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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6장 홀로 돌아온 언약궤 2013. 10. 6

 

‘사람은 망치고 하나님은 이루시고’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말입니다. 한 마디로 구약전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망치고 하나님은 이루시는 것이 사무엘상 5장에서 언약궤를 빼앗긴 사건을 통하여 사람이 망친 일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6장에서는 언약궤 홀로 돌아오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6:1. 언약궤가 블레셋에 7개월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손이 블레셋에 엄중하게 임하심으로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치게 되었습니다.

 

2~5.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제사장과 복술자들을 불러 여호와의 언약궤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여 여호와의 궤를 그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돌려보내되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속건제(贖愆祭)란 허물의 속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허물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따라 속건제를 드리는 방법을 모르기에 그들 나름대로 독종의 형상 다섯 개와 땅을 해롭게 하는 쥐 모양 다섯 개를 금으로 만들어 언약궤와 함께 보내기로 합니다. 다섯 개를 만든 것은 블레셋 다섯 방백의 수효입니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면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 까 하노라고 합니다. 5:11절에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한 것을 이들이 압니다. 그래서 이들이 언약궤를 돌려보내면서 속건 제물을 바치면 혹시 여호와의 엄중한 손이 가볍게 하여 주실까 하는 조심스러움을 보게 됩니다.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여호와의 엄중한 손앞에 더욱 두려워 떠는 것을 보게 됩니다.

 

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들고 있다가 10가지 재앙이 내린 것을 이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났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출애굽 모티브가 나옵니다.

 

6~9.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방법으로 그들이 생각한 것은 과연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이런 재앙이 일어난 것인지 최종적인 확인을 하기 위하여 새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 수레에 메우는 것입니다. 젖 먹는 송아지는 떼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소를 길러본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잘 압니다. 멍에를 처음 메는 소들은 그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온 몸을 다 흔듭니다. 뿐만 아니라 젖 먹이는 소라면 새끼를 두고 갈 수가 없습니다. 젖을 뗄 때가 된 송아지를 팔기 위하여 끌고 나가면 어미 소도 새끼소도 얼마나 울어대는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블레셋의 제사장들과 복술가들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정말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지 점검하기 위한 것입니다.

 

10~16. 블레셋의 제사장과 복술자들의 말대로 언약궤를 젖 나는 소 둘에 메어 벧세메스를 향하여 보냈는데 암소가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갈 때에 울며 갑니다. 그런데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 까지 갑니다. 블레셋의 방백들이 밷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가서 그것을 보고 돌아갑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밀을 베다가 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수레가 멈추어 선 곳이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이 있는 곳입니다.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립니다. 레위인이 그 언약궤를 큰 돌 위에 둡니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립니다. 언약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본 블레셋 사람들이나 언약궤가 돌아오는 모습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여호와의 보이지 않는 손을 느낀 것입니다.

 

17~18. 블레셋 사람들이 속건제물로 드린 금으로 만든 독종과 금 쥐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약궤를 빼앗아 갔기에 그들이 승리하였다고 하였지만 오히려 여호와께 철저하게 패배하여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만이 아니라 블레셋의 각 성읍과 시골의 마을에 이르기까지 항복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궤 홀로 적을 물리치고 개선한 것입니다. 이 일은 여호와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내시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내시는데 그 일에 사람들은 망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심으로 칠십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괄호부분은 어떤 사본에는 없다는 표시입니다. 그 당시 이곳에 오만이 살만한 마을이 아니기에 사본 상의 오류로 봅니다. 그러자 그 백성들이 슬피 웁니다. 언약궤를 들여다봄으로 죽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언약궤 안에는 두 돌 판이 들어있습니다. 처음 돌 판은 그들의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깨어지고 두 번째 다시 만든 돌 판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궤의 뚜껑을 만들어 덮었습니다. 언약궤의 뚜껑 이름이 속죄소입니다. 그런데 그 속죄를 걷어내는 순간 그들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나 우리나 간에 법대로 다루시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를 가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심을 보여주십니다.

 

20~21. 벧세메스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이것이 홀로 돌아온 언약궤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언약궤를 여호와의 임재와 동일하게 여기기에 그를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를 다시 의논합니다. 그 결과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언약궤를 가져 가게 합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합니다.

 

홀로 돌아온 언약궤를 통하여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일하심은 여호와의 자기 언약을 위하여 홀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홀로 일하심으로 심판과 구원을 이루어내십니다.

 

이사야 59:1~15절을 봅니다. “봉독”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악이 가득하지만 어느 누구도 구원을 베풀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15절 중반부터 여호와 홀로 일하심을 이렇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가지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 모든 언약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심판도 하시고 구원도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