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19장 성도의 죽음 2013. 6. 19

 

본문 30절을 보시면 토막 난 시신을 받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말하기를 이런 일은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악의 모습은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만의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할 때에 기브아의 죄와 같다고 말씀합니다(호9:9, 10:9).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의 지파가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를 공격할 때에 그들이 세 번이나 지는 일을 통하여 모두가 심판의 대상임을 보여줍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을 그대로 내 버려두시면 이스라엘이 소돔과 고모라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4~27절입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을 그 정욕대로 내 버려두시면 이런 모습이 나옵니다. 이러한 기브아의 모습과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이 오늘 이 땅의 현실입니다.

 

19:1~3.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사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았는데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베들레헴의 그 아버지 집에 돌아 가버린 지 넉 달이 되었습니다. 이 레위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끌고 그에게로 갔습니다. 첩이든 아내이든 음행하면 돌로 쳐 죽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이 남편은 그 음행한 첩을 다정하게 말하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호세아 2:14~15절입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런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를 알게 하신다고 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음란한 고멜의 역할을 하고 이런 여인을 값을 주고 데리고 오는 호세아는 여호와의 역할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사사기의 본문을 보면 이곳까지는 무리가 없습니다. 메튜헨리도 사사기의 이야기를 호세아와 연결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중에 레위인이 그 첩을 내어 주어 죽게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 해석이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주석을 보았지만 윤리와 도덕적인 차원에서 언급할 뿐입니다. 그런데 김성수 목사의 설교에서는 이 부분을 기독론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원용(援用)하여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4~30. 장인의 지극한 환대를 물리치고 5일 째 오후 늦게 첩을 데리고 떠납니다. 가까운 여부스는 아직 원주민들이 살고 있기에 자기 동족이 사는 기브온까지 가서 광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는데 저녁때에 한 노인이 레위인을 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습니다. 이 사람은 베냐민 사람이 아닌데 그곳에 거류하는 자로 있습니다. 레위인이 자기가 여호와의 집으로 간다는 말로 제사장의 신분임을 밝힙니다. 그러자 이 노인이 그 일행을 영접하여 발을 씻기고 먹고 마시게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성읍의 불량배들이 나타나서 그 남자를 내 놓으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를 관계하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돔과 고모라와 꼭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자 그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집 주인이 자기 딸과 그 첩을 내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자기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줍니다. 그러자 그 불량배들이 그 첩을 밤새 욕보이고 새벽에 놓아주어 돌아왔지만 그 집 문 앞에서 엎드려져 죽었습니다. 이 불량배들이 ‘벨리알 벤’입니다. 벨리알 즉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여인의 주검을 열두 토막으로 찍어서 열두지파에게 보낸 것은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부르는 호칭이 처음부터 지금까지는 첩이라는 ‘필레게쉬’와 소녀 ‘나아라’로 지칭됩니다. 그런데 기브아에서 죽고 나서 그 여자를 성숙한 여인 ‘하이샤’로 호칭이 바뀝니다. 첩이 소녀였다가 성숙한 여인으로 부름 받은 것이 그의 죽음으로 바뀌어 불러진 것입니다. 지난주일 오전 설교와 오늘 오전설교와 연결이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는 것이 온전한 것이며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세상의 자기 가치 확장과는 달리 죽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죽음을 성도의 완성으로 본 것입니다. 너무 무리한 해석처럼 보여서 충격이 크겠지만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이런 말씀은 하도 많이 들어서 면역이 되어서인지 별로 충격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죽음을 성도의 완성이라고 하는 말에 충격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십자가를 이야기하지만 그 십자가를 관념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를 우리들 삶의 현장에서 죽이시는 실제사건입니다.

 

미가서 5:2절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에 주인이 오십니다. 그 주인이 자기 아내를 데리고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삿 19:18). 이 길에서 여인이 죽임을 당합니다. 이 죽음이 베냐민을 심판하고 이스라엘 전체를 심판하는 근거가 됩니다.

 

요한복음 15:18~19저입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성도가 세상에서 당할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되도록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지옥임을 알게 하시고 성도로 하여금 별세를 꿈꾸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 세상의 심판의 근거가 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11:7~8절입니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여기서 죽임 당한 자들이 두 증인입니다. 증인이라 성령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성도입니다. 이들을 세상의 짐승이 죽입니다. 사사기의 벨리알의 아들들이 한 여인을 죽인 것처럼 죽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곳이 바로 소돔이며 애굽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예루살렘입니다. 이 세상 전체가 왜 심판을 받는지 아시겠습니까? 이 죽임 당한 여인으로 인하여 베냐민지파와 이스라엘 전체가 심판을 받는 것처럼 성도의 피를 흘린 이 땅이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1~3절입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이 세상의 심판은 자기 종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심판과 동시에 하늘에서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열리게 됩니다(계19:6~10). 이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큰 환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계7:14). 그러므로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주님께서 자기 신부들에게 말씀하십니다(요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