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10장 회개조차 이용함 2013. 3. 31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아비멜렉이 죽고 나서 소 사사 두 명의 이야기가 나오는 본문입니다. 소 사사 두 명 이후에 입다가 나오고 입다 이후에 다시 소 사사 세 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5.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그가 에브라림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3년을 사사로 지내다가 죽습니다. 돌라는 이어 나오는 야일과 달리 아내와 자녀에 대하 다른 이야기들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사사의 직분만 충실하게 하다가 간 사람으로 봅니다. 그런데 야일은 그의 아들 30명이 나귀 삼십을 타고 성읍 삼십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아비멜렉처럼 왕으로 행세한 것입니다. 아무른 사유재산을 가진 기록이 없는 돌라도 죽고 왕처럼 지낸 야일도 죽었습니다. 우리도 죽을 것인데 무엇을 남기고 죽을 것인지 이런 말씀을 보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6~9. 이스라엘의 배교와 여호와의 진노가 나옵니다. 어느 정도로 배교를 하는지 6절에 보시면 여호와의 목전에 우상 신을 섬긴 것이 일곱입니다. 바알들,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의 신들,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입니다. 이들은 진멸해야 할 대상들인데 오히려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신들의 특징이 풍요와 다산입니다. 오늘 식으로 말하면 경제적인 성장입니다. 이런 모습이 여호와를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모습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블레셋, 암몬, 아모리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치는데 18년을 억압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여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그들이 신으로 섬긴 나라들로부터 곤고를 당합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면 그 신이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신으로 인하여 곤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오늘날 우상이란 탐심인데 그 탐심으로 인하여 이 나라와 우리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하루에 일어나는 뉴스만 보아도 차고 넘칩니다.

 

10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범죄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들의 곤고를 당함으로 인하여 그 위기를 면하고자 하는 죄의 고백이지 진심이 아닌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사사시대 이스라엘의 모습과 그 이전부터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조차 이용하려고 합니다.

 

11~14. 전에는 이렇게 부르짖으면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리 대답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 사건들을 말씀합니다. 애굽, 아모리, 암몬, 시돈, 아멜렉, 마온 사람들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개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므로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부르짖음을 물리치신 이유는 그들의 범죄 시인이 단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입술만의 고백인줄 아십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잘못했다고 하고 돌아서면 원위치가 됩니다.

 

15~18.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하시라는 고백이 신앙적인 고백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어서 그런데 오늘 우리를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정말 자신이 죄인임을 알면 이런 청원을 못합니다. 주여 죄인오니 죽어 마땅합니다. 처분대로 하옵소서! 그러고 있어야지 오늘 우리를 구원하여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구원하여 달라고 하고났지만 좀 민망한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 일이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깁니다. 여호와를 섬겼다는 것은 제사를 드린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회개조차 이용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상한심령입니다(시51:17, 사 66:1~4). 회개조차 이용하려고 한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은 17~18절입니다. 적의 침략 앞에 여호와께 구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길르앗의 백성들과 방백들이 우리를 구하여 주는 자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라 될 것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구원자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회개는 어떠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