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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1~18:5 다윗과 골리앗 2014. 1. 5


지난주 삼상 16장에서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중심을 보신다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등장시킴으로 외모로 왕을 뽑은 이스라엘 전체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외모와 신장을 보고서 환호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의 외모와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거인 골리앗 앞에서 사울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꼼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모를 보지 않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등장하여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여호와의 전쟁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7:1~11.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블레셋의 골리앗이 이스라엘 진을 향하여 각 진영에서 한사람을 뽑아서 일대 일로 싸움을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아무도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골리앗의 키는 약 3미터이며 그의 갑옷의 무게가 약 60킬로그램이며 그의 창날은 베틀 채 같고 그 창날의 철의 무게가 약 7킬로그램입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창던지기 하는 창의 무게는 남자용이 최소 800그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골리앗의 전체 창의 무게는 10킬로가 넘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창을 들고 있는 골리앗의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12~19. 다윗을 소개합니다. 다윗이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이며 이새의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의 군대에 징집이 되었고 다윗은 사울과 아버지의 양을 치는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위하여 전쟁터에 도달하여 보니 골리앗이 40일을 아침저녁으로 이스라엘 진영으로 가까이 와서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이 골리앗의 모욕을 받으면서도 골리앗을 대적할 어떤 대안이 없이 거저 욕을 먹고 있는 중입니다. 외모를 보고 왕을 뽑았고 사울왕은 군대를 모집하기를 힘센 사람과 용감한 사람을 불러 모았지만(삼상14:51) 골리앗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겠지만 유능한 인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세계적인 박사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이 모양으로 늘 요란한 이유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의 문제입니다. 그 중심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치적인 현실에서 그 중심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입에는 늘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중심에 국가란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정당의 존재목적이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당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말만 그렇게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데도 국민들마저 국가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국가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마치 세상의 국가처럼 흘러가고 있기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오는 것을 목사와 교인들이 좋아합니까? 세상의 힘 있다는 사람들, 문벌 있다는 사람들, 세상의 유능한 사람들이 오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에서 약한 자들이 오는 것을 무시한다면 이런 교회가 바로 사울이 왕으로 있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외모로 보는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끔 저에게 복음을 전하는데도 주변의 목사들이 가만히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제가 이런 답변을 합니다. 주변의 큰 교회에서 기둥과 같이 여기는 자들이 대량으로 몰려오지 않는 한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답을 합니다. 그 교회에 헌금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옮겼다면 당장 시비를 걸고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도 조사하고 시비를 걸겠지만 그렇지 않는 한 별일 없이 지내는 것입니다.


20~27. 외모 앞에 질려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의 모욕 앞에 꼼짝을 못합니다. 사울 왕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자에게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자기의 딸을 주며 그 집안의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파격적인 선물을 걸었지만 어느 누구도 골리앗을 대적할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요나단이 등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군대 중에 유일하게 여호와의 전쟁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윗의 등장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잠시 숨겨두신 모양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말도 듣고 왕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자에게 준다는 상에 대한 내용도 듣고서 하는 말을 26절에서 봅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의 대한 의분이 일어난 것입니다.


28~30. 이러한 의분은 다윗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기름부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보고 노를 발하며 교만과 완악으로 보는 자가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 가운데 용모가 준수하여 사무엘조차 왕으로 세워도 되겠다고 한 엘리압입니다. 엘리압이 다윗을 보고 노를 발하며 교만하고 완하다고 꾸짖는 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이 자기에게 오지 않고 다윗에게 간 것을 이미 알지만 이러한 시각이 바로 육체로 보는 모습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내가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며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골리앗을 물리치는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한 말과 일치되는 부분입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의 일하심이 얼마나 못마땅해 보였는지 그들은 분노하면서 호시탐탐 죽일 기회를 노렸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으로 일하는 모습과 사람들이 육신으로 일하는 모습이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육신으로 일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육신의 조건들을 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자는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각은 어떻습니까? 사울과 엘리압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각입니까? 아니면 다윗의 시각입니까?


