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9장 왕이 되려는 자 2013. 3. 24

 

9:1~6. 기드온이 죽자 사람들은 다시 바알숭배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적들에게서 자신들을 구원하신 여호와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에 사사로 쓰임을 받았던 기드온에 대한 은혜도 잊어버리고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럴 때에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고 자기 어머니의 형제와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합니다.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너희를 다스리는 것이 나은지 한 사람이 아비멜렉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나은지 물으면서 자신은 그들의 골육임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아비멜렉이 한국의 정치가들처럼 여론을 동원하여 지역주의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 이런 말을 아비멜렉이 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민심이 아비멜렉에게 기울면서 그는 우리의 형제라고 합니다. 망국적인 지역이기주의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도 있다는 것은 죄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겜의 사람들이 바알브릿(언약의 바알)의 신전에서 은 70개를 아비멜렉에게 주자 이 돈으로 조폭들을 모아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서는 그의 아버지 집에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을 한 바위에서 죽입니다. 겨우 막내 요담만 스스로 숨어서 남았습니다.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세겜에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7~21. 요담의 우화와 저주 선언입니다. 우화는 나무의 왕들을 뽑는 이야기를 합니다. 감람나무와 무화과와 포도나무에게 자기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열매 맺는 이 나무들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기의 직분에 만족하기에 왕이 되어서 나무들 위에 우쭐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가시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가시나무는 자기를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려면 자기의 그늘에 피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 가시나무가 바로 아비멜렉을 말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왕이라는 이름의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왕이 되려고 한 그 속성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가시나무는 그늘이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 그늘 아래 피하려면 그늘은커녕 몸이 찔릴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시나무의 말을 듣지 않으면 불이 나와서 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아담의 타락 이후에 나옵니다(창3:18). 에덴동산에는 이런 가시와 엉겅퀴가 없었습니다. 조금도 해됨이나 상함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서 나오는 가시들입니다. 이런 가시와 같은 자들이 왕이 된다는 것은 선악과의 유혹이 그들 안에 들어있다는 증거입니다.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고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가시나무의 특징입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문의 나 아(我)자를 파자하면 손 수(手)변에 창 과(戈)자입니다. 창은 싸움과 전쟁을 말합니다.

 

이런 가시와 창 같은 자가 오늘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다들 아비멜렉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아비멜렉으로 인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아비멜렉과 그와 동조한 자들이 행한 일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라면 기뻐할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감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며 또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불이 나온다는 말은 서로가 가시나무라는 말입니다. 이런 가시나무들은 자족함을 모르고 자기들의 작은 이익 앞에 이리 저리 휩쓸려 다니는 것입니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가시가 되고 불이 되어 자멸하게 됩니다.

 

22~25. 스스로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3년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냅니다. 악한 영이 임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들을 그대로 내버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합니다. 이것은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을 죽인 포학한 일을 세겜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에게로 돌아갈 수익을 중간에서 강탈한 것입니다.

 

26~29. 이때 에벳의 아들 가알이라는 자가 세겜에 오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합니다. 그들이 포도주 수확을 하고 잔치를 합니다. 그들의 산당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이때 가알이 다시 혈연과 지역주의를 조장합니다. 아비멜렉은 여룹바알의 아들인데 우리가 그를 섬기느니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하몰은 창세기 33장에 보면 야곱이 그 지역에 임시 거처를 정한 곳입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을 보고 연애하여 강간하고 결혼을 하려고 하자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를 하면 결혼을 허락한다고 하고서는 할례 3일 만에 그들을 죽인 그 땅의 족장입니다. 그들의 아들을 섬기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30~49. 세겜 성의 스불이 가알의 일을 아비멜렉에게 보고합니다.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주하면서 세겜에는 스불을 관리자로 세워놓았습니다. 스불의 말을 듣고 아비멜렉이 세겜을 공격하여 가알을 이깁니다. 이튿날에 세겜 사람들이 밭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아비멜렉이 공격하여 그들을 죽입니다. 그 성을 점령하고 소금을 뿌립니다.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서 엘브릿 신전의 보루로 들어갑니다. 아비멜렉이 도끼로 나뭇가지를 찍어 와서는 그 망대에 쌓아 불을 놓아 약 천명의 남녀를 태워죽입니다. 요담이 저주한 그대로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사른 것입니다.

 

50~57. 아비멜렉이 데베스에도 가서 그들을 점령하였습니다. 성읍 중에 견고한 망대로 백성들이 피합니다. 여기서도 세겜에서처럼 망대에 불을 지르려고 합니다. 이때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에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렸습니다.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에서 자기를 죽이라고 합니다. 여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이 수치라 여겨 자기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 청년이 찌르자 아바멜렉이 죽습니다. 아비멜렉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처소로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겜의 사람들의 악행을 이같이 갚으신 것이며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는 아비멜렉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임을 보아야 합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그 유혹이 아비멜렉과 그를 왕으로 세우는 자들의 모습에게 그대로 다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의 왕은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20:20~28절입니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아비멜렉의 모습과 세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왕이 되어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이 분이 우리의 왕입니다. 이 왕의 섬김을 받는 자들은 아비멜렉처럼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