여호와의 편에 서지 않는 자가 분리가 이렇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아무도 여호와의 편에 서서 즐겁게 헌신 한 자가 없다는 것이 구약의 결론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편에 서서 죽기까지 즐겁게 헌신 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헌신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빌립보서 2:5~8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입니다. 그런데 이 헌신의 마음을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그의 영을 자기 백성에게도 부어주십니다. 그러면 주의 일에 헌신하는 그 자체가 기쁨과 즐거움이 됩니다.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이런 일에 쓰임을 받을 수 있는지 하면서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행5:41). 그런데 자신이 신과 거래하기 위하여 무언가 헌신하였다면 반드시 자기 자랑하게 됩니다(고전4:7). 우리의 헌신은 어떤 헌신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