31~40. 다윗의 이런 말을 사울이 듣게 됩니다. 그러자 사울이 부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골리앗으로 인하여 낙담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물리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을 소개하기를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사람이 주의 종입니다. 오늘날 주의 종이라고 하는 자들이 목숨을 걸고 골리앗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골리앗에 짓눌려 더 큰 힘들을 원하고 있다면 이미 전쟁에서 진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이며 이러한 싸움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 세상의 이론과 생각들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사울이 말하기를 너는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다고 합니다. 저 사람은 어려서부터 용사인데 너는 아직 소년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이 양을 칠 때에 사자와 곰도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용맹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낼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의 이 말을 보면 다윗이 양을 치면서 곰과 사자를 물리친 것도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자신의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씌우고 갑옷을 입게 합니다. 다윗이 익숙하지 않다고 이것을 다 벗어버리고 손에 막대기와 물매와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나갑니다.


41~49. 블레셋 사람이 방패든 자를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가까이 와서는 다윗을 업신여깁니다. 아직 소년으로 보인 것입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보고 네가 나를 개로 보고 막대기를 들고 왔느냐며 자신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골리앗을 개로 보았습니다. 다윗이 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이 여호와의 군대를 모욕한다고 할 때에 이미 개로 본 것입니다. 골리앗이 다윗의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겠다고 할 때에 다윗은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게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합니다.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이 어떠함을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여호와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한 전쟁이기에 사람들의 수와 무기에 달린 것이 아님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히려 너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줌으로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름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름부음을 받은 주의 종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고 합니다.


이 무리란 블레셋만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포함이 되고 오늘 우리도 포함이 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에게 넘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 뒷부분은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잘 알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다윗의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친 것입니다. 중무장을 하고 투구를 써도 눈과 눈 사이의 이마부분은 노출이 되어야 합니다. 물맷돌이 그곳에 박힐 정도로 세게 날아가서 골리앗이 땅에 엎드려집니다. 뒤로 나가자빠지는 것이 아니라 엎드려졌으니 무릎을 꿇은 방식으로 앞으로 넘어진 것으로 봅니다. 결국 주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죽었습니다.


50~58. 50절을 보시면 다윗의 손에 칼이 없었더라고 합니다. 칼이 없이 칼과 창과 갑옷과 투구와 방패를 가진 자를 물리쳤습니다. 물매와 돌로 물리쳤지만 물매와 돌이란 골리앗의 무기에 비하면 장난감 정도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엄청난 차이의 싸움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하고 아주 큰 크레인의 이름을 골리앗으로 붙이기도 합니다. 자기 손에 칼이 없었기에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베고 대승을 합니다. 사울이 놀라면서 다윗을 새롭게 봅니다.


18:1~5. 다윗이 승리하고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합니다. 사울을 다윗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사울의 군대로 상주하게 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여 다윗과 언약을 맺고 자신의 겉옷과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줍니다. 장차 사울의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다윗에게 모든 것을 다 물려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두 사람 다 여호와의 전쟁을 이해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시편 8:1~2절입니다.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의 이름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드러내시는 것입니까? 주의 대적을 물리치시는 일에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골리앗과 같은 자들을 소년 다윗이 물리침으로 블레셋만이 아니라 사울과 그 백성들이 임도 막아 버립니다.


마태복음 21:12~17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오늘날 다윗과 요나단 같은 성도의 교통이 있습니까? 어린 아기와 젖 먹이로 하여금 대적을 물리치시는 여호와의 전쟁, 그 전쟁의 완성인 십자가를 알고서 그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까? 주의성령이 임하시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자들은 여호와의 전쟁, 주의 이름을 위한 전쟁, 그 십자가의 완성을 알고 믿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며 헬라인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그 십자가가 오직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로 보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