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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5장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2013. 12. 22


14:52절을 보시면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의 큰 싸움이 있었기에 사울이 힘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이 결과 무려 21만 명의 군인이 양성되었습니다(15:4). 이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전합니다.


15:1~3.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합니다. 진멸이란 히브리어로 ‘헤렘’입니다. 마치 여리고성을 진멸하듯이 진멸하는 무서운 전쟁이 아말렉의 전쟁입니다. 남녀노소 심지어 젖먹이와 짐승들까지 진멸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말씀으로 인하여 ‘마르시온(Marcion, AD 84-160)’이라는 사람은 구약을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런 잔인한 하나님의 아들일 수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본문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우선 이들을 진멸하라고 한 이유부터 봅니다.


출애굽기 17:14~16절입니다.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아말렉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최초로 공격해 왔습니다. 모세는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전투에 나간 전쟁으로 여호와 닛시라 이름 붙인 전쟁입니다. 그래서 아말렉을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가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25:17~19절입니다.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이 말씀을 성취할 때가 되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합니다.


4~9. 사울이 아말렉을 공격하기 전에 아말렉과 함께 섞여 사는 겐 족속에게 떠나라고 합니다. 겐 족속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선대한 족속이기에 이렇게 하였습니다. 겐 족속이 떠나고 사울이 아말렉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사울과 백성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왕 아각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을 진멸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거절한 것입니다.


10~1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한다고 하십니다. 사무엘이 밤을 새워 여호와께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밤을 새워 사울을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사울은 그 동안 한 일이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것이 우상인데 이미 사울은 이러한 우상숭배를 함으로 여호와를 반역한 자가 됩니다.


13~16.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갑니다. 사울이 의기양양하게 사무엘을 축복하면서 자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다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다 진멸하였다고 하는데 왜 양과 소의 소리가 들리는지를 묻습니다. 사울이 말하기를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끌고 왔다고 합니다. 9절에서는 사울과 백성이 함께 하였는데 여기서는 백성이 하였다고 자신은 발뺌을 합니다.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17~21.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었고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아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고 탈취에만 급급하였느냐고 책망합니다. 이 책망을 듣고서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것으로 남겨왔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사무엘이 책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22~23.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기 보다는 제물을 바치는 제사로 신에게 무언가 드리고자 하는 이 사고방식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도 그 뜻은 자신들이 죄를 알고 어떻게 속죄가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죄의 속함에 대하여는 관심 없이 제물에만 마음을 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의 말씀들이 구약에 아주 많지만(사1:10~11, 13. 렘7:21~26. 암5:21~24. 미6:6~8. 시50:9. 시51:18) 한곳의 말씀만 봅니다.


호세아 6:6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제사와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애가 어떠한지를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인애는 그 언약적인 사랑에는 관심이 없고 제사와 제물로 때우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9:11~13절입니다.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아말렉 사람들이 출애굽 때에 누구를 공격하였습니까?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의 사람들이 아말렉입니다. 이들을 진멸하라고 보낸 사울도 아말렉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죽이고 멋있고 좋은 것들은 남겨 와서 여호와께 제사 드린다고 핑계를 하지만 그 남겨옴으로 인하여 자기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전리품들을 챙겨온 것은 제사보다 자기의 이름을 위한 것이기에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사를 원하지 않고 인애를 원한다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긍휼로 일어나는 것인데 그런 긍휼이 아니라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는 사울과 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24~31. 사무엘의 이 말을 들은 사울이 자신이 범죄 하였다고 하면서 그 핑계를 다시 백성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렇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왕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왕이 아닙니다. 세상의 왕들은 여론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언론을 장악하여 여론도 조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백성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백성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였다고 하는 이런 왕은 이미 잘린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사무엘과 같이 가서 경배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것도 진정한 경배가 아니라 자신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자기가 높아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울이 사무엘의 옷자락을 잡았을 때에 그 옷자락이 찢어지자 여호와께서 왕의 나라를 왕보다 나은 이웃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셨다고 하면서 돌아섭니다. 그런데도 여호와께 경배하겠다고 따라 나서서 경배하였지만 이러한 경배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이고자 한 경배입니다.


32~35. 아각을 사무엘이 칼로 찍어 죽입니다. 그리고 라마로 가서 사울은 기브아로 갑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을 위하여 슬퍼하였고 여호와께서도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오히려 이상한 순종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울의 정신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진멸하여야 할 것을 여호와께 제물로 드린다고 가져오는 이런 행위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입니다. 이 순종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사울처럼 멋진 전리품 챙겨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진멸해 버리고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떡 부스러기를 먹지 않느냐는 이 모습이 순종이며 큰 믿음입니다(마15: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