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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1, 22장 다윗에게 피하여 온 자들 2014. 2. 16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백성들의 인기를 얻은 것은 순간입니다. 그때로부터 사울이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서 피하여 도망을 다니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면 세상에서 만사형통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을 기름 부으심이라고 합니다(요일 2:20,27). 이런 자들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요15:18,19. 요일3:13).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이 일을 미리 보여줍니다.


21:1~6. 다윗이 놉 땅의 제사상 아히멜렉에게로 갑니다. 아히멜렉이 다윗이 혼자 온 것을 보고 떨면서 영접하며 왜 혼자 다니느냐고 묻습니다. 다윗은 왕의 특별임무를 받았기에 말을 할 수가 없고 자기와 함께 한 소년들이 어느 장소에서 비밀히 만나게 되어있다고 하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달라고 합니다. 아히멜렉은 일상적인 떡은 없지만 거룩한 떡이 있다고 합니다. 거룩한 떡이란 안식일마다 성소에 올려 진 열두 덩이의 떡을 물려내고 새로운 떡을 올립니다. 이 떡은 일반인은 먹을 수가 없고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입니다(레24:5~9). 그런데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전쟁에 나서면 거룩함을 요구합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세상의 힘의 대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와 함께한 자들이 삼일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거룩한 진설병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이 제사장이 거룩한 떡을 다윗에게 준 것은 아주 파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이 자비를 보여주었습니다.


마태복음 12:1~8절입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안식일에 일을 해도 상관이 없는 이유는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는 그 자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법으로 자기를 위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7~9. 다윗이 아히멜렉에 이르러 떡을 받고 칼을 받는 장면을 사울의 목자장 에돔 사람 도엑이 그곳에 있다가 다 보았습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사울에게 보고합니다. 이로서 아히멜렉의 제사장의 집안사람들 85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10~15.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피하여 갑니다. 아기스 신하들이 다윗이 누구인줄 알아봅니다. 11절에서 다윗을 그 땅의 왕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다윗이 왕이라는 말이 이방인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러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그 노래를 기억합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친 노래입니다. 그러자 다윗이 위기를 느끼고는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 체 함으로 위기를 모면합니다. 미치광이는 악신에 사로잡혔다고 보았기에 이들을 헤치면 자기가 해를 입는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하여 나온 것이라고 본 시편의 표제어가 있습니다.


시편 56편입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아기스 왕이 두려워서 미친 체 하다가 도망가서 나온 시편으로 보이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런 모습이 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몰려서 그렇게 바닥을 칠 때에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 그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신 것을 조금이나마 감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길이 마치 저주인양 피하려고 하기에 예수님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저 이론상으로 알고 거저 나의 종교적인 행위로 거래하려고 나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그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얻기 위하여 나의 정성을 신에게 바침으로 받아내려고 한다면 주님과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22:1~2.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피합니다. 그러자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다윗에게로 갑니다. 사울이 다윗의 집안도 가만히 두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다윗에게로 피하여 왔습니다. 다윗 자신도 자기를 지키기 위하여 블레셋의 가드 왕에게로 갔지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위협에 미친 체 하면서 동망 친 곳이 아둘람 굴입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온 자들이 또 있습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습니다. 그런 자들이 약 400명이 되었고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들의 모습이 교회라고 봅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였을 때에 세상의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되었나? 조상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저렇게 되었나? 이런 식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교회라는 곳에서도 실패와 좌절을 당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을 잘못 섬겨서 저주를 받아 그렇다는 식으로 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면을 쓰고 자기의 약함이나 아픔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본성상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를 고개를 끄떡이며 듣는 자들은 이런 상황으로 몰려간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이렇게 나를 괴롭히시는가? 도저히 해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잘 섬기면 만사형통하고 잘 못 섬기면 저주를 받아 실패하고 망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당하는 이런 모습을 보고 다윗에게로 피하여 가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자들은 이런 모습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신을 찾아간다면 그 안에는 반드시 어떤 노림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국 나는 당신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이 고백이 나오기 까지 이렇게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시편 57편입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3~5. 아둘람 굴에서도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압 미스베로 망명을 갑니다. 모압 왕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하실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하여 모압 왕에게로 갑니다. 모압 왕이 이를 허락합니다. 그 이유는 다윗의 증조모가 모압 여인이었기 때문으로 봅니다(룻4:6~17). 그러나 다윗이 이곳에서도 머물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보냅니다. 이 요새를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다윗이 모압의 한 요새를 떠나 헤렛 수풀에 갑니다. 잠시라도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도록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의 피난처이며 요새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당신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6~19.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 땅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사울이 분노합니다. 사울이 베냐민 지파이기에 베냐민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에게 천부장과 백부장을 삼겠느냐고 합니다. 이런 말은 ‘우리가 남이가’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땅의 정치가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보수와 진보를 나누면서 자기들의 세력을 결집하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느끼는 것은 자기 아들조차 다윗의 편에 서서 자기를 대적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때 도엑이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다윗이 온 것과 제사장이 다윗에게 떡을 주고 골리앗의 칼을 준 것을 보고합니다. 그러나 사울이 아히멜렉의 온 집안사람들을 다 소환합니다. 사울이 이들에게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자기를 대적한 반역자라고 몰아 부칩니다. 아히멜렉이 분명하게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하지만 사울은 그 아히멜렉 집안의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그의 호위병들에게 명합니다. 왕의 호위병이란 왕의 말을 들으면 그 누구든 죽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여호와의 제사장들이기에 죽이기를 싫어합니다. 사울이 도엑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하자 도엑이 세마포 에봇 입은 제사장 85명과 그 집안의 남녀와 어린이와 가축들까지 칼로 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스스로 왕을 구한 자들이 그 왕이 잘못 될 때에 이렇게 되리라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23. 그 죽임 당하는 중에 아비아들이 다윗에게로 도망쳐 옵니다. 이때 다윗은 그들의 죽임 당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기름부음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아비아달에게 자기와 함께 있도록 합니다. 다윗에게 피하여 오는 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피하여 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제대로 알고 믿는다면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의도대로 따라 갈 수가 있습니다. 자기들이 소원하는 바를 얻기 위하여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환난 중에 도망가는데 따라 오는 자들은 자기들도 환난 당하였기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일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면 우리는 십자가로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오는 자들이 이런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지금 상황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5:1~8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의 소망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소망을 이루시기 위하여 환난이 필수코스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