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12장 입다의 죽음 2013. 4. 14

 

입다가 여호와의 붙여주시는 전쟁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전쟁에 자기의 공적을 밀어 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자신이 길르앗의 머리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승리를 담보로 제공하고자 서원을 하였지만 그 잘못된 서원으로 인하여 자기 딸이 대신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의 성공과 승리를 위하여 거래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죽인 죄가 됩니다. 오늘은 승리한 입다에게 시비를 거는 에브라임과 입다의 죽음과 다른 세 사사의 죽음을 보겠습니다.

 

12:1~6.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와서는 암몬 자손과 싸우러 갈 때에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입다와 그 집을 반드시 불살라 버리겠다고 합니다. 에브라임의 교만은 이미 기드온의 승리에도 시비 걸고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8:1~3). 기드온은 겸손하게 말하여 싸움을 피하였지만 에브라임의 이런 버릇은 야곱이 손을 어긋 맡겨 축복한 그 의미를 모르고 자기들이 장자인 므낫세보다 큰 지파라는 것만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어디서든지 큰 소리 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신약에서도 이런 자들이 있습니다. 요한 3서 1:9~10절입니다.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에브라임과 같은 자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입다가 말합니다. 나와 내 백성이 암몬과 싸울 때에 너희를 불렀지만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가 목숨을 걸고 건너가서 암몬을 쳤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붙여주심을 이야기 하기는 하지만 그 순서와 강조는 자기의 목숨 건 희생을 먼저이야기 합니다. 자기의 목숨 건 싸움만이 아니라 여호와의 붙여주심도 있는데 왜 감히 나와 싸우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여기에 입다가 길르앗 사람들을 모아서 에브라임을 무찌릅니다. 입다에게 시비 거는 것만 말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길르앗 사람들을 조롱한 것도 함께 말하면서 길르앗을 동원하였습니다. 평소에 지역감정이 있었습니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평소에 늘 길르앗 사람들을 보고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자들이요,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속한 자들이다!" 하고 말하였다.) 이러한 지역감정을 건드리면서 에브라임을 공격합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얼마나 열이 나서 에브라임을 공격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에브라임 사람들이 도망갑니다. 물론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의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하고서는 에브라임의 도망가는 자가 강을 건너게 하라고 하면 ‘쉽볼렛’을 발음하게 합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 발음이 되지 않아서 ‘십볼렛’이라고 하면 그를 잡아 죽였는데 무려 사만 2천명이 죽었습니다. 기드온에게 큰소리치든 에브라임이 입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이 일어난 것입니다.

 

7 에브라임 지파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입다도 사사 된지 6년 만에 죽습니다. 길르앗의 머리가 되기 위하여 자기 딸을 희생시켰지만 6년도 되지 못하여 죽었습니다.

 

8~10. 베들레헴의 입산이 사사가 되어 한 일의 기록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고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경내인지 아니면 이방지역인지 모르지만 정략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밖에서 아들을 위하여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습니다. 사사가 되어 아들 딸 60명을 정략결혼 시킨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의 지위를 지켰지만 그것도 7년 만에 죽었습니다.

 

11~12.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죽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사로서의 일도 자기 가족을 위한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덜 고생시킨 사람이라고 봅니다. 세상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합니까? 지금도 엄청난 업적이라고 남겨진 세계의 유산들은 그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스며져 있는 것입니다.

 

13~15. 그 뒤를 이어 바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어린 나귀 70마리를 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사 된지 8년 만에 죽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명의 사사는 어떤 부르심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스스로 되었든지 아니면 어느 정도의 세력이 있어서 백성들이 원해서 되었는지 보도가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이런 내용을 계시로 보도한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에브라임과 입다와 다른 사사들 속에 있는 그 악이 바로 우리의 악임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 악이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로마서 1장에서 보겠습니다.

 

로마서 1:28~32절입니다. “28 또한 그들이 5)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사사시대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시대가 로마서 1장의 말씀과 꼭 같은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어 버려두신 세상이 이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교회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러므로 사사기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없이는 그 어떤 소망도 없는 인생임을 알라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