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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장 에벤에셀 2013. 10. 27

 

언약궤를 빼앗겨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위력을 보이듯이 언약궤 홀로 적을 무찌르고 적의 항복을 받고 벧세메스로 돌아왔습니다. 벧세메스에서 언약궤를 들여다보다가 이스라엘 백성 70명이 죽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 누가 감히 설 것이냐고 합니다. 어느 누구도 여호와의 궤를 모실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7:1. 그 이유는 아비나답의 집에 성소가 있었기 때문으로 봅니다. 집이라는 단어가 성막과 성소와 함께 쓰이는 단어입니다. 사사시대에 개인적인 성소를 구별하여 놓은 곳들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마치 미가의 집에 제사장을 세우고 성소를 만들어 놓듯이 아비나답의 집에도 그러한 성소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비나답의 아들 엘르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2.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으로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었습니다. 이미 20여 년 전에 언약궤는 돌아왔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지나고 그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20년이나 지나서 비로소 여호와를 사모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기다리시는데 우리가 돌아오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호세아 6:1~4절입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여호와의 신실함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실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사무엘 서에서는 이제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마음이 돌아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읍니다.

 

3~4. 사무엘이 말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에게서 제거하고 너희l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고 그만 섬기라고 합니다. 사사시대에 온갖 우상들을 섬긴 것을 이제 제거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블레셋에서 너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언약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깁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우상들입니다. 이런 우상들을 제거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알과 아스다롯 즉 풍요와 다산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의 나들목 교회에서 10월 25일 박정희 추모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어릴 때 교회에 나갔고 구미 상모교회 건축을 도왔고 신앙전력화라는 글을 쓰서 군목들에게 돌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풍요롭게 해 주었다고 추모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성경은 죽은 자에 대한 추모예배가 없습니다. 장사를 지낸 후에는 더 이상 죽은 자에 대한 추모는 없습니다(신14:1~2). 그런데 교회가 이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곳은 교회가 아니라 바알과 아스다롯의 신전입니다.

 

5.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기도하리라고 합니다. 제사장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 사이에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역할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모형입니다(딤전2:5, 히9:15).

 

6.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붓고 그날 종일 금식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물을 붓는다는 것은 금식에서 물도 마시지 않는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마음을 물처럼 쏟아 붓는다는 뜻도 됩니다.

 

예레미야 애가 2:18~19절입니다. “18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우리의 마음을 물처럼 쏟아 붓는 것을 기도로 표현합니다.

 

7~8.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하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본 블레셋이 공격합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하면서 사무엘에게 기도를 요청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불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사무엘 자신도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삼상12:23). 그러나 사무엘도 죽습니다. 그러면 누가 쉬지 않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시편 121편입니다.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러한 기도를 성령님과 예수님께서 하십니다(롬8:26, 34).

 

9~11.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온전한 번제로 드립니다. 온전한 번제란 제물 전체를 여호와께서 불태워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우레로 적들을 어지럽게 하셔서 패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주하는 적들을 추격하여 공격합니다. 여호와께서 용사가 되셔서 적들을 물리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들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왔기에 여호와는 자기 백성들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12~14.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웁니다. 에벤에셀이란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이 전투로 인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들을 막았습니다. 사무엘이 막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이 막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린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에 빼앗겼던 땅들도 도로 찾습니다. 또 아모리 사람들과도 평화가 있었습니다.

 

15~17.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자기가 사는 곳 라마에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라마에도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사무엘이 하는 일은 전형적인 사사의 일을 하면서 동시에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백성들을 위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기도를 쉬지 않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이 있을 동안 적들이 쳐들어오지 못하였고 평화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은 누구입니까?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으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형의 기념비를 세우라는 말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도우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는 것은 우상을 버리고 돌아가야 합니다. 빈손 들고 주께와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스바의 언약갱신이며 에벤에셀의 도움을 받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