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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8장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2013. 11. 3

 

사무엘시대는 어느 사사시대보다 안정적인 시대였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동안 블레셋을 막았고 아모리와의 사이에도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여호와의 왕 됨을 거부하는 언약의 배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보다는 세상의 다른 나라들처럼 인간이 왕으로 다스려주는 그런 나라를 원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인간 왕의 다스림을 통하여 고난을 당하고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여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들여 놓은 지 약 4백년이 지나면서 왕을 달라고 합니다. 사사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것은 믿음의 문제인데 다른 나라와 같은 왕이 없어서 그렇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늙고 그 아들들이 사사의 자질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에게 왕을 세워달라는 것이 사무엘 8장의 내용입니다.

 

8:1~3. 사무엘이 늙자 그 아들들을 사사로 임명합니다. 사사는 세습이 되는 직분이 아닌데 사무엘도 늙어서 그의 영력이 떨어졌는지 자신이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웁니다. 그 이름이 요엘(여호와는 하나님이다)과 아비야(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입니다. 이들의 이름이 얼마나 신앙적인 이름입니까? 그런데 그 아들들이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였습니다. 율법에서 당연히 금하는 내용입니다.

 

신명기 16:18~20절입니다. “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20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반드시 율법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들이 뇌물을 받았습니다.

 

8:4~6.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와서 왕을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않으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든 나라와 같이’라는 말은 자신들의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을 배반하는 모습입니다. 자기들 스스로 하나님의 이방의 나라들과 같이 되려고 합니다.

 

출애굽기 19:4~6절입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의하여 언약의 피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백성이 되기 보다는 세상의 다른 나라들과 같이 되겠다고 합니다.

 

8:6~9. 우리에게 왕을 달라는 요구를 사무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사무엘이 기뻐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세운 아들들을 백성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기뻐하지 않는 이유도 되며 자신이 지금까지 평생토록 단 한 번도 뇌물을 받지 않고 정직하게 백성을 다스린 것에 대한 섭섭함도 묻어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요구가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도 알았기에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대답이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참된 사사인 사무엘을 버리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왕을 허락하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8:10~18.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세우면 얼마나 과중한 부담을 담당해야 할지를 이방의 나라들의 왕의 경우를 들어서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징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군비를 부담해야 하고 딸들도 왕과 신하와 군대를 위하여 징집당할 것이며 모든 소산물의 십일조를 바쳐야 하고 백성들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이 자기 일을 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왕을 세운다는 것은 왕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왕들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엄중하게 왕의 제도를 말하여도 백성들은 그래도 왕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이 왜 언약의 배반이 되는지 18절을 봅니다. 왕이 왕 노릇을 잘 못하여 백성들이 고난으로 부르짖을지라도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본 출애굽기 19장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고 피로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의 왕 됨을 버리고 인간 왕을 요구하는 것이 언약의 배반입니다. 왕에게 부담해야 할 각종 부담과 왕이 백성을 자기 소유로 삼아 마음대로 취하여 고통이 가중되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여호와를 배반하였기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지 아니하실 것을 말씀하시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래도 왕이 있어야겠다고 합니다.

 

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거절하면서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신앙인지 지금까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앞장서서 싸워오셨는데 그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15:3~7절입니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5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여호와께서 용사가 되셔서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이뿐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 보다 먼저 약속의 땅에 와 있었으며(수5:14) 사사시대의 전투들도 여호와께서 앞장서서 싸우셨음을 그들이 직접 목격하고서도 인간 왕을 요구 하는 것입니다.

 

8:21~22. 이러한 백성들의 요구에 하나님께서 허락하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먼저는 백성들을 각자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허락하신 것은 그들이 요구한 왕으로 인하여 고생을 해 보아야 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허락하신 뜻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왕은 세상의 왕들과 전혀 다릅니다.

 

신명기 17:14~20절입니다.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이런 왕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며 섬기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가진 전제군주를 원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받은 그 자유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를 못합니다. 이런 마음들이 있기에 이 세상에 독재가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부분에서도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제어하여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역사에서 히틀러와 뭇솔리니 같은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직도 박정희를 찬양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이야 사람들의 자유라고 하여도 교회의 목사들이 독재자들을 찬양하고 있으니 이것이 여호와의 왕 되심을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리고 나라가 어수선 할 때에 어떤 사람들이 전두환처럼 해야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에게서도 들어보았습니다. 종교계에서도 이단의 교주들이 나오는 것은 이런 독재적인 교주를 원한 것입니다. 이단의 교주들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회들도 목회자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축복과 저주라는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면 꼼짝 없이 순복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낮추고 성도를 섬기면 능력이 없는 자라고 무시합니다. 이런 일들을 바울사도가 이미 증거 하였습니다.

 

고린도 후서 11: 20절입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하면서 종의 모습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은 사도의 자격도 없어서 그렇게 하였다고 하면서 교인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빼앗고 스스로 높이면서 뺨을 치는데도 용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한 백성들이 마음입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리바이어던은 욥기(3:8,41:1)와 시편(74:14,104:26)과 이사야(27:1)에서 나오는 ‘리워야단’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다의 괴물로 등장하는데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괴물입니다. 홉스는 국가가 이런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마다 통제되지 않는 열정과 교만들이 있기에 서로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혼란을 막고 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개인의 힘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이러한 욕망들을 막아야 하는 통치 체계가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국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통치자에게 위임한 계약으로 본 것입니다. 홉스의 이런 이야기들은 약 400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 당시의 왕권신수설과 달리 계약으로 된다는 말로 인하여 핍박도 받았습니다. 홉스만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든지 플라톤의 국가론이나 여러 가지 국가와 왕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 사무엘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의 권리를 양도 하면서 자기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여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들이 어떠하였습니까? 정말 신명기 17장의 모습대로 다스린 왕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 중에 다윗이 가장 하나님의 뜻에 맞는 왕이었지만 다윗조차도 백성들을 자기의 소유물인양 밧세바를 간음하고 충성된 군인 우리야를 살해한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땅에 참된 왕이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왕으로 오신 분이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자기들의 원하는 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원리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힘으로 누릅니다. 사무엘서의 왕의 모습입니다. 백성들을 자기의 소유와 종으로 삼고 백성들의 것들을 다 취하여 가는 왕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누가복음 22:24~27절입니다.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사람들이 왕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 왕 옆에서 무언가 권력을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섬기는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자기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왕을 원하십니까? 마태복음 20: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섬겨주셔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섬기셔야 합니까?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시기까지 섬기셔야 합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