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룻기 2:1~13. 룻이 고엘을 만나다 2013. 7. 21

 

제목을 ‘룻이 고엘을 만나다’라고 한 것은 보아스의 역할이 ‘기업 무를 자’인 ‘고엘’의 역할이기에 그렇게 붙였습니다. ‘고엘’의 역할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한 집안의 남자가 결혼하여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그 남편의 가장 가까운 친족중의 한 사람이 그 여자와 결혼하여 죽은 남자의 이름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아내를 가장 가까운 친족중의 한 사람이 그 여자와 결혼하여 죽은 남자의 이름을 이어주는 자를 말합니다(신25:5~6). 둘째는 형제 중의 한 사람이 가난하여 종으로 팔렸을 경우에 그 몸값을 대신 지불하고 속량해 내는 역할입니다(레25:47~55). 셋째는 가난하여 조상으로부터 받은 기업(基業)이 팔렸을 경우에 그 친족이 기업을 물어주는 것입니다(레25:26). 넷째는 피 흘리게 한 원수를 갚아주는 역할입니다(민35:19~27. 고엘의 역할이 이러한 것인데 룻기서의 고엘의 역할은 첫째와 셋째의 역할을 합니다.

 

2:1~3.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하여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보리 추수하는 들판으로 나왔습니다. 이삭을 줍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율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법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던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레위기 19:9~10.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신명기 24:17~22. “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룻이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다고 합니다. 이삭을 줍는 것이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자의 권리이지만 어느 나라이건 가장 가난한 자들이 이삭을 줍는 자들입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그림이 명화인데 이 그림의 배경도 프랑스 혁명이 소용돌이치는 시대에 가난한 자들에게 이삭줍기를 허락하였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세 여인의 뒤로 멀리 보이는 그림은 뒤는 곡식 단을 가득 쌓아두고서 탈곡을 하고 한 사람은 말을 타고 감독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제가 살던 시골에도 남편이 죽고 여자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사람과 남편이 장애가 있기에 아내가 일해야 하는 두 가정이 이삭 줍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삭 하나라도 허투루 잃어버리지 않도록 곡식을 거두어 갑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달리 이삭 주울 것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이삭들을 주워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이삭들을 보리 수확하는 기간 내내 주워서 그 집 마당에 늘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또 보리와 나락을 거두어들일 때에 학교에서 며칠간 가정실습시간을 줍니다. 그럴 때 숙제가 있는데 이삭을 주워서 학교로 들고 가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달리 이삭을 일부러 흘려놓지 않아서 줍기가 힘들었습니다.

 

룻은 곡식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가게 되었습니다. 룻의 입장에서 우연히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필연입니다. 그런데 룻이 고엘이 되는 보아스를 만나는 그 시기가 언제입니까? 시어머니가 나오미가 텅 비어버린 상태입니다. 베들레헴에 양식이 주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지만 엘리멜렉의 기업을 물어 줄자가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삭을 주워서 먹고 살아야 하는 가장 밑바닥의 자리에서 우연히 고엘이 되는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2:4~7.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추수하는 곳으로 왔습니다. ‘우연히’ ‘마침' 이런 단어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추수하는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추수하는 사람들이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추수하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룻이 누구의 소녀인지 묻습니다. 나오미와 함께 한 모압 여인 룻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2:8~12. 보아스가 룻을 보고 내 딸이라고 부르면서 이삭을 줍기 위하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내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합니다. 추수하는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면서 목이 마르면 길어놓은 물도 마시라고 합니다. 룻이 엎드려 절하며 이방 여인인데 어떻게 이른 은혜를 베푸느냐고 하자 보아스가 네가 행한 일을 내가 다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합니다. 그 축복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을 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시편 57: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다윗이 쫓겨 다니면서 자신의 피할 곳을 주의 날개 그늘 아래라고 합니다. 그리고 언약궤의 뚜껑도 천사의 날개로 덮고 있습니다. 이러한 날개란 주의 보호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이 이 날개 그날 아래 피하여 온 것입니다. 언제 이 날개 아래 피한 것입니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 때에 텅 비었을 때에 그 날개 그늘 아래 피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3:37절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모으기 위하여 선지자를 보냈는데 오히려 그들을 돌로 쳤다고 합니다. 그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오셨는데 날개 아래 피하기는커녕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들의 의가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룻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 들어올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텅 빈 것이 은혜입니다.

 

2:13. 룻이 보아스의 축복의 말을 듣고 고백합니다.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우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이런 모습이 은혜를 입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다윗의 아내 아비가일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남편이 죽고 나서 다윗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데리러 왔을 때에 자신의 다윗의 전령들의 발을 씻길 종이라고 하였습니다(삼상25:41). 다윗 자신도 쫓겨 다닐 때에 자신을 죽은 개와 벼룩 같다고 하였습니다(삼상24:14).

 

12절을 보시면 보아스가 룻에게 여호와께서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한다고 한 그 상을 받은 자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입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온전한 상을 받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우리의 온전한 상이 되려면 어느 정도로 마음이 가난해야 되겠습니까?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함이 죄(잠21:4)임을 아시고 부디 주께서 우리에게 가난한 마음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피하여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