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7:9~25 보리떡과 횃불 2013. 2. 24

 

9~14. 기드온의 믿음 없음이 계속하여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많은 표적을 보고서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전쟁에 나가기 위하여 소집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다 돌아가게 하시고 300명만 남겨 주셨기에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분명히 숫자가 많으면 자기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할 것이기에 숫자를 줄였는데도 여호와의 전쟁을 이해하지 못한 기드온과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적의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두려우면 부하 부라와 함께 가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기드온이 두려워한 것입니다. 부하와 함께 적의 진영에 내려가는데 적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그 수가 메뚜기 떼와 같고 낙타의 수는 해변의 모래 같이 많음을 보았습니다. 기드온이 그곳에 이르러 초병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자신이 꿈의 이야기합니다.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덮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고 합니다. 그의 친구가 이 꿈을 해석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리떡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4:42~44절입니다.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처음 만든 떡이라고 합니다.

 

민수기 15:20~21절입니다. “20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2)가루 떡을 거제로 타작 마당의 거제 같이 들어 드리라 2)거친 먹을거리 21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2)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이것은 여호와께 처음 익은 곡식으로 만든 떡을 거제로 드리게 합니다. 여기의 가루 떡이란 거친 먹을거리라고 각주를 달아놓았습니다. 거칠고 보잘 것 없는 떡이 보리떡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입니다. 부자들은 고운 밀가루로 만든 떡을 먹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시대 때에 선지자들이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처음 만든 보리떡 20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를 가져왔지만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나누어 먹게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먹고 남을 것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씀대로 먹고 남았습니다.

 

요한복음 6:9~13절입니다.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그 떡이 보리떡이며 물고기도 가치가 없어 내버리는 그런 물고기입니다. 그것으로 오천명을 먹이고 12 바구니나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떡을 먹은 자들이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보리떡처럼 형편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보잘 것 없는 보리떡이 미디안의 장막을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15~18. 기드온이 적들의 말을 듣고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그동안 여호와의 말씀과 표적은 믿지 못하였는데 적들의 말을 듣고서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넘겨주셨다는 말을 합니다. 이미 넘겨주셨다는 말씀을 9절에서 여호와께서 하셨습니다. 그런데 적들에게서 그 말을 듣고서(14절) 기드온이 비로소 이 말을 합니다. 적들보다 믿음이 더 없습니다. 이제야 기드온이 적을 치기 위하여 일어납니다. 그런데 준비한 것은 빈 항아리와 횃불입니다. 이것도 기드온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지혜를 주신 것이지요! 이 당시의 항아리는 오늘날과 같이 유약을 바른 그런 단단한 항아리가 아니라 초벌구이 정도한 질그릇입니다. 그 질그릇 안에 횃불을 담아가서 나팔을 불면서 여호와의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19~22. 삼백 명이 삼대로 나누어 적으니 진영 근처에 이릅니다. 밤 10시에서 새벽 2시까지의 시간에 파수꾼들이 교대한 때에 동시에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고 손에 횃불을 들고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고 소리만 지릅니다. 무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21절을 보시면 각기 제자리에 섰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데 적들이 뛰고 부르짖고 도망합니다. 2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셨다고 합니다. 밤중에 갑자기 큰 소리와 항아리 깨어지는 소리와 횃불을 보고서는 놀라서 칼을 들고 휘두르는데 자기들끼리 죽이는 것입니다. 횃불이 성경에서 최초로 나타난 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실 때에 타는 하나님께서 불에 타는 횃불의 형상으로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갑니다. 그리고 언약이 체결됩니다. 그러므로 미디안이 이렇게 패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적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태반이 넘게 그 현장에서 죽고 나머지는 도망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적들이 버린 무기를 가지고 추격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전쟁은 끝났습니다. 전리품을 거두면 되는 전쟁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이 이런 모습입니다.

 

24~25. 기드온이 사자들을 에브라임 산지로 보내어 도망가는 미디안을 치고 요단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여 그들을 치게 합니다. 그 결과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목을 기드온에게 가져옵니다. 이렇게 대승한 날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의 날로 기억합니다. 미디안을 물리친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싸워주신 것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9:1~7절입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메시아 예언입니다. 그런데 미디안의 날처럼 적을 물리치신다고 합니다. 미디안의 전쟁에서 보리떡이 굴러 와서 적을 물리치는 것처럼 한 어린 아이로 오신 분이 적을 물리치시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신다고 합니다. 무엇을 믿고 사시겠습니까?

 

고린도후서 13:4~5절입니다.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1)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1)어떤 사본에, 그와 함께 약하나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목 박히셨지만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신 길입니다. 세상의 강함이 아니라 정말 아무른 힘도 없고 무기도 없는 질그릇 같은 자들 안에 타는 횃불이 그 하나님의 영이 담기면 됩니다. 보배가 질그릇에 감추어진 것입니다. 보배가 드러나려면 질그릇이 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보배가 없는 자는 겉 사람만 치장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