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13:8~25 이름 싸움 2013. 4. 28

 

오늘 본문에서는 이름 없는 여인과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여호와의 사자와 이름이 있는 마노아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름의 싸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려고 합니다. 사람의 이름이란 단지 성과 이름이라는 글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란 그 사람의 전부를 다 담고 있는 것이 이름입니다. 예를 들어 저의 이름을 부르면 저의 과거와 현재까지 다 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입신양명(立身揚名)입니다.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길을 가면 입신양명한 자들의 이름을 내 걸고 있습니다. 누구의 아들, 딸이 고시에 합격하였거나 또는 높은 직위에 올랐다는 이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보았던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인 마노아의 아내는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여인에게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그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것이기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자의 신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자와 아내의 역할이며 여호와 하나님은 남편의 역할입니다. 여자는 원래 남자 안에 있었던 존재입니다(창2:21~24). 여자에게서 남자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남자가 남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여사 사사 드보라에서도 바락은 여자의 치맛자락 붙들고 나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브리서에서 사사의 이름으로 올라간 자는 바락입니다. 히브리서 11:32절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드보라가 나온 것이 아니라 바락이 올라가 있습니다. 게다가 입다까지 이름이 있습니다. 입다는 누구 때문에 사사의 이름으로 올라갔겠습니까? 입다의 서원으로 인하여 죽어간 이름 없는 자기의 딸로 인하여 사사의 반열에 올라가 있습니다. 사무엘도 잉태치 못하던 한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은 그의 남편 되신 여호와 하나님께 종속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들은 이름을 주신 여호와께 종속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자 우리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바벨탑의 정신이 온 세상에 가득함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안에서 평생토록 자기 이름만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부인되어져야 하고 삭제되어야 할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마저 이용하고자 합니다. 그 모습을 마노아에게서 보는 것입니다.

 

8~14. 마노아가 아내의 말을 듣고 기도합니다. 아내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순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먼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자가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타락하기 전과 후의 차이입니다.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 이름 없는 여인으로 하여금 구원자를 생산하게 하심으로 자기 이름을 붙들고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마노아가 기도하였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여자 혼자 있을 때 나타납니다. 이름 있는 남자하고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을 데리고 옵니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바로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한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사람의 모습으로 왔기에 그렇게 묻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내가 그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아이를 기를까요? 라고 묻습니다. 이미 아내에게 말하였지만 자기가 다시 듣고 싶은 것은 자기 주도하에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나실인의 규례대로 하라고 합니다.

 

15~20. 그 대답을 듣고서는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는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네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마노아는 아직 사람으로 보고 식사를 준비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번제를 드리려거든 여호와께 드리라고 합니다. 이때 마노아가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어찌 이름을 묻느냐고 하면서 내 이름은 기묘라고 합니다. 새 번역에서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야훼의 천사는 "어디라고 내 이름을 묻는 거냐?" 하며 자기 이름은 비밀이라고 잘라 말했다.” 어디라고 감히 내 이름을 묻는 거냐고 합니다.

 

이름을 묻는 것은 그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손에 장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노아의 의도는 그 말대로 이루어지면 당신의 이름에 감사를 한다고 하지만 감히 그런 이름을 물을 가치도 없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물었을 때도 ‘나는 나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출3:14). 영어로 “I Am”입니다. 사사기의 ‘내가 그다’라고 한 말씀도 "I am"입니다. 스스로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만물을 존재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를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골로새서 1:15~2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위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서 올라가는 것을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함께 목격합니다. 제물을 반석위에 두었는데 이것을 제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제단에서 불이 나와서 그 여호와의 사자가 불꽃에 휩싸여 올라갑니다. 이것을 보고 부부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단도 되시고 제물로 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11~12절입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21~23. 마노아가 그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의 아내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이름을 주장하는 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사를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제사는 마노아의 제물이 아니라 그 제물이 불태워질 때에 그 불꽃 속에 휩싸인 여호와의 사자,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속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는 사실을 평생에 걸쳐 알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마노아는 모르는데 이름 없는 마노아의 아내는 압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셨다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며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그 무수한 제물들이 번제로 드려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피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24~25.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며 이름을 삼손이라고 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처녀에게서 태어납니다.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삼손이 자기의 죽음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듯이 예수님께서 자기의 죽음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복입니다. 요엘 선지자가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줄 것인데 그러면 주의 이름을 부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은 자기의 이름이 아닌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행2:21). 자기의 이름은 삭제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공로와 업적은 다 삭제됩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의 새 이름이 주어집니다. 요한 계시록 3:12절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