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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1장 나라를 새롭게! 2013. 11. 24


11:1.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향하여 진을 쳤습니다.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강 동쪽에 있습니다. 요단강 동쪽에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 르우벤 갓 므낫세 절반 지파가 정착한 곳입니다. 또한 이곳은 암몬과 모압이 자리 잡고 있던 곳입니다. 야베스는 이름은 말랐다는 뜻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만행을 치리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총회가 소집되었을 야베스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지파 싸움으로 베냐민의 진멸하게 되었을 때에 그들의 아내를 마련해 주기 위하여 야베스 사람들을 공격하여 그들의 처녀 400명을 약탈해 온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므로 약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야베스를 암몬 족속의 나하스가 공격합니다. 나하스라는 말은 뱀이라는 말입니다. 이 공격 앞에 야베스 사람들은 우리와 언약을 하자고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고 합니다. 여호와와 언약한 백성이 나하스의 공격 앞에 언약을 하자고 하는 것은 여호와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왕으로 믿지 않는 것이며 또한 사울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웠지만 아직 그 왕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을 뱀이 공격합니다. 그 약한 부분들을 공격해 오면 물리쳐야 하는데 뱀과 언약을 맺는 일이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뱀의 머리를 부수어버리신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하는데 그런 뱀하고 언약을 맺고서 뱀의 종으로 살아가겠다고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뱀의 머리를 부수어버린 주님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뱀과 언약을 맺으면 어떻게 될까요?


2. 암몬 사람 나하스가 말하기를 내가 너희의 오른 눈을 다 빼야 언약을 맺으리라고 합니다. 야베스 사람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면서 종으로 섬기겠다고 하여도 그런 항복으로 만족하지 않고 완전히 불구자로 만들어 종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오른 눈을 뺀다는 말은 전투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합니다. 왼손으로 방패를 잡고 왼쪽 눈까지 가리고 칼과 창으로 공격할 때에 오른 눈으로 보고 하는데 오늘 눈을 빼 버리면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나하스의 말처럼 온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것입니다.


3. 야베스 장로들이 나하스에게 일주일간 말미를 달라고 합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전역에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하스가 왜 일주일간 말미를 주었을까요?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오는 그들을 보고서 아주 교만하여 진 것입니다. 전쟁이나 싸움이나 간에 선제공격을 하여 기선을 제압해야 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이는 것이 야베스 였기에 일주일간 말미를 주었습니다.


4~8. 전령들이 나갔는데 다른 곳은 언급이 없고 사울이 살고 있는 기브아에 전령이 가서 이 소식을 전하니 모든 백성들이 소리를 높여 웁니다. 기브아는 요단강 서쪽 예루살렘 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야베스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1절에서 보았습니다만 야베스의 처녀 400명이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에게 강제로 끌려와서 결혼한 관계입니다. 야베스에서 온 전령의 소식을 들은 기브아 사람들이 울고 있는 이유를 들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크게 감동이 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다른 사사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은 구원자로 세워지는 모습입니다.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 소식을 듣고서는 그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각 지파에게 보내면서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않으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였을 때에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여 한 사람같이 나왔습니다. 그 나온 숫자가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 만이며 유다가 삼만 명입니다. 기브아에서 사울이 소를 각을 떠서 보냈는데 이 일이 있기 전에 기브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사사기에서 레위인의 첩이 강간당하고 죽었을 때에 레위인이 그 첩을 열두 토막을 내어 이스라엘 전역에 보내어 그 만행을 저지른 베냐민 지파를 징치하기 위하여 보냈습니다. 이것은 왕이 없는 시대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모습이며 또 자기 백성을 공격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은 자신의 소를 각을 떠서 보냅니다. 이에 여호와의 두려움이 임하여 모든 지파가 소집되었습니다. 나라가 새로워지는 모습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에서는 여호와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자기들도 각자가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주제에 끔찍한 사건을 징치하겠다고 모였기에 그들은 두 번이나 패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로 인하여 모이는 것은 여호와의 두려움으로 모여 전쟁을 한 결과 단번에 적들을 물리치게 됩니다. 사람들의 의분인지 여호와의 영이 임한 의분인지 분별하여야 합니다.


9~11. 모인 무리들이 전령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베스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나하스에게 내일 너희에게 나아갈 것이니 너희 생각에 좋은 대로 하라고 합니다. 마치 구원자가 없는 것처럼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나하스는 기분 좋게 그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새벽에 사울이 삼대로 나누어 그 진을 공격하여 날이 더울 때 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하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울은 온 백성이 인정하는 왕으로 추대가 됩니다.


12~13. 백성들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고 한 자들을(10:27) 끌어내어 죽이자고 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왕이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하시는 왕입니다. 그러므로 11장에서 구원이라는 말이 중심을 이루며 연결이 됩니다. 첫째는 3절에서 구원자가 없으면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원자가 없으면 자신들은 나하스에게 눈이 뽑히고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마치 삼손이 눈이 뽑히고 조롱을 당한 모습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사울이 하나님의 영이 크게 감동함과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들에 임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9절에서 말씀합니다. 그 구원이 일어나고 나서 사울이 하는 말이 13절에서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셨다고 합니다.


14~15.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할례를 행한 곳입니다. 그래서 길갈의 이름은 굴러가다는 뜻입니다. 애굽의 수치를 굴러 버렸듯이 이제 사사시대의 그 모욕과 수치와 조롱을 굴러버리는 것이 나라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왕을 세우는데 이 왕은 여호와의 구원을 증거 하는 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길갈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데 여호와 앞에서 세웁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러자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합니다.


나라가 새로워지는 것은 여호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수치를 굴러 보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선다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은 모든 언약을 완성하시고 뱀의 머리를 부수어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울을 보면서 얼굴과 몸을 고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약의 갱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 앞에서 새로워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뱀과 언약을 맺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뱀의 머리를 십자가로 부수어버리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도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원자가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들이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것입니다. 구원자가 이미 나타났으며 이미 승리하였습니다. 그 안에서만 날마다 새롭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