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6:25~32 2013. 1. 13

 

지난 한 주간 ‘여호와 살롬’을 맛보셨습니까? 얼마나 자주 많이 맛 보셨습니까?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면 죽게 되는데 죽지 않은 것이 여호와 살롬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죽게 되는데 우리가 죽지 않았다면 누가 죽은 것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이 대신 죽은 것입니다. 그렇게 죽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진리의 영으로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는를 죽여나가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여나가실 까요? 기드온을 통하여 보겠습니다.

 

25.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합니다. 네 아버지 집에 있는 수소 곧 칠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에 아세라를 찍으라고 합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집에 바알과 아세라의 신상에 세워져 있습니다. 기드온의 집은 적들의 약탈 가운데서도 제법 규모가 있는 집안입니다. 기드온이 데리고 간 종이 열 명이고 개인의 집에 바알과 아세라의 신상을 세울 정도의 집안입니다. 아버지가 우상을 섬겼으면 이 당시에는 아들도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수24:2). 우상이란 자기를 위한 신입니다. 풍요와 다산과 쾌락을 주는 신들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늘 바알과 아세라를 집안에 모시고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들입니다.

 

26. 기드온이 사는 곳이 산성 안입니다. 그런데 그 산성 꼭대기에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여호수아 앞에서 다짐한 그 사람들은 다 죽고 그 후손들이 남은 때입니다. 그 아비들이 후손들에게 여호와의 규례를 제대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부분적으로 전하였다고 하여도 그들이 우상숭배를 멈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제단을 쌓아야 할 곳에 바알과 아세라의 신상을 세우고 경배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당에 와서 무엇을 빌고 있습니까? 말은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욕망을 따라 빈다면 그곳이 바알과 아세라의 신전이 됩니다. 이런 바알과 아세라를 찍어 버리는 것이 우리의 예배요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7년 된 둘째 수소를 잡으라고 합니다. 소나 짐승들을 약탈하여 가는 시대에 소가 남아있다는 것은 이들이 높은 산에 산성을 쌓았기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왜 7년이며 둘째 수소이겠습니까? 7년이란 6:1절에 이스라엘을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세를 섬겼기에 적들에게 7년의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속하는 것이 7년 된 둘 째 소가 희생을 합니다. 그런데 원래 희생되어야 할 소는 첫 번째 태어난 수컷은 여호와께 드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우상숭배를 합니다. 그러면 첫째 소가 여호와께 드려진 것이 아니라 우상에게 드려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둘째 소가 드려집니다.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을 보면 둘째가 여호와께 택함을 받습니다.

 

27.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표적을 보고 이런 명을 받았지만 자기 아버지의 가문과 성읍의 사람들이 두려워서 대낮에 이 일을 행하지 못하고 한 밤중에 자기 종들 10명을 데리고 여호와의 명대로 행합니다.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도 사람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가족들의 반대와 세상의 평가들이 두렵게 여겨질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 꼴이냐는 말들을 듣기 싫어서 어떻게 하든지 남 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존심을 믿고 사는 사람이 됩니다. 기드온이 어떻게 하는지 봅시다.

 

28~32. 동네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고서 수소문하여 기드온이 그렇게 한 것을 알고 기드온의 아버지에게 그 아들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그는 당연히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상을 파괴하고 여호와를 섬긴 자를 죽이라고 합니다. 동네가 발칵 뒤집어 졌습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에게 나타나셔서 바알과 아세라의 단을 파괴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기드온이 아직 갈등 중에 있다고 봅니다. 과연 여호와께서 이기는지 바알과 아세라가 이길지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침묵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때 나선 사람이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입니다.

 

요아스가 지혜롭게 대답합니다. 누구든지 바알을 위하여 다투거나 그를 구원하려 한다면 그는 아침까지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알이 과연 신이라면 그의 제단을 파괴한 자를 자신이 직접 다툴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기드온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한 말이지만 성읍의 사람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입니다. 바알이 살아있는 신이라면 내일 아침 까지 기드온을 죽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이 되어도 기드온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기드온이라는 이름의 뜻은 자른다는 뜻입니다.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를 자름으로 바알과 다투는 자가 되었다는 여룹바알로 불리워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기드온은 또다시 하나님의 표적을 받게 됩니다. 기드온이 얼마나 겁쟁이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정도로 타락하였는지 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를 찍었다고 이렇게 한 자를 죽이라고 합니다. 완전히 거꾸로 되었습니다.

 

신명기 13:1~11절입니다.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4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5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6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7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8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9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10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 11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이 말씀과 정 반대로 행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것이 2천 년 예루살렘의 모습이며 오늘 이 땅의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이 도적의 소굴이 되었으며 우상의 신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도 복음을 말하면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폐암이 걸리니 큰 교회들이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단에 세우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것을 하나님의 복이며 영광이라고 여깁니다. 이런 자를 누가 환영할까요? 무슨 저주를 받아서 저런 꼴이 되었느냐고 수군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섬긴다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알과 아세라 같지 않습니까?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어 세우고 제물을 바치고 정성을 바쳐서 나의 소원하는 것들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우리 안의 바알과 아세라를 찍어 부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수어 질 때 성읍의 사람들처럼 그 부수는 자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나올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정성 바쳐 온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이제부터 아무 것도 바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회 다니면서 행한 모든 것들이 정말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런 우상들이 깨어지는 것이 이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하여 섬기려 했던 모든 것들이 날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드러나고 부수어지고 파괴되어 지는 것이 자기 부인이며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겁쟁이 기드온이 여룹바알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