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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사사기 6:1~24 2013. 1. 6

 

우리는 기드온 그러면 당장 300용사가 생각이 납니다. 기드온은 그 삼백 용사의 지도자인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용사가 아닙니다. 얼마나 겁이 많은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표적을 보고서도 거듭 거듭 하나님의 표적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인물들은 자신의 영웅 됨을 보이는 자들이 아니라 얼마나 나약하며 완악한 죄인인지를 드러내면서 여호와만이 용사임을 보여주는 도구들입니다.

 

6:1~6.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사사로 인하여 구원을 받고 조금만 평안해지면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칠년을 고생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 사람들 때문에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시편 127:1~2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산에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지키지 않으시면 죽도록 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베두인 족속들입니다. 유목민인데 이들이 전쟁을 하고 약탈만 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장막을 치고 짐승 떼들까지 데리고 와서 땅을 차지하고 살아버립니다. 그리고 파종할 때와 추수할 때에 들이닥쳐서 파종도 제대로 못하고 하고 겨우 파종을 하여 수확할 때는 다 빼앗아 가버립니다. 양이나 소나 나귀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들의 수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와서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 인들로 인하여 부르짖습니다.

 

7~10. 부르짖으면 바로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계적으로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중에는 또 범죄 하여 고생하고서 부르짖을 때에 너희가 평소에 의지하는 신들에게 부르짖으라고 합니다(삿10:10~14). 오늘 본문에서는 사사를 세우시기 전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여금 먼저 책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아모리 인들이 사는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모리 사람이 사는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다고 책망을 합니다. 책망 후에 기드온을 세웁니다.

 

11~12.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합니다. 밀이나 보리는 바람이 잘 부는 들판에서 도리깨로 타작을 하고서는 검불을 바람에 날려서 알곡을 가려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붕을 만들어 포도주를 밟아 짜는 그런 움막 같은 곳에서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타작이겠습니까? 겨우 걷어 들인 수확물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참으로 미약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드온을 향하여 여호와의 사자는 큰 용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큰 용사라고 하면 그 사람의 특별한 능력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큰 용사란 자신의 못남이 드러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용사됨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용사가 되심을 나타내는 자들입니다.

 

출애굽기 15:1~3절입니다. “1 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모세도 여호와가 용사임을 찬송합니다. 홍해를 건넌 후에 그 놀라운 일을 이루신 분이 약속의 땅에까지 인도하여 들이셔서 여호와의 처소를 삼으실 것은 여호와가 용사가 되셔서 일하심으로 이루어질 일입니다.

 

12~13. 기드온이 불평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왜 지금 이런 상태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기드온이 모릅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선배들이 다 우상에 물들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을 오히려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이적을 통하여 인도하여 내신 이가 왜 지금은 아무 일도 안하시고 오히려 적에게 우리를 넘겼느냐고 항의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옥에 가야 마땅한 자들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가시는데 그 길이 험하다고 원망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14~18.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네가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 구원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힘이 있는 자가 밀 타작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드온은 자신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자신은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합니다. 이런 기드온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고 하시면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함께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미디안의 수많은 적들을 한 사람 치듯이 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런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말씀하시는데도 믿지를 못한 것입니다. 바로 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가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여호와의 사자가 빛나는 영광의 모습으로 왔다면 당장 엎드리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전하는 자가 얼마나 대단한 이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사람들이 신뢰를 합니다. 이것이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잠시 기다리게 합니다. 무언가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다린다고 합니다.

 

19~24. 기드온이 염소 새끼를 잡고 무교병과 국을 가지고 여호와의 사자 앞에 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고기와 무교병을 반석위에 올리고 그 위에 국을 붓게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의 지팡이 끝을 내 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반위에서 나와서 그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팡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서 불이 나왔습니다. 모세나 기드온이나 간에 여호와의 손에 들린 지팡이입니다. 지팡이는 그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리키는 역할입니다. 자신은 마른 막대기임을 아는 자들이 큰 용사입니다.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그 표징을 보고서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슬프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기에 자신은 죽는다고 합니다. 오전 설교에서 여호와를 보고는 살자가 없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기에 이제 죽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하더니 이제 표징을 보여주니 슬프다고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단을 하나 쌓고서 그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만났는데 죽지 않았다는 것이 여호와 살롬입니다. 유대인들이 인사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살롬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는데도 죽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살